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2003년 3월 어느 날의 대학 캠퍼스. 따스한 봄볕이 내리던 이날의 오후는 경쾌한 기타의 노래와 싱그러운 찬양으로 가득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학생들은 넓은 광장에서, 꽃이 움트는 정원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선율이 귀를 잡았는지, 아니면 마음을 훔쳤는지 어느새 주위에는 가던 길을 멈춘 청춘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2013년 3월 중순 서울의 모 사립대학 캠퍼스. 겨울을 밀어낸 봄의 기운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기자가 학교를 찾은 날, 이 학교 동아리연합회는 새 학기를 맞아 동아리 박람회를 개최하는 중이었다. 행사장은 약 100개의 동아리들이 차려놓은 부스와 각종 물건들로 가득했고 이를 구경하러 온 학생들은 이곳 저곳에서 호기심을 발하고 있다.
박람회 입구에 들어서자 한 여학생이 웃으며 ‘동아리 소개집’을 하나 쥐어준다. 그 안은 다양한 동아리들에 대한 소개와 홍보들로 가득했다. 동아리들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의 층별 안내도를 비롯해 처음 몇 장의 시시콜콜한 ‘광고’ 페이지를 넘기자 그 많은 동아리들 중 첫 번째로 ‘성소수자’ 동아리가 소개되고 있다. 무언지 모르게 ‘따뜻함’을 주는 동아리 이름과 함께.
그 이름 밑으로 ‘LGBT Society’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생소한 단어라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쳐 부르는 말이란다.
좀 더 읽어내려갔다. “게이들에게 있어 어려움이 있을 때 비빌 언덕이 부족하긴 하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꾸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본인의 자산에 의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 역시 중요하다. 자기 자산이니까. 일반 친구들은 아무래도 삶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결국 만나게 되는 건 이반 친구들이더라. 간혹 애인 사귀면 이반 친구들을 안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반 친구들에게 공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 동성애 책자에 실린 글이라는데, 대충 이해는 가지만 정확히 무슨 뜻지는 잘 모르겠다. 글 옆에는 저녁 무렵인 것 같은 캠퍼스를 배경으로 두 학생이 손을 잡은 사진 하나가 나란히 붙어 있다. 한 학생은 남자가 확실한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모자를 깊이 써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치가 않다. 다만 남자일 거라 짐작할 따름이다. 이어 본격적인 동아리 소개가 이어진다. 1995년 가을, 몇몇 레즈비언 및 게이 학생들이 모임을 만들었고 지난 2003년 이 학교 정식 동아리가 됐다는 것. 영화제도 개최하고 책도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여 놓았다. 하지만 길게 늘어진 부스의 맨 끄트머리에 붙은 이 동아리 부스에는, 기자가 찾은 그 순간 자리를 비웠는지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책상 가운데 꽂힌 무지개 깃발 하나가 홀로 덩그러니 그곳을 지키고 있을 뿐.
반대편엔 종교 관련 동아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소개책자에는 총 10개의 종교 동아리들이 있었다. 이 중 기독교 동아리는 최소 6개 이상이었다. 불교와 증산도 동아리가 각 1개씩, 나머지 2개 동아리는 어느 종교인지가 불분명했다.
기자의 눈에만 그랬는지, 이상하게 찾는 이들이 없어 보였다. 다른 곳에선 춤 동아리인지 여럿이 둘러서 남녀의 ‘스텝’을 구경하고, 또 다른 곳에선 조정(boat race)을 연습할 수 있는 배에 오르려 줄을 서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기독교 동아리 부스들과 성소수자 동아리 부스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도 참 묘하다 생각했다.
한 기독교 동아리 간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일주일 중 모임은 몇 번이나 갖는지, 그 모임에는 몇 명이나 오는지 등을.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 반가웠던 걸까. 그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간사는 목을 돋우며 참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짚어갔다. 정기 모임은 화요일에 있는데, 여기에 한 10여 명 남짓 모인다는 게 간사의 대략적인 설명이다. 그러다 10여명이라는 말에 흠칫한 기자를 눈치챈 것인지, 애써 “(기독교 동아리들 중) 중간 정도”라고 강조한다.
동아리 박람회를 벗어나 캠퍼스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1시간이 넘도록 캠퍼스를 걸었으나 “예수님 믿으세요”라며 말을 걸어오는 이도, 예수님이 그려진 전도용 종이를 건네는 이도 없다. 그래도 새 학기의 출발점이니 한 번은 마주칠 줄 알았는데…. 왁자지껄했던 박람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가롭고 여유로웠지만 머리칼을 날리는 봄바람이 왠지 더 스산하다.
