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작 스턴을 통한 배움.
7년 전, 유명한 바이얼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Isac Stern)의 삶을 교육방송인 PBS를 통해서 보고나서, 여러가지 생각을 적었던 노트를 다시 보았다. 키작고 뚱뚱한 유대인, 결코 불가능을 모르는, 순진한, 음악을 삶 속에서 향유하는 인생이다. 특히 세계 전역을 다니면서, 음악을 가르치고,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것이 섬김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가진 것을 나누는 아름다움. 여기에 인생의 즐거움과 미학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맛본 우리 성도와 목회자들은, 더더욱 이 나눔과 섬김의 즐거움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2. 마이클 카드을 통한 배움.
스턴의 나누는 모습을 통해, 나는 미국의 존경받는 복음성가 가수인 마이클 카드(Card)가 생각났다. 그의 앨범 하나에는 "F. F. B"라는 노래가 있어서 관심을 가졌다. 왜냐면, 이 약자를, 내가 재학했던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신학계의 전설인 F. F. Bruce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드가 사용한 이 약자는 부르스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할아버지를 지칭한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미국 남부 한 촌의 목사로, 카드의 할아버지다. 카드는 이 할아버지 목사님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복음을 알게 되었다고, 그 곡에서 밝히면서, 감사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알아주지 않는 촌구석에서 목사로서," 당시 작은 어린 아이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면, (물론 이젠 유명인사가 된 카드에게) 이처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작은 것, 작은 교회, 작은 성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피조물,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면, 내가 최선으로 섬기고, 사랑하고, 가르치고 인도해야 되지않겠는가! 나는 이들을 최선으로 섬기는가? 마치, 스턴이 카네기 홀에서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듯, 성도들의 환경이나 조건에 좌우되지 말고 사랑하고 섬겨야 되지 않겠는가!
3. 트리니티 은사인 웨인 그루덤 교수를 통한 배움.
언젠가, 내가 다녔던, 시카고의 트리니티 신학교의 당시 웨인 그루덤 교수님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그분은 사모님의 건강으로 겨울이 추운 시카고를 떠나서 따뜻한 애리조나의 이름없는 신학교로 일부러 가셨다. 그분이 학교의 신문에 적은 글이 생각난다. 목회자나 신학교수는 교회나 학교의 "크기나, 상태, 숫자"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 작은 성도, 외적으로, 보잘 것 없는 듯한 성도 등에 상관없이, 사랑의 대상으로 섬기라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제공한 교수로는 최고 대우인 특별교수의 제안도 고사하고, 애리조나로 아내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20년 이상을 섬긴 신학교를 미련없이 떠나셨다.
현대 교회가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크고 화려해지고, 교회의 본질과 능력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주님께서 하셨듯이, 주위의 "작은 것, 작을 자들, 한 영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다시 다짐해본다. 동시에 이들을 위한 아낌없는 섬김과 나눔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