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 수련회에서 '너도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라'는 음성을 듣고, 비전을 갖게 됐어요. 열세 살에 이민 와서 학교에 둘 뿐인 동양학생 인데다 영어도 잘 못하니 지나가다 툭툭 치기도 하고, 인종차별도 당하고, 특히 체육시간에 옷 갈아입고 나가는 길목에서 많이 맞았죠. 하지만 비전을 갖게 되니 그런 문제들은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지금 청소년들도 비전이 필요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합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비전이 아니라 어떻게 남을 돕고 살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인가 라는 진지한 고민과 비전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주님과동행하는교회 유에녹 목사를 만났다. 기대했던 대로 30대 젊은 목사답게 패기와 열정이 넘쳤다. 동시에 대대로 이어진 목회자 집안의 녹록하지 않은 저력과 목회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품고 오직 한 길만 달려가고자 하는 '붙들린 자'의 아름다운 헌신도 느껴졌다.
6학년 남학생 셋이 뭉쳐 교회 부흥 이끈다?
아버지 유양열 목사(전 영광장로교회 시무)를 따라 이민 온 유에녹 목사는 '애틀랜타 토박이'다. 학생부 수련회에서 비전을 받고 변화된 이후 학교에서 코리안 클럽 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고, 간혹 한국인 친구들이 문제를 일으켜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올 때 수업 중간에 나와 통역을 할 정도로 학교에서도 인정받았다. 지역사회에서도 '잘 키운 목사 아들'로 통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개척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 하더라도 아버지와는 상관 없이 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버지께서 은퇴를 앞두시고 교회는 후임목사를 찾고 있었어요. 전 개척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성도들이 개척하는 것처럼 와달라고 하셨어요. 이미 다 셋업이 된 교회여서 개척이라고 하긴 부끄럽지만, 더 많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막상 와보니 학생부는 6학년 남자아이 셋이 다 였어요. 다른 아이들이 없으니 부모님은 여기 다니셔도 자녀들을 다른 교회 내려 놓고 오시다가, 젊은 목사가 온다고 하니 데려 오신 거에요. 애들은 처음에 친구들도 없고 재미없다고 싫어했죠(웃음)."
유 목사는 세 명의 아이들과 부대끼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생업에 바빠 잘 챙기지 못하는 아이들을 직접 픽업해 집으로 데려가 숙제도 봐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피자도 사주면서 마음을 나눴다. 봄 방학 때는 시험을 앞두고 일주일 내내 모여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뜨거운 기도회를 했다. 성적이 오른 것은 물론 이때 방언을 받고 은혜를 경험한 아이들이 지금은 다른 친구들도 데리고 와 교회 아이들이 15명으로 500% 성장을 경험했다. 아이들의 변화에 부모님들도 신기해 하며 오히려 주춤하던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고, 궁금해서라도 교회에 나와보기도 한다. 주일예배 시간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씀을 경청하는 것도 유 목사가 아이들과 쌓아온 두둑한 신뢰관계 때문이다.
주님과동행하는교회 주일예배는 '특별하다'. 예배당에 들어설 때 한국의 옛날 시골교회처럼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는 점 말고도 어른과 아이들이 매 주일 함께 예배를 드린다.. 통역 없이 듣는 말씀이 지루할 법도 한데, 곧잘 적응해 잘 듣고 집에서 부모님과 말씀으로 대화도 한다. 교사로 설 만한 인재들이 많지만 먼저는 담임목사와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열매'가 되야 한다는 신념으로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차근 차근 훈련하고 일대일로 양육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두날개훈련'의 산 증인, 시스템보다 한 사람의 변화에 초점
신학대학 졸업후 갑작스럽게 '선교사'로 파송받아 한국에 간 유에녹 목사는 한국 주영광교회(담임 설진국 목사)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교회 대표로 제자훈련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두날개훈련'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교회가 건강해 지는 것을 체험했고, 교회가 건강해 지니 '부흥'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교회에서 검증이 되자 주영광교회에서 지원하거나 개척한 해외 지교회들을 위해 '두날개훈련'을 전하러 드나들면서, 나중에는 여권에 도장을 찍을 데가 없을 정도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 필리핀 등지를 누볐고, 두날개 국제컨퍼런스 영어통역으로도 활동했다.
"두날개훈련을 통해 교회가 건강해지고 부흥한 것이 주영광교회가 어느 정도 안정된 규모의 교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국에 다섯 명, 스무 명 작은 교회들을 다니면서 똑같이 훈련하는데 변화가 더 빠른 거에요. 이걸 교육으로만 돌려 버리면 안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 가면 '반드시' 됩니다. 주님과동행하는교회 역시 양육반을 시작으로 훈련을 시작했는데, 성도님들이 아직 적은 만큼 한 분 한 분 만나면서 얼마나 내용을 이해했는지, 실제 삶에 적용이 되는지를 점검해 주면서 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더디더라도 이렇게 세워진 군사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과동행하는교회는 당분간 직분도 세우지 않을 방침이다. 먼저는 전 성도가 담임목사가 가진 비전을 공유하고 한 마음, 한 뜻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거룩한 고집' 때문이다. 또 한번도 뜨거운 은혜와 변화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는 청년들을 단지 사람이 없다고 해서 교사로 세워 놓으면 거기서 자란 아이들 역시 대학을 가면 신앙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는 이유 때문에, 주일예배는 온 가족이 함께 드리고 학생부 예배는 토요일 유에녹 목사가 직접 인도하고 있다.
