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의존성에 벗어난, 한국 고유의 신학은 과연 가능할까. 이를 위해선 국내 신학교들이 교수 임용에 있어 지나치게 ‘해외 학위’만을 선호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서구 의존성에 벗어난, 한국 고유의 신학은 과연 가능할까. 이를 위해선 국내 신학교들이 교수 임용에 있어 지나치게 ‘해외 학위’만을 선호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지 '벌써' 130년 가까이 흘렀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눈부신 부흥을 경험했고 또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신학이 있다. 하나님을 보다 더 깊이 알기 위한 신학자들의 노력은 교회의 자양분 역할을 했다.

하지만 130년이라는 긴 역사도 미국이나 유럽의 그것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그래서 우리 신학자들은 '서구'의 신학을 배워 그것을 국내에 소개했다. 당연한 일이다. 지식은 쌓일수록 빛이 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오래 전부터 서구의 신학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나치게 서구에 의존하다보니 우리만의 신학이 없다는 반성 때문이다.

특히 올해 WCC 총회와 내년 WEA 총회가 각각 한국의 부산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우리나라에 모여드는 세계교회 지도자들에게 '한국 신학'을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됐다.

'한국 신학'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것을 주장하고, 또 방법도 모색했다. 일단은 서구 신학에 대한 집착 혹은 의존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자면 우리 목회 현장을 좀 더 세밀히 관찰·체험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다. 하지만 이번 기획에선 이런 '일반적인' 것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은 지나치게 높은 '교수 사회의 진입장벽'을 짚어보고 싶다. 높은 지적 수준이 요구되는 직업이 교수라면, 마땅히 교수가 될 수 있는 기준 역시 까다로워야 한다. 신학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신학교의 현실을 보면 단순히 지적 수준만이 아닌 다른 그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교수, 특히 신학교 교수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4년제 대학을 나와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또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학교에 교수로 임용되면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일단 4년제 대학 졸업은 전공에 관계가 없다. 이후 신대원에 오르면, 신학교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대개 목회학석사(M.Div.) 약 2년, 신학석사(Th.M.) 약 2~3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석사학위를 따기까지 4~5년 정도가 걸린다.

문제는 박사학위다. 그 기간이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쉽게 엄두를 낼 만한 것이 아니다. 교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가도 이 길고도 인내를 요구하는 싸움에 지쳐 중도 포기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아무나 교수가 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보면, 이런 과정도 아주 납득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박사학위를 딴 다음이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박사학위를 손에 넣었어도 신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면 한낱 '시간 강사'로 전락, 얼마 되지 않는 '시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신학의 특성상, 신학교 교수 임용에 있어서도 일명 '해외 학위'가 가진 위용은 엄청나다. 주로 미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신학교에서 석·박사 혹은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교수 임용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돈이 들어도 교수 지망생들이 '유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서구 신학' 의존성이 더 심해진다고 신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국내 한 신학교에서 박사학위 코스를 밟고 있는 한 신학생은 "국내 박사학위 소지자는 거의 다 교수에 임용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물론 영미권 신학교는 보유한 신학 자료가 많아 그 만큼 이점이 있지만, 사실 그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공부한 한 신학자는 "(해외 신학교에) 엄청난 신학 자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며 "이미 많은 것들이 국내에 소개가 된 상태였다. 인터넷이 발달해 어디서든 원하는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지금, 저명한 신학자를 보유한 신학교가 아니라면 서구와 국내 신학교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어렵게 '해외 학위'를 따도 학위를 준 해외 신학교의 '네임 벨류'에 따라 차등이 있다는 데 있다. 보수 신학을 대표하는 총신대는 교수 임용에 있어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나 트리니티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출신을 선호하고, 장신대는 미국 프린스턴(Princeton)과 독일 튀빙엔(Tubingen)신학교 출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다른 신학교들도 그 같은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이들 학교가 아닌 곳에서 공부한 이들은 설사 '해외 학위'를 가졌어도 쉽게 교수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교수 임용은 몇 단계를 거치지만 현직 정교수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교원인사위원회'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에 비춰보면, 신학교들의 이 같은 '해외 학위' 혹은 '해외 특정 신학교의 학위'를 중요시 하는 경향은 결국 "학연과 지연의 고착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신학대 교수는 "교수가 되어 신임 교수를 임용할 위치에 서게 되면 내가 나온 학교 출신 지원자에게 더 눈길이 가기 쉽다"며 "하지만 이 같은 '연(緣)'에 따른 교수 임용은 국내 신학의 서구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고, 이는 한국적 신학 발전에 저해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교수 임용시 어느 정도 기준만 된다면 출신 학교보다 지원자의 신학적 소양이나 자질, 참신함 등을 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해외 학위보다 교수 지원자가 '모교 출신이냐' 하는 것에 더 방점을 찍는 신학교도 있다. 국내 한 신학교 학생은 "교수님들을 보면 해외의 유명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딴 것은 물론, 대개 이 학교에서 공부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특히 교단의 영향력이 큰 신학교일 경우 소위 "줄 서기를 잘 해야 교수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지적 수준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더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국적 신학의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신학교 안팎의 일관된 목소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