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중앙장로교회를 개척, 37년간 목회해 온 안창의 목사의 명예은퇴목사 추대예배가 19일 오후5시 퀸즈중앙장로교회에서 미국장로교 뉴욕시노회 주관으로 개최됐다.
노회 지도부와 뉴욕교계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날 예배에서 참석자들은 37년 한 길 목회만을 해왔던 안창의 목사의 공로와 희생을 치하하고 앞으로의 사역을 축복했다.
1941년 2월11일생인 안창의 목사는 한양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M.Div)를 거쳐 미국에서 사역 중 뉴욕신학교 D.Min 과정을 마쳤다. 한국에서 서울홍익장로교회 전도사, 군목, 신일고등학교 교목으로 섬기다. 미국에서 1976년 퀸즈중앙장로교회를 개척했다.
교계 활동으로는 대뉴욕지구목사회장,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장, 미국장로교 전국한인교회협의회장,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대뉴욕지구 회장, 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 총장을 지냈다. 성역기간 중 유아세례 150회, 세례 및 입교 379회, 결혼예식주례 96쌍, 장례집례 40차례를 인도했다.
19일 명예은퇴목사 추대예배는 1부 예배와 2부 축하 순서로 진행됐다. 교단 인사 뿐만 아니라 범교단적으로 참여한 순서자들은 그레이스 브라운 목사(뉴욕시노회 목회위원회 부회장), 박성갑 목사(뉴욕시노회 아시안커뮤니티 회장), 김남수 목사(프라미스교회), 김수태 목사(뉴욕어린양교회), 송병기 목사(뉴욕목양장로교회), 이희선 목사(새언약교회), 전희수 목사(기쁨과 영광교회), 조덕현 목사(뉴욕중앙교회 원로), 조원태 목사(뉴욕우리교회), 최예식 목사(뉴욕목사회장), 한진관 목사(퀸즈한인교회 원로) 등이다. 이밖에 영상으로 뉴욕교협 회장 역임 당시 할렐루야대회 강사로 참석한 바 있는 김삼환 목사(서울명성교회)와 이승만 목사(리치몬드 유니온신학교 교수)가 영상으로 축하인사를 보내왓다.
이날 명예은퇴목사 추대예배에서도 안창의 목사는 37년 목회를 마무리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간략하게 소감을 남겼다. 안창의 목사는 답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성도분들 께 감사드린다. 저를 위해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저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짧지만 인상 깊은 인사를 했다.
은퇴 이후 사역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은퇴 용단을 내린 안창의 목사의 행보는 뉴욕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안창의 목사는 37년을 헌신한 퀸즈중앙장로교회에서의 목회를 마감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아브라함이 갈 바는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간 것과 같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순서자들의 주요 발언들.
유지형 장로
안창의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군인 출신으로 퀸즈중앙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처음 예배를 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3년이 흘렀다. 당시 안 목사님은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에 온 몸을 던지는 젊은 목회자였고 저도 젊은 시절이었다. 담임 목회자의 꼴을 먹고 신앙적 지도를 받고 영적으로 성장했다. 1991년 5월11일 장로 안수를 받고 시무장로 재무장로로 봉사했다. 매주 뜨거운 말씀과 기도의 시간은 제게 너무도 귀한 시간이었고 성령의 잉태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제2의 인생을 저는 살고 있다.
10시30분 교회건축을 위한 당회로 모였을 때 당회 후 12시30분에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는데 괴한이 나타나 총구를 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돈이 없다고 했는데 큰 총소리와 함께 제가 쓰러졌다. 엘머스트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데 제 옆에 가족들과 안창의 목사님이 기도하셨다. 저는 안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기도가 하늘에 닿아 제가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안 목사님은 37년동안 영혼의 꼴을 먹이시면서 96번의 주례를 서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정들을 배출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다. 목사님의 사랑에 빚진 저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귀한 사역에 동참하겠다.
이선영 집사
안창의 목사가 섬기시는 퀸즈중앙장로교회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다녔던 것이 추억이 됐다. 그래도의 신앙으로 헌신해 오신 사랑에 감사드린다. 이렇게 귀한 목사님을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안타깝지만 명예원로목사 추대가 노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을 뜻으로 여기고 은혜 잊지 않고 신앙을 열심히 하겠다. 사모님은 금요 철야기도회를 주관하시면서 성도들의 가정들의 큰일과 작은 일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분이다. 가정들에 카드를 일일이 보내셔서 위로를 하시기도 했다. 성도들의 가정이 세대차이로 힘들 때마다 작은 목회자가 되어 아이들을 섬겼던 목사님의 자제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성도들의 얼굴만 봐도 영적인 병인지 육적인 병인지 아시고 할렐루야 기도하자! 하시며 늘 챙겨주셨던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오직 예수, 하나님만을 경외하라,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셨던 그 당부를 잊지 않겠다. 목사님의 가정 위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조덕현 목사
37년간 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를 신축하고 헌신봉사 해오셨다. 교회가 목사님의 꿈꾸던 모습처럼 되지 못할 때도 있고 배신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안 목사님은 스스로 내 탓이라고 돌리고 어느 누구도 비난하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퀸즈중앙장로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다. 지난 2000년동안 주님의 교회를 베드로의 교회로 착각하고 한국교회의 부흥 성장 속에서 주님의 이름보다는 자기 이름을 높이고 천년만년 살 것 같은 목회자들의 거동을 볼 때 자성하게 된다. 어느덧 이민교회도 이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개척한 목회자치고 자기 교회를 내놓는 사람이 안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천국을 믿는 사람인가 의심이 되는 때도 있었다. 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공교회이다. 퀸중앙에 안 목사님은 떠나지만 어떤 교인들도 어떤 목회자도 이 교회는 내 교회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안 목사님의 그 순정이 계속 될 것이라고 믿는다.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광야에서 40년간 목자의 삶을 살았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던 모세였지만 하나님 말씀에 승복하고 모세는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며 숨을 거뒀다. 그 때 모세 나이가 120세였고 그의 눈의 기력은 쇠하지 않았다. 주님이 쓰시는 자를 막는 자를 주님은 용납하지 않으신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그 길을 터 주셧다. 모세가 떠난 후에 지금도 그 모세가 없다고 말한다. 퀸즈중앙장로교회도 안 목사님의 따뜻한 손길을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바쳤고 미련 없이 이 자리를 떠난다. 안 목사님은 뒤를 돌아보지 마시고 앞을 향해 나아가시기를 바란다. 저는 은퇴한지 10년이지만 1년에 한번 당회의 허락으로 초청이 있지 않는한 은퇴한 교회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교회의 부흥은 두 분의 헌신의 결과임을 성도들은 잊어서는 안되겠다. 하나님은 안 목사를 사랑하신다. 우리 모두 안 목사님을 사랑한다. 뉴욕교계를 위해서 헌신하시는 두 분이 되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