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에 관한 좋은 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말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고린도전서 13장은 두려움을 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사람은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의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글에는 아무래도 감동이 덜한 법이다. 바울이 쓴 ‘사랑장’,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중 하나인 고린도전서 13장은 그래서인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자주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익숙한 글이라도 ‘추억’을 덧입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필라델피아 제10장로교회를 담임했으며 현재 휘튼칼리지 총장인 <사랑한다면 예수님처럼(생명의말씀사)>의 저자 필 라이큰(Phil G. Ryken)은, 바울이 하나하나 분석해 놓은 사랑에 ‘예수님의 공생애 행적’들을 덧입히는 작업에 돌입했다. ‘사랑장’의 모든 속성이 예수님의 공생애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공부하는 한 방법은 그 분의 생애와 사역의 관점으로 사랑장을 살펴보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예수님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는 절대로 사랑을 배울 수 없다. 우리의 삶을 예수로 채울 때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는 물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와는 다른 의미이다.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가복음 10장의 ‘부자 청년’을, 저자는 ‘사랑을 안다고 믿었던 청년’이라 부른다. 그리고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아니 인정할 준비도 돼 있지 않겠지만, 우리도 이 청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장은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고, 예배하고, 섬기고 헌신하는 데 있어 자신의 방법만이 최고라고 믿는, 사랑 없는 자들을 향한 말씀이었다.”
‘사랑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장을 친숙하게 느낀다고 해서,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에게 사랑이 많지 않음을 깨닫게 하신다. “우리는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주고도 남을 때만 준다. 섬길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나 불편하지 않은 범위에서만 섬긴다.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가가 보장될 때만 사랑한다.”
‘사랑장’을 쓴 사도 바울조차 자신의 ‘사랑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더 큰 예수님의 사랑’이었지만, 그는 다른 누군가를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라고 말한 것처럼 1인칭 단수형을 사용했다. 이전의 자신을 배설물 같이 여긴 바울이었지만, ‘사랑’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라이큰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에서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임을 끄집어내고, 시몬의 집에서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통해 ‘사랑의 거룩한 기쁨’에 대해 말하며, 나사로를 살리려 가시기 전 이틀을 유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사랑은 기다리는 것’임을 설파한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요한복음 17장의 기도에서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을, 고난당하시는 구세주의 모습에서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이 겹쳐진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고린도전서 13장을 ‘결혼’과 연관짓지만, 말씀 속 사랑의 가르침을 깊이 깨달을수록 이것이 ‘죽음과 희생에 관한 것’임이 더욱 분명해진다고 강조한다. “이 말씀이 지배하는 이미지는,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십자가다.” 그리고 ‘무엇이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믿는,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까지 회복시키시는 ‘한계 없는 믿음’을 말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이라는 미덕보다 귀하다. 사랑이 그토록 위대한 이유는 절대 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도 사랑의 영속성을 침해할 수 없다. 사랑은 영원하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신 사랑이시다. 사랑의 모든 속성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사랑장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사랑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사랑을 좇는 우리의 마음은 쉽게 지친다.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 그러하듯 우리는 사랑에서도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또 실패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그분의 사랑 없이는 절대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이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추구하라!”
익숙한 글에는 아무래도 감동이 덜한 법이다. 바울이 쓴 ‘사랑장’,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중 하나인 고린도전서 13장은 그래서인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자주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익숙한 글이라도 ‘추억’을 덧입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필라델피아 제10장로교회를 담임했으며 현재 휘튼칼리지 총장인 <사랑한다면 예수님처럼(생명의말씀사)>의 저자 필 라이큰(Phil G. Ryken)은, 바울이 하나하나 분석해 놓은 사랑에 ‘예수님의 공생애 행적’들을 덧입히는 작업에 돌입했다. ‘사랑장’의 모든 속성이 예수님의 공생애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공부하는 한 방법은 그 분의 생애와 사역의 관점으로 사랑장을 살펴보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예수님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는 절대로 사랑을 배울 수 없다. 우리의 삶을 예수로 채울 때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는 물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와는 다른 의미이다.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가복음 10장의 ‘부자 청년’을, 저자는 ‘사랑을 안다고 믿었던 청년’이라 부른다. 그리고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아니 인정할 준비도 돼 있지 않겠지만, 우리도 이 청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장은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고, 예배하고, 섬기고 헌신하는 데 있어 자신의 방법만이 최고라고 믿는, 사랑 없는 자들을 향한 말씀이었다.”
‘사랑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장을 친숙하게 느낀다고 해서,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에게 사랑이 많지 않음을 깨닫게 하신다. “우리는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주고도 남을 때만 준다. 섬길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나 불편하지 않은 범위에서만 섬긴다.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가가 보장될 때만 사랑한다.”
‘사랑장’을 쓴 사도 바울조차 자신의 ‘사랑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더 큰 예수님의 사랑’이었지만, 그는 다른 누군가를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라고 말한 것처럼 1인칭 단수형을 사용했다. 이전의 자신을 배설물 같이 여긴 바울이었지만, ‘사랑’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라이큰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에서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임을 끄집어내고, 시몬의 집에서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통해 ‘사랑의 거룩한 기쁨’에 대해 말하며, 나사로를 살리려 가시기 전 이틀을 유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사랑은 기다리는 것’임을 설파한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요한복음 17장의 기도에서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을, 고난당하시는 구세주의 모습에서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이 겹쳐진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고린도전서 13장을 ‘결혼’과 연관짓지만, 말씀 속 사랑의 가르침을 깊이 깨달을수록 이것이 ‘죽음과 희생에 관한 것’임이 더욱 분명해진다고 강조한다. “이 말씀이 지배하는 이미지는,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십자가다.” 그리고 ‘무엇이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믿는,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까지 회복시키시는 ‘한계 없는 믿음’을 말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이라는 미덕보다 귀하다. 사랑이 그토록 위대한 이유는 절대 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도 사랑의 영속성을 침해할 수 없다. 사랑은 영원하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신 사랑이시다. 사랑의 모든 속성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사랑장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사랑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사랑을 좇는 우리의 마음은 쉽게 지친다.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 그러하듯 우리는 사랑에서도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또 실패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그분의 사랑 없이는 절대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이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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