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조차 좀처럼 ‘거룩함’을 경험하기 어려운 이 시대, ‘거룩의 회복’을 꿈꾸는 R. C. 스프롤(Sproul)의 대표작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지평서원을 통해 출간됐다.
스프롤은 신학생 시절 성경에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한 가지 핵심 개념을 발견했다. 성경에서는 실제로 하나님에 대해 세 번씩이나 ‘거룩하다(사 6:3)’고 설명하면서 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 이후 ‘거룩’의 의미를 알기 위해 끈질기게 부지런히 파고들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도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에서부터 발견되지만,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주기도문의 두번째 ‘문단’은 단순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곧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인식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이고 저자는 강조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레 11:44)”라는 말씀처럼, 거룩함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목적이기도 하다. 세상은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경외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은 정치·경제·운동·사랑 등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다. 그분을 피해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분은 삶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실 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그 거룩하심을 드러내신다. 따라서 거룩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된 예배도, 영적 성장도, 진정한 복종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초월성, 곧 그분이 세상 만물보다 무한히 월등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세상에서 스스로 거룩함을 지닌 것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면 평범한 것도 즉시 거룩한 것으로 바뀐다. 거룩함은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로, 우리는 거기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멀리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를 경험하면 충격을 받을 수도,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에게 마땅히 정의를 실현하시지만, 더불어 은혜로우신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 곧 의로우신 분이 불의한 자를 대신해 죽으신 순간,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말할 필요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도 평안히 거할 수 있다. 성경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즉 자신 있게 나아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 은혜는 무한하지 않고 분명 한계가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언젠가 엄중한 심판을 베푸실 것임을 기억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하다고 가르치는 성경 구절은 단 하나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런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때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당연시하지 말라고 가르치셔야 했다.
정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피하거나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을 주저할 필요는 없지만, 다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거룩한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외에도 모세와 이사야를 시작으로 루터와 칼빈까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대면했던 성경과 교회사 속 여러 인물들의 예를 통해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0년 전 쓰여진 책이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좀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내용들이다.
R. C. 스프롤의 책은 최근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구원의 확신(Can I Be Sure I’m Saved?)>과 <어떻게 기도할까?(The Prayer of the Lord)> 등이다. <구원의 확신>은 오랫동안 교회 내에서 논란이 됐던 ‘구원의 확신’ 문제에 대한 쉽고 명쾌한 해설을 담고 있으며, <어떻게 기도할까?>는 우리가 수없이 반복하는 주기도문을 해설하면서 기도의 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계 리더 중 한 사람인 R. C. 스프롤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우리 곁에서 멀어진 신학을 일반인들의 삶 속에 끌어들이겠다는 소명 의식으로 심오한 진리들을 쉽게 설명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 그는 플로리다에 위치한 리고니어 선교회(Ligonier Ministries) 회장이자 샌퍼드에 있는세인트 앤드류 채플 담임목사로 사역 중이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Renewing Your Mind)’라는 라디오 방송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994년 미국의 한 기독교 잡지 비평가들이 뽑은, ‘신앙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학자’ 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