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애틀랜타에 오면서 '선교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될 분들의 시선이 부담됐던 건 사실입니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나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산다는 게 하나의 도전이었어요. 일하지 않고 세 사람의 유학생을 뒷바라지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단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딱 맞게 채워주셨어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의 사건들도 많았죠."
지난 3년 반 동안 뉴올리언즈신학대학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지난 주일 목사안수를 받은 박동한 아이티 선교사를 묵묵히 내조했던 이성한 선교사의 말이다.
그녀는 신학공부를 결심하고 애틀랜타를 찾을 때의 막막함,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섬세하게 돌보신 하나님의 간섭하심, 선교사로 나가면서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자녀들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슈가로프한인교회를 섬기면서 배울 수 있던 교회 사역과 관계에서 오는 감사했던 순간들을 하나 하나 이야기하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동시에 선교지에서 다시금 펼쳐낼 아름다운 일들에 대한 기대와 배운 것을 현장에 접목시켜 가슴에 품은 비전을 이뤄나가실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신뢰로 설레이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은 이 두 사람에게 써야 하는 말인 듯, 주거나 받거니 애틀랜타에서의 삶을 회고하면서 웃음과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주 '고향'과 같다는 아이티로 내려가는 두 선교사를 떠나 보내기 아쉬운 건 기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마주 앉았다.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이 발생한 직후 애틀랜타에서 신학공부 차 올라와있는 선교사가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기자는 서둘러 박동한 선교사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후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의 삶과 애틀랜타와 아이티를 오가며 장, 단기 선교를 진행하는 방법과 열매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배우고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은 기자이기에 앞서 크리스천으로서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고 감사제목이 됐다.
박동한 선교사는 "신학공부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엘에이가 아닌 애틀랜타로 오게 하신 이유도 다 알지 못하고 시작했지만, 선교적인 교단인 남침례교에서 복음적이고 전통적인 신학을 배우면서 감사했고 재미있었어요. 아직 더 배울게 많지만, 제가 선교지에서 체험하고 느끼며 생각했던 것들이 정리되고, 무엇이 하나님의 방법인지 뜻인지는 분별할 수 있는 선한 지식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지난 학업의 기간을 정리했다.
박동한 선교사는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다 1998년부터 사랑의 봉사단을 이끌면서 많은 선교지를 직접 다니기도 하고, 단기선교팀을 선교지에 연결해 주는 일을 하면서 단기선교에 대한 비전과 꿈을 품게 됐다. 선교 현지에서의 사역도 중요하지만 단기선교를 결심하고 준비하면서 50%, 선교 현장에 가서 30%, 그리고 다녀 온 뒤 20%의 역량을 분배해야 선교지향적인 교회로 건강하게 부흥하는 교회와 개인이 된다는 경험은 직접 선교현장에 파송되면서도 유효한 '선교전략'이 됐다.
이들 선교사 부부가 애틀랜타에 머물면서 지역교회가 받은 혜택도 크다. 아이티 선교 혹은 중남미 선교에 관심은 있지만, 시작 방법을 모르거나 어떻게 해야 가장 필요한 곳에 적절한 선교 자원을 지원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교회들을 위해 '아이티 선교의 안내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티는 좁기도 하지만 대지진 이후 많은 선교단체와 선교사님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협력선교를 펼치기 적합한 조건이 됐습니다. 자기 사역이나 교단만 생각하면 다른 선교지를 소개시켜 주는 것이 아쉬울 수 있지만, 아이티 전체를 놓고 보면 협력해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을 키워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한다고 보면 아쉬울 게 없죠. 아이티에 들어와 있는 선교단체 간부들이나 선교사님들 대부분은 중견급 이상 사역자들이에요. 풍성한 사역 경험과 다양한 사역의 전략, 비전이 있어요. 저희를 통해 오신 단기선교팀들을 매일 저녁 이런 분들의 명 강의와 간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오지 선교지에서 조차 선교사간 경쟁과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있다는 암암리에 묵인되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아이티처럼 갑자기 전 세계의 관심과 지원이 밀려들게 되면 먼저는 자기 사역을 키우고자 하는 것을 '주를 위한 열심'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 가운데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가 선교센터를 개방해 선교사들간 정보교류의 장을 만들고, 선교하기 원하는 각 교회나 단체에 맞는 선교지와 단체를 연결하는 일들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났다.
"단기선교에 오는 젊은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이들의 생각이 변화돼 행동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이후 몇 십 년을 살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살게 되리라 믿습니다. 소망하는 것은 선교 센터에 전 세계 청년들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까지 머물면서 선교 현장을 섬기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랢을 통해 선교에 대한 시각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선교지에 있지만 전세계에 300명의 선교사를 보내자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지인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해당되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는 "기대감을 갖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처음 선교지로 나갈 때 느꼈던 두려움 보다는 편안함이 큽니다. 애틀랜타에서 지내면서 많은 사랑과 섬김을 받았는데, 아이티에 가서 더 많은 형제들을 세우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감사인사를 대신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뉴올리언즈신학대학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지난 주일 목사안수를 받은 박동한 아이티 선교사를 묵묵히 내조했던 이성한 선교사의 말이다.
