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분단선 38선을 눈앞에 두고 나는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을 데리고, 청진에서 합류한 피난민들과 갖은 고생을 한 끝에 간신히 토성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어 어둑어둑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그리웠던 고향 개성 땅을 밟게 된다는 생각에 기진맥진한 가운데에도 희망에 차 가벼운 마음으로 부락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일행이 오는 걸 앞서 알아차린 부락 청년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청년들에게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중국서 남한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피난민일 뿐이다. 하룻밤만 재워주면 내일 갈 사람들이니 부디 안심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피난민들에게는 빌려줄 방이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에 “여보시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세살 난 갓난아기가 있으니 마굿간이라도 빌려주시오”라고 간청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굿간도 부엌도 빌려줄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에 “그럼 배가 고프니 반찬이라도 팔 수 없는가”라고 묻자 이들은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도 그간 피난민들이 거덜냈으니 팔고 주고 할 것이 없다”며 세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참으로 인정사정 없는 살벌한 마을 인심이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부락 건너편 시냇가에 가서 하룻밤을 새우기로 했다.
모래사장에 짐을 풀었으나 이슬비 내리는 초가을 날씨라 밤이 되니 추웠다. 침구 없이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워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아기를 중간에 두고 쪼그린 채 새우잠을 잘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노인 한 분이 오셔서 우릴 불쌍히 여기셨는지 “딱한 신세로군. 젊은 분이 고생이 막심하오. 보아하니 선비의 기상인데…”라고 위로하며 가마니 서너 장을 가져다 주셨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걸 받아 깔고 덮고 따스하게 하룻밤을 지내게 됐으니 노인의 따뜻한 인정에 하염없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이토록 날 보살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크셨다. 중국에서 구사일생의 처지에 놓였을 때 중앙군 왕대위 부인을 통해 생명을 구하게 하셨고 또 회령에서 인민군에 쫓겨 중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때에도 친구를 만나 구명하게 하셨다. 이어 토성에 와서도 노인을 통해 비단이불 못지않은 가마니를 주셨으니 평생을 두고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 노인의 신세에 대해서는 언젠가 만나면 갚고자 하였으나 그후 38선에 가로 막혀 영영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