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악의없는 호통을 친다. “아니,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몇번 씩 전화해도 연락이 안돼…. 어디 좋은데 있으면 나도 좀 끼어줘.”
그 말에 나는 “시비야? 부탁이야? 미안해, 전화 못받아서, 이름을 남겨놓았으면 내가 곧바로 전화했지.”하고는 같이 웃고 지나갔다.
은퇴 전에는 조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눈코 뜰새없이 뛰면서 자는 시간까지도 줄였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문제다. 가능한 한 게을러지지 않고 생동력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아침 5시30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찬송가 소리에 눈을 뜨고 기도를 드리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밤 10시경 자리에 누워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꿈나라로 가는 것으로 하루를 끝낸다. 그 중간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주로 눈을 통하여 얻는다. 한 포기의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밤하늘의 달의 변화에서도 무한한 진리를 찾고 지식과 지혜의 보고인 양서를 읽으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너무도 많이 배운다. 귀를 통해서는 개미가 기는 소리나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못 들어도 새소리나 바람소리를 통해 그 뒤에 숨어있는 높은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각 분야의 준비된 강의를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많이 얻는다. 입을 통해서는 타인과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정과 사랑을 주고 받을수 있어 좋다. 어찌 그 뿐이랴! 늙어가면서 건강과 운동에 신경을 쓴다. 아침 식사 전에 사십오분간 전신운동을 하고 늦은 오후에는 주위에 있는 계곡을 따라 빨리 걸으며 가끔 친구들과 골프를 치고 헬스클럽에도 자주 나간다.
또 있다. 손자 손녀 쌍둥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일이다. 아들네 집에 가서 아이들과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책을 읽어주고 공원에 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핏줄의 연장이라 재미도 있고 또한 보람도 있다.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은 남들을 섬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일과 주일날 교회에서 성경공부 하는 일이다. 우선 구상을 하고 쓰고 고치기를 10여번 하고도 언제나 송구한 마음으로 신문사와 교회에 보내며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빼놓을 수 없는 일은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이다. 시니어 커피 한 잔을 놓고도 무진장 한 소재를 풀어간다. 한국, 미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넘나들고 정치, 경제, 사회, 이민생활 등 많고도 많다. 더 재미있는 일은 이민 초기의 고생을 털어놓는데 저마다 자기가 제일 고생했다며 강변하고 더욱이 말할 때마다 그 내용이 각색된다. 그래도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주며 웃고 또 웃는다.
미국인 친구 중 피터(Peter)라는 이름을 지닌 이는 여든을 훌쩍 넘겼으나 언제 만나도 건강하고 싱싱하며 또 재미있다. 아침 일찍 카메라를 메고 멀리 가까이 들이나 산에 가서 계절 따라 변해가는 천 가지 꽃들을 렌즈에 담아 현상해서 사진첩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나눠준다. 그 는 책을 많이 읽고 지루하면 피아노를 치고 꽃도 가꾸고 자주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노년을 보낸다. 반면, 옆에 사는 짐(Jim)은 정반대다. 두 번의 이혼을 하고 혼자 살면서 주로 컴퓨터에 매달려 돈내기 포커를 하며 한 달에 1천불 정도는 딴다고 한다. 얼마나 짭짤한 수입인가. 그런데 짐은 나이 일흔도 안 됐으나 온몸이 망가져 자기 말마따나 종합병원이란다. 자주 너머지고 팔이 부러져 깁스(Gips)를 하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얼마 전에는 있던 차도 팔았다고 한다.
두 친구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나는 백 번 죽었다 살아나도 피터처럼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 하는 일이 많으면 그 일에 묻혀 늙을 새가 없고 내일 할 일이 있으면 생기가 솟아오른다. 사랑을 주고 받을 상대(사람 또는 일)가 있으면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 해도 신바람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은 누가 갖다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98세에 시집을 내고 100세가 넘도록 멋지게 사는 비결은 바로 근면에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