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복음
차별없는 복음
존 파이퍼 | 윤종석 역
두란노 | 372쪽

인종차별 이슈로 들끓고 있는 짐머만 사건에 대해 최근 자신의 견해를 블로그(DesiringGod.org)를 통해 피력한 존 파이퍼 목사는, ‘인종 문제’를 최신작 「차별없는 복음(Bloodlines: Race, Cross, and the Christian·두란노)」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는 책에서 “그 시절(1960년대) 나는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고 고백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내 태도와 행동에는 거의 모든 면에서 백인우월주의가 배어 있었다. 나는 루시 외에는 흑인을 아무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루시는 토요일마다 우리 집에 와서 청소를 거들었다. 나는 루시를 좋아했지만 전체적으로 비하하는 관계였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젊은 날을 “갚아야 할 빚”이라 표현한다.

그러던 존 파이퍼는 대학 시절 ‘인종간 결혼’이라는 문제와 부딪히면서 인종차별을 실감하게 됐고, ‘인종간 결혼의 윤리’라는 연구논문을 쓰게 된다. 그리고, 네 아들을 낳은 이후 딸을 달라고 기도하던 파이퍼는 50세에 흑인 소녀를 입양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성공한 다민족 지도자”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인종간 다양성과 화합’을 궁극적으로 유의미하게 이루려면 복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 믿고, 그것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존 파이퍼 목사. ⓒ로잔운동 홈페이지
존 파이퍼 목사. ⓒ로잔운동 홈페이지

존 파이퍼는 “교회들이 인종 문제에 있어 ‘무관심’해서도 안 되지만, 이 문제만 중시해 ‘우상화’해서도 안 된다”고 조언한다. 교회는 사회의 ‘온도 조절기’이기 때문이며, 교회의 주된 소명은 ‘사랑과 나머지 모든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간 문제가 발생하지만, 존 파이퍼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그들’의 개인적인 노예 경험 등을 이유로 ‘흑백간’ 문제를 주로 다룬다. 그리고 민권운동이 벌어진 지 50여년이 지났지만, 짐머만 사건에서 보듯 흑인들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15-29세 흑인 남성 사망원인 1위는 ‘피살’이며, 흑인 남성의 평균 수명(69세)은 백인 남성(75세)보다 6세나 적다. 일부 도시에서 흑인 남성의 고교 중퇴율은 50%가 넘고, 젊은 흑인 남성들의 자살률은 수십 년간 100% 이상 증가했다. 그는 “백인과 흑인 모두 타락했다”고 일갈한다.

존 파이퍼가 제시하는 돌파구는, 뻔하지만 당연한 ‘복음의 능력’이다. “예수의 복음은 이념, 철학, 방법론, 치료법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침투이다. 그러나 이를 개인적·결정적·폭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너무도 많다. 복음은 정치가들과 사회 운동가들의 삶 속에서 구원의 능력으로 폭발하는 것이지, 그들의 사회적 강령을 꾸며 주는 들러리가 아니다.” 복음은 어느 한 쪽을 편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

이러한 ‘복음’은 무서운 위력으로 인종차별의 교만과 무력한 두려움, 절망적 열등감을 조장하는 사탄을 멸하고, 흑인과 백인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며, 교만으로 팽배한 인종간 긴장의 위력을 꺾고, 절망 너머 희망을 가져다 주며, ‘흑(黑)역사’ 때문에 상처받기 쉬운 흑인들의 자존감을 심어 준다. 또 인종차별을 뒤에서 부추기는 탐욕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종간·민족간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며, 두려움을 이기는 평안과 충만한 열정도 선물한다.

그는 2백년 전 노예 매매를 폐지했던 윌리엄 윌버포스 같은 용감한 사람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회들도 인종간 다양성과 화합을 추구하는 일에 좀더 앞장서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피부색’이 아니라 ‘믿음’에 있고, 예수의 피의 능력, 즉 ‘예수의 혈통’은 인종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한 자를 무시하는 것은 죄에 해당한다.

마치 예수님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간극과도 같은 현대의 인종 문제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가까워질 수 있다(엡 2:13)’고 그는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목표 중 하나는 불화한 민족 집단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함으로써 그들끼리 서로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다양성과 화합을 추구하면서, 너무 지치고 상처가 많아 포기하기로 마음먹기 쉬운데, 저자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변화를 주면서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전략을 써 보는 등 다시 시작하라”고 당부한다.

파이퍼가 사랑하는 개혁 신앙의 관점에서도, 하나님이 죄인들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방식은 모든 면에서 인종차별주의를 허물도록 돼 있다(계 5:9).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인(불가항력적인) 은총’이고, 이제 우리는 모두 인종을 넘어 ‘예수의 혈통’에 동참해야 한다. 이제 죄에 대해 죽은 것처럼 차별에 대해서도 죽어야 하고, 세상의 잣대로 차별해선 안 된다.

그가 초반에 언급했던 인종간 결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인종은 하나의 조상에서 나왔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으며, 성경이 금하는 것은 비신자와의 결혼이지, 다른 인종간 결혼은 아니다. 저자는 “인종간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종을 멀리하고 경멸하고 적대하는 원인”이라며 “인종간 결혼을 반대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돈과 권력의 문화가 지배하고 압제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