1.5세, 2세 자녀들, '하버드' 포기하고 '귀넷텍' 선택할 수 있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유에녹 목사는 우스개 소리로 "내가 너희들과 매일 시간을 같이 보내고 밥 먹여주고 하는데 하버드 합격 해도 못 간다. 조지아에 나랑 남아서 사역해야 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만일 공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아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단지 남들 눈을 의식하거나 돈 때문에, 혹은 다른 세상적인 것 때문이라면 과감히 '황금 송아지'를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와 함께 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벌써 달라지고 있다. 열한 살 아이가 비전에 사로 잡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말보다 중요한 게 삶입니다. 이민교회들은 특히 많이 분열되고 내 교회, 네 교회를 많이 따지는데 알게 모르게 아이들 역시 이런데 상처와 불신이 큽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주변 목사님들에게 인사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해요. 한국에서 사역할 때 근처 비슷한 사이즈 교회 다섯 개를 찾아 담임목사님 이름으로 추석 선물을 전했는데 딱 한 교회만 받으셨어요. 그 만큼 담이 높습니다. 그 담을 차근 차근 무너뜨리려고 했고, 제 뒤에 온 전도사님이 잘 하셔서 지금은 다섯 교회 연합으로 청년부 부흥회도 하고 운동도 해요. 아이들에게 비전을 던져 놓고 그걸 직접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혹자는 젊은 목사가 '벤츠'를 타고 다닌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지만, 이 '벤츠'가 아이들에게는 백마디 말보다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창 웹에 대한 붐이 일때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마치고 직장생활 하면서 적지 않은 돈도 벌어봤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자는 다른 길로는 가지 못한다. 강력한 부르심에 순종해 이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하자 주변에선 쉽사리 믿지 않았다. 직장생활로 산 차와 집을 팔아 신학대를 갔고, 안수를 받은 뒤 갑작스레 한국을 가면서 모든 걸 다 내려 놓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가 다시 미국으로 오면서도 한번 더 다 버리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이때 교회 한 성도가 미국에 가는 유 목사에게 반드시 '벤츠'를 사줘야 한다는 강력한 마음의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제가 나이도 젊고 차라리 돈으로 주시면 선교하는데 쓰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분이 그럴 까봐 돈으로 못 준다고, 미국에 가면 골라서 연락을 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저보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애틀랜타가 이전엔 물질걱정 없이 살던 곳인데 선교사로 한국에 나갔다 오면서 아무 것는 빈손이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차도 '벤츠'로 주시고 최신 스마트폰, 테블릿 피시 다 선물로 주셨다고 하면 아이들이 정말 '감동' 받아요. 너희들도 인생을 그분께 맡기면 더 채워주실 것이다라는 걸 보여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직접 기도응답을 경험할 수 있게 아무도 모르게 아이들과 뭔가를 위해 기도하는데, 제발 이뤄 주시길 제가 더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아버지 변하는 모습 보고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생각,
말과 행동이 동일한 목회자 될 것
'훌륭한 목회자'는 어떤 모습인가 물었을 때 유에녹 목사는 '말과 행동이 동일해야 한다'고 정의했다. 그가 어릴 때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고 유교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가 큰 소리를 내시면 집안 식구들 모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고, 길을 가면 아버지 혼자 앞서 가시고 어머니가 자녀들 손을 잡고 따라가는 모양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나이가 드시면서 변화되셨다.
"대학을 다닐 때 여름방학마다 내려 올 때마다 달라지셨어요. 무슨 큰 실수를 하셨나 싶었죠(웃음). 제가 대학을 마칠 때쯤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어요. 그걸 보고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께서 하시면 사람은 변한다는 걸 깊이 느꼈어요. 그때까지 목사도 사람이고 교회는 직장이기 때문에 강대상에서는 '사랑하세요'해도 내려와의 삶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버지께서 이민목회를 하시면서 오해도 많이 당하시고 억울한 경우도 많이 있었어요. 한번은 말도 안 되는 소문 때문에 옷장에서 박사 가운을 꺼내셔서 이걸 갖다 보여줄 수도 없고 하시면서 화를 내시다가 '그냥 내가 참지...하나님은 아시겠지'라면서 집어 넣으시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아버지 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단련하신 것 같아요."
아직은 자녀들이 어려 조심스러운 면이 많지만 목회자 열매는 자녀라고 생각한다는 유에녹 목사는 한국 언더우드 선교사의 후손들처럼 진정한 목회자의 자녀라면 대대손손 할아버지, 아버지가 섬겼던 땅과 민족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먼저는 자신이 그런 자녀로 기억되고, 자신의 자녀들과 교회 자녀들 역시 신앙의 유산을 이어 받아 가길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버지 유양열 목사의 눈물과 땀이 서린 애틀랜타 땅으로 부르신 것은 아닐까?
"멤피스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매주 만나 기도하고 교제하던 팀들이 있어요. 거기서 만난 한 가정이 이번에 내려 오는데 함께 하기로 했고, 한국에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양육한 청년이 유학생으로 오면서 교회를 섬기기로 해서 기대가 큽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워지는 성도들이 된다면 교회가 건강해지고, 교회가 건강해지면 애틀랜타가 건강해 지리라 믿습니다. 그 작은 시작을 주님과동행하는교회에서 하고 싶습니다."
주님과동행하는교회는 3299 Duluth Hwy 120 Duluth GA 30096에 위치해 있으며 매주 오전 11시 주일예배와 어린이 학교를, 수요일 오후 8시 수요찬양예배와 목요일 오전 10시 양육반, 금요일 오후 8시 금요기도집회가 이어진다. 또한 토요일 오후 1시에 학생부 예배가 있으며,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6시 새벽기도회, 월, 화, 목요일 오후 9시 저녁 기도회로 모인다. 특별히 이재광 부목사가 가르치는 무료 태권도반이 금요일, 토요일 진행되는데 향후 한글학교와 악기학교, 운동을 결합한 방과후교실을 운영할 방침이다. 자세한 문의는 678-600-2787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