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現在)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지금의 시간』이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붙잡을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시간과 함께 살아간다. 시간은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지켜보고 함께 한다.
하루의 시간은 24시간이고 시간을 분으로 나누어 1,440분으로 하루를 살기도 한다. 또한 분을 다시 초로 나누어 86,400초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렇게 시간의 구분은 초, 분, 시간, 일, 주일, 달, 년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데 일 년은 31,536,000초가 된다. 이렇게 일평생 무한대(無限大)의 초를 사용하며 1년, 10년, 100년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에게 있어서 1/1000초의 의미는 금메달과 은메달을 가르는 시간이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에게 있어서 1초의 의미는 죽음과 삶을 가르는 시간이다. 버스나 기차를 놓친 사람의 1분의 의미는 학교에서의 개근과 정근을 가르는 시간이다. 약속을 정해놓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1시간의 의미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시간이다. 이렇게 시간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 그 이상이다. 인간사에 현재라고 하는 시간은 숨을 쉬고 있는 지금이고 살아 있을 때의 지금은 계속해서 또 다른 삶의 지금을 만들어 낸다.
현재를 영어로는 Present로 표현한다. Present란 단어는 선물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인간의 삶 가운데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 해 주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다. 그렇다면 왜? 현재를 선물이라고 하나? 이는 분명 현재의 삶은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중의 선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시계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어도 시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그냥 없어지는 선물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시간만큼은 정신 바짝 차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소중한 선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에 빈둥거리는 사람은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좀먹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요행이나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사(人間事)는 아니다. 분명 댓가를 지불해야만 그 지불된 댓가만큼 선물이 돌아온다. 인생의 삼분의 일은 잠을 자며 살아간다. 그런데 잠자는 시간 외에 잠을 자는 이들이 많다.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고 잠잘 때 잠을 자야지 일할 때 일하지 않고 수많은 시간을 일하지 않고 잠으로 허비하기에는 선물로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아깝지 아니한가?
나는 어떻게 현재에 주어진 선물의 시간을 사용 할 것인가? 그 시간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자신에게 반문(反問)해 보라. 성인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66.9%의 사람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학창시절에 조금만 더 공부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여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쉬는 것도 중요하다. 쉼은 또 다른 결과를 위한 씨뿌림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이라는 선물을 기쁨으로 받고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시간을 보내자.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바쁜 것 보다는 중요한 것을 먼저 하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남들보다 일초 먼저 시작하자. 오늘은 현재 뿐이다. 과거가 오늘이 될 수 없고 미래가 오늘이 될 수 없다. 현재가 지나면 미래가 열린다. 그러나 미래를 기다리려면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미래는 선물로 받은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복이냐?' '불행이냐?'가 결정된다. 현재(present), 즉 선물(present)을 선물답게 만들려면 현재라는 선물에 조건 없이 감사하며 살아가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하루의 시간은 24시간이고 시간을 분으로 나누어 1,440분으로 하루를 살기도 한다. 또한 분을 다시 초로 나누어 86,400초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렇게 시간의 구분은 초, 분, 시간, 일, 주일, 달, 년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데 일 년은 31,536,000초가 된다. 이렇게 일평생 무한대(無限大)의 초를 사용하며 1년, 10년, 100년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에게 있어서 1/1000초의 의미는 금메달과 은메달을 가르는 시간이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에게 있어서 1초의 의미는 죽음과 삶을 가르는 시간이다. 버스나 기차를 놓친 사람의 1분의 의미는 학교에서의 개근과 정근을 가르는 시간이다. 약속을 정해놓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1시간의 의미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시간이다. 이렇게 시간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 그 이상이다. 인간사에 현재라고 하는 시간은 숨을 쉬고 있는 지금이고 살아 있을 때의 지금은 계속해서 또 다른 삶의 지금을 만들어 낸다.
현재를 영어로는 Present로 표현한다. Present란 단어는 선물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인간의 삶 가운데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 해 주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다. 그렇다면 왜? 현재를 선물이라고 하나? 이는 분명 현재의 삶은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중의 선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시계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어도 시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그냥 없어지는 선물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시간만큼은 정신 바짝 차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소중한 선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에 빈둥거리는 사람은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좀먹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요행이나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사(人間事)는 아니다. 분명 댓가를 지불해야만 그 지불된 댓가만큼 선물이 돌아온다. 인생의 삼분의 일은 잠을 자며 살아간다. 그런데 잠자는 시간 외에 잠을 자는 이들이 많다.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고 잠잘 때 잠을 자야지 일할 때 일하지 않고 수많은 시간을 일하지 않고 잠으로 허비하기에는 선물로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아깝지 아니한가?
나는 어떻게 현재에 주어진 선물의 시간을 사용 할 것인가? 그 시간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자신에게 반문(反問)해 보라. 성인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66.9%의 사람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학창시절에 조금만 더 공부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여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쉬는 것도 중요하다. 쉼은 또 다른 결과를 위한 씨뿌림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이라는 선물을 기쁨으로 받고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시간을 보내자.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바쁜 것 보다는 중요한 것을 먼저 하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남들보다 일초 먼저 시작하자. 오늘은 현재 뿐이다. 과거가 오늘이 될 수 없고 미래가 오늘이 될 수 없다. 현재가 지나면 미래가 열린다. 그러나 미래를 기다리려면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미래는 선물로 받은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복이냐?' '불행이냐?'가 결정된다. 현재(present), 즉 선물(present)을 선물답게 만들려면 현재라는 선물에 조건 없이 감사하며 살아가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