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 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시 78:38-39)
시인은 우리가 죄악을 사함받고 멸망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 인함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처음 스스로를 반포하실 때에도 "여호와로다 여호와로다 자비롭고 은해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출 34:6) 라고 하나님의 자비의 속성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느낄때 비로서 우리 안에서 요동치던 많은 번민들이 사라졌던 지난 기억들을 통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존 칼빈의 경우도 "하나님에 관한 이와 같은 인식은 산 경험으로 되는 것이지 공허하며 과장된 사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기독교강요/1.10.2)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편에서 다윗도 이와 비슷한 체험의 고백을 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다윗은 수많은 고난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늘 삶을 통해 가깝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체험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신의 삶이 지상의 삶에서부터 시작해서 저 천상의 영원한 삶으로 이어질 것임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으로 기억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를 다른 시편에서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103:15)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시인의 고백처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같은 인생을 불쌍히 여겨 주시는 주님의 선하심에만 우리 구원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처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여러가지 상한 몸과 마음의 문제로 고난을 당하고 계신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님의 그 크신 자비가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 78:39) 시편 103편13-16절에서 이와 유사한 말,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는데 그것은 인간이 풀과 같은 존재여서 곧 시들고 건초같이 마른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말을 접하게 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오직 비참함을 발견하고 우리를 동정한다면 우리를 지켜주도록 그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순수하심과 그의 과분한 선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