그녀는 신학공부를 결심하고 애틀랜타를 찾을 때의 막막함,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섬세하게 돌보신 하나님의 간섭하심, 선교사로 나가면서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자녀들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슈가로프한인교회를 섬기면서 배울 수 있던 교회 사역과 관계에서 오는 감사했던 순간들을 하나 하나 이야기하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동시에 선교지에서 다시금 펼쳐낼 아름다운 일들에 대한 기대와 배운 것을 현장에 접목시켜 가슴에 품은 비전을 이뤄나가실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신뢰로 설레이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은 이 두 사람에게 써야 하는 말인 듯, 주거나 받거니 애틀랜타에서의 삶을 회고하면서 웃음과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주 '고향'과 같다는 아이티로 내려가는 두 선교사를 떠나 보내기 아쉬운 건 기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마주 앉았다.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이 발생한 직후 애틀랜타에서 신학공부 차 올라와있는 선교사가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기자는 서둘러 박동한 선교사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후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의 삶과 애틀랜타와 아이티를 오가며 장, 단기 선교를 진행하는 방법과 열매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배우고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은 기자이기에 앞서 크리스천으로서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고 감사제목이 됐다.
박동한 선교사는 "신학공부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엘에이가 아닌 애틀랜타로 오게 하신 이유도 다 알지 못하고 시작했지만, 선교적인 교단인 남침례교에서 복음적이고 전통적인 신학을 배우면서 감사했고 재미있었어요. 아직 더 배울게 많지만, 제가 선교지에서 체험하고 느끼며 생각했던 것들이 정리되고, 무엇이 하나님의 방법인지 뜻인지는 분별할 수 있는 선한 지식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지난 학업의 기간을 정리했다.
박동한 선교사는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다 1998년부터 사랑의 봉사단을 이끌면서 많은 선교지를 직접 다니기도 하고, 단기선교팀을 선교지에 연결해 주는 일을 하면서 단기선교에 대한 비전과 꿈을 품게 됐다. 선교 현지에서의 사역도 중요하지만 단기선교를 결심하고 준비하면서 50%, 선교 현장에 가서 30%, 그리고 다녀 온 뒤 20%의 역량을 분배해야 선교지향적인 교회로 건강하게 부흥하는 교회와 개인이 된다는 경험은 직접 선교현장에 파송되면서도 유효한 '선교전략'이 됐다.
이들 선교사 부부가 애틀랜타에 머물면서 지역교회가 받은 혜택도 크다. 아이티 선교 혹은 중남미 선교에 관심은 있지만, 시작 방법을 모르거나 어떻게 해야 가장 필요한 곳에 적절한 선교 자원을 지원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교회들을 위해 '아이티 선교의 안내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티는 좁기도 하지만 대지진 이후 많은 선교단체와 선교사님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협력선교를 펼치기 적합한 조건이 됐습니다. 자기 사역이나 교단만 생각하면 다른 선교지를 소개시켜 주는 것이 아쉬울 수 있지만, 아이티 전체를 놓고 보면 협력해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을 키워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한다고 보면 아쉬울 게 없죠. 아이티에 들어와 있는 선교단체 간부들이나 선교사님들 대부분은 중견급 이상 사역자들이에요. 풍성한 사역 경험과 다양한 사역의 전략, 비전이 있어요. 저희를 통해 오신 단기선교팀들을 매일 저녁 이런 분들의 명 강의와 간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오지 선교지에서 조차 선교사간 경쟁과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있다는 암암리에 묵인되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아이티처럼 갑자기 전 세계의 관심과 지원이 밀려들게 되면 먼저는 자기 사역을 키우고자 하는 것을 '주를 위한 열심'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 가운데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가 선교센터를 개방해 선교사들간 정보교류의 장을 만들고, 선교하기 원하는 각 교회나 단체에 맞는 선교지와 단체를 연결하는 일들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났다.
"단기선교에 오는 젊은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이들의 생각이 변화돼 행동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이후 몇 십 년을 살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살게 되리라 믿습니다. 소망하는 것은 선교 센터에 전 세계 청년들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까지 머물면서 선교 현장을 섬기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랢을 통해 선교에 대한 시각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선교지에 있지만 전세계에 300명의 선교사를 보내자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지인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해당되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는 "기대감을 갖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처음 선교지로 나갈 때 느꼈던 두려움 보다는 편안함이 큽니다. 애틀랜타에서 지내면서 많은 사랑과 섬김을 받았는데, 아이티에 가서 더 많은 형제들을 세우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감사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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