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년이 결혼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 시댁 나들이였다. 친정집은 생각지도 못하고 시댁부터 챙겨야 하는 마음에 조금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시어머님을 만나 뵙고 용돈을 드렸다. 그런데 용돈이 친정과 달랐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밖에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남편이 다가왔다.
"왜 울고 그래? 뭐 불편한 것 있어?"
"아니야. 그냥."
결혼을 하면서 시댁에게 밀려나는 친정. 한순간에 달라지는 생활 패턴. 여성들이라면 이 마음을 공감하겠지?
한 아가씨가 결혼을 했다. 꽃집 며느리로. 우아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픔이 있다. 5월이면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이어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꽃집은 1년 대목을 한 달 동안 봐야 한다.
그때마다 며느리의 손길이 필요하다. 며칠 전부터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5월의 몸은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어린이날이라도 아이들은 뒷전이다. 그래서 여동생 가정에 맡겨 외식을 하곤 했다. 엄마는 그게 늘 마음 쓰인다. 그렇게 한 게 벌써 몇 년째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더 힘들었던 게 있다. 그렇게 고생했으면 이렇게라도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얘야, 너무 고생 많았다. 이것 가지고 가서 아이들하고 외식이라도 좀 해라."
그런데 아직까지 일당이랄까, 수고비랄까, 그런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을 몇몇 주부들과 나누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주부가 말했다.
"나는 시골 가서 일해주면 시어머님이 일당 3만원씩 쳐주는데...."
그 역시 6월이면 시골을 간다. 과수원을 하기 때문에 일손을 돕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손을 거들어 드리고 나면 일당을 쳐준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주부가 말한다.
"그런데, 식당 하는 집은 더 그렇다. 식당은 주말마다 가서 도와야 한다."
어버이날이 되었다. 어느 집사님이 미리 시골을 가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번 역시 아내 혼자 시골을 내려가야 할 형편이다. 전날 저녁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러자 시어머님이 대답했다.
"절대로 내려오지 마라. 절대로! 안 내려와도 괜찮다."
그리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내는 헷갈렸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어쩌지? 어머님은 절대로 내려오지 말라고 하면서 수화기를 끊으셨는데?"
"그래도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마음먹은 김에 갔다 오지?"
"그렇겠지? 알았어."
다음날 아내는 이른 아침부터 챙겨 시골을 내려갔다. 부지런히. 시골을 도착하는 순간, 어머니가 며느리를 보고 말씀하셨다.
"이제 오냐?"
며느리는 생각했다. '이제라니요? 내려오지 말라고 하실 땐 언제고요?'
그럼 어디 며느리들만 할 말 있을까? 시어머니라고 할 말 없을까? 그들의 아픈 마음 한번 헤아려 보자.
어느 시골 부모들이 전답을 처분했다. 왜? 서울 아들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서. 아들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생활이 어디 익숙하겠는가? 외출도 자유롭지 않다. 갑갑증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더한 것은 며느리의 태도이다. 며느리는 집에 애완견을 키웠다. 개에게 온갖 맛있는 음식을 다 해다 바쳤다. 애지중지하는데 상전이 따로 없었다.
개가 조금 이상하면 당장 병원에 데려간다. '우리 집 강아지가 뭘 잘 먹지?' 하며 간식도 사다 나른다. 어디 그 뿐이랴. 미용실에서 염색도 해준다. 목욕도 부지런히 시켜준다. 다정하게 산책도 해준다.
그런데 정작 자기 시부모를 대할 때는 전혀 딴판이었다. 며느리가 하는 짓을 보면 정말이지 화딱지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아버지가 개집에 들어갔다. 그러더니 도대체 나오려고 하질 않았다. 민망해진 며느리가 사정을 했다. "아버님, 왜 이러세요? 제발 개집에서 나오세요."
그런데 아무리 사정해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며느리는 난감했다.
"벌써 치매에 걸리실 리는 없으실 텐데, 왜 저러시지?"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아들이 돌아와서야 시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개만도 못한 놈이다."
왜일까? 집에 키우는 개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먹이고, 입히고, 씻겼다.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그런데 자기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찬바람이 쌩쌩 돌았다. 그러니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결국 그 시부모는 처분해 온 모든 재산을 되돌려 받았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화여대생 200명에게 "앞으로 각자 살고자 하는 집을 설계해보라"고 했다. 대부분 애완견 방을 설계했다. 그런데 부모님 방을 설계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부모가 부모다워야 공경하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부모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말이다. 자식에게 해 준 것은 없고, 상처만 주는 부모인데, 그런데도 공경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사실이 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공경해야 한다. 어디 한번 대답해 보라.
"나는 상처를 안 줄 부모가 될 자신이 있는가?" 어느 누구도 자신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식들이 우리 말을 거역하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건 모순이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인 우리를 공경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자녀들은 우리가 부모에게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할 것이다. 우리가 부모님께 하는 것을 자녀들이 보고 배운다. 그래서 우리가 한 그대로 돌려받게 된다.
부모님의 은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게 문제다. 살을 깎는 은덕이다. 다 갚을 수 없는 은혜이다.
그럼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부모 걱정 안 끼치고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 부부가 잘 살면 된다. 이혼한다고 법원을 드나들지 않으면 된다. 대학 갈 때 들어가 주고, 취업할 때 취업해 주면 된다. 그게 최고의 효도이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 자들은 나중에 후회하는 날이 다가온다. 부모들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니 기다려 줄 수가 없다. 우리 곁에 있을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보이는 부모부터 잘 섬겨야 한다. 그렇게 믿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건 외식하는 믿음이다.
어버이날 하루 부모님에게 잘 하는 게 아니라, 365일을 어버이날로 지키는 게 진짜 효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