기자가 ‘세상 모르고’ 젊음을 누볐던 10년 전의 그곳, 그 캠퍼스에도 이곳에서와 같은 바람이 불었을까?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플라타너스 나무들 사이로 나를 포함한 학생들의 발걸음을 붙들던 ‘간사’들의 모습만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2003년 3월 어느 날의 대학 캠퍼스. 따스한 봄볕이 내리던 이날의 오후는 경쾌한 기타의 노래와 싱그러운 찬양으로 가득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학생들은 넓은 광장에서, 꽃이 움트는 정원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선율이 귀를 잡았는지, 아니면 마음을 훔쳤는지 어느새 주위에는 가던 길을 멈춘 청춘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2013년 3월 중순 서울의 모 사립대학 캠퍼스. 겨울을 밀어낸 봄의 기운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기자가 학교를 찾은 날, 이 학교 동아리연합회는 새 학기를 맞아 동아리 박람회를 개최하는 중이었다. 행사장은 약 100개의 동아리들이 차려놓은 부스와 각종 물건들로 가득했고 이를 구경하러 온 학생들은 이곳 저곳에서 호기심을 발하고 있다.
박람회 입구에 들어서자 한 여학생이 웃으며 ‘동아리 소개집’을 하나 쥐어준다. 그 안은 다양한 동아리들에 대한 소개와 홍보들로 가득했다. 동아리들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의 층별 안내도를 비롯해 처음 몇 장의 시시콜콜한 ‘광고’ 페이지를 넘기자 그 많은 동아리들 중 첫 번째로 ‘성소수자’ 동아리가 소개되고 있다. 무언지 모르게 ‘따뜻함’을 주는 동아리 이름과 함께.
그 이름 밑으로 ‘LGBT Society’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생소한 단어라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쳐 부르는 말이란다.
좀 더 읽어내려갔다. “게이들에게 있어 어려움이 있을 때 비빌 언덕이 부족하긴 하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꾸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본인의 자산에 의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 역시 중요하다. 자기 자산이니까. 일반 친구들은 아무래도 삶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결국 만나게 되는 건 이반 친구들이더라. 간혹 애인 사귀면 이반 친구들을 안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반 친구들에게 공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 동성애 책자에 실린 글이라는데, 대충 이해는 가지만 정확히 무슨 뜻지는 잘 모르겠다. 글 옆에는 저녁 무렵인 것 같은 캠퍼스를 배경으로 두 학생이 손을 잡은 사진 하나가 나란히 붙어 있다. 한 학생은 남자가 확실한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모자를 깊이 써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치가 않다. 다만 남자일 거라 짐작할 따름이다. 이어 본격적인 동아리 소개가 이어진다. 1995년 가을, 몇몇 레즈비언 및 게이 학생들이 모임을 만들었고 지난 2003년 이 학교 정식 동아리가 됐다는 것. 영화제도 개최하고 책도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여 놓았다. 하지만 길게 늘어진 부스의 맨 끄트머리에 붙은 이 동아리 부스에는, 기자가 찾은 그 순간 자리를 비웠는지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책상 가운데 꽂힌 무지개 깃발 하나가 홀로 덩그러니 그곳을 지키고 있을 뿐.
반대편엔 종교 관련 동아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소개책자에는 총 10개의 종교 동아리들이 있었다. 이 중 기독교 동아리는 최소 6개 이상이었다. 불교와 증산도 동아리가 각 1개씩, 나머지 2개 동아리는 어느 종교인지가 불분명했다.
기자의 눈에만 그랬는지, 이상하게 찾는 이들이 없어 보였다. 다른 곳에선 춤 동아리인지 여럿이 둘러서 남녀의 ‘스텝’을 구경하고, 또 다른 곳에선 조정(boat race)을 연습할 수 있는 배에 오르려 줄을 서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기독교 동아리 부스들과 성소수자 동아리 부스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도 참 묘하다 생각했다.
한 기독교 동아리 간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일주일 중 모임은 몇 번이나 갖는지, 그 모임에는 몇 명이나 오는지 등을.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 반가웠던 걸까. 그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간사는 목을 돋우며 참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짚어갔다. 정기 모임은 화요일에 있는데, 여기에 한 10여 명 남짓 모인다는 게 간사의 대략적인 설명이다. 그러다 10여명이라는 말에 흠칫한 기자를 눈치챈 것인지, 애써 “(기독교 동아리들 중) 중간 정도”라고 강조한다.
동아리 박람회를 벗어나 캠퍼스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1시간이 넘도록 캠퍼스를 걸었으나 “예수님 믿으세요”라며 말을 걸어오는 이도, 예수님이 그려진 전도용 종이를 건네는 이도 없다. 그래도 새 학기의 출발점이니 한 번은 마주칠 줄 알았는데…. 왁자지껄했던 박람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가롭고 여유로웠지만 머리칼을 날리는 봄바람이 왠지 더 스산하다.
기자가 ‘세상 모르고’ 젊음을 누볐던 10년 전의 그곳, 그 캠퍼스에도 이곳에서와 같은 바람이 불었을까?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플라타너스 나무들 사이로 나를 포함한 학생들의 발걸음을 붙들던 ‘간사’들의 모습만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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