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등을 쓴 저술가이자 ‘회의자들의 안내자’라는 별칭을 가진 필립 얀시(Philip Yancey)의 전면 개정판 두 권,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IVP)>와 <단단한 진리(포이에마)>가 연이어 출간됐다.
가장 최근 나온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The Jesus I Never Knew)>는 지난 1998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개정판으로, ‘진정한 예수를 찾아 떠나는 영적 여행’이다. 얀시는 ‘종교에 가려진 예수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성경 속 ‘활자’에 갇힌 예수를 자신의 평범한 삶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는 그가 <스토리 성경>, <예수님이 읽으신 성경>,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 등의 작품을 통해 해 오던 일이다.
“성경 대학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온갖 경건한 친밀감에도 예수님은 늘 멀게만 느껴졌다. 그 분은 내게 그저 치밀한 연구 대상이 되어갔다. 나는 복음서에 나오는 서른네 가지 기적들을 모조리 외웠지만, 그 영향력을 제대로 깨달은 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팔복에 관해 배웠지만, 그대로 사는 건 고사하고 그 신비한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없었다.”
필립 얀시는 자신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삶의 ‘분기점’이 되셨고,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느냐가 우리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으리라는 당신의 대담한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다가도 때로는 갈릴리 호숫가에 살던 2천년 전의 한 남자가 과연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감추지 못한다.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같은 그의 책 제목들은 그러한 번민 속에 등장했고, 그렇게 우리와 같은 땅에서 숨 쉬고, 웃고 울며 분노했던 ‘사람 냄새 나는 예수’가 탄생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로부터 늘 논의를 진전시키는 얀시는 예수의 탄생부터 그 당시의 배경, 사탄의 시험 등을 살피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수’의 모습을 끄집어내고, 산상수훈이라는 ‘위대한 반전’, 그의 ‘불쾌한 설교’들과 ‘초자연적 능력’, 십자가와 부활 등을 꼼꼼히 따지면서 그 분이 왜 오셨는가를 고민한다. 이를 통해 예수에게서 ‘죄가 없지만 죄인들의 친구’, ‘하나님이자 사람’, ‘하나님의 초상’, ‘사랑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초상’, ‘상처입은 치유자’ 등의 인상을 받았다고 정리한다.
“예수님에 대한 조사를 결론지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대답만큼이나 많은 질문이 생겨났다. 확실히 나는 그분을 길들이는 데 실패했다. 남들에게는 고사하고 나 자신에게조차. 이제 나는 예수님을 범주화하거나 일정한 틀 속에 끼워 넣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나도 모르게 의심한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살았던 어떤 사람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삶의 본이 되는 사람과 삶 자체인 사람’의 차이점이다.”
<단단한 진리>는 필립 얀시가 지난 1982년 라는 이름으로 펴낸 책을 전면 개정·확장(Revised and Expanded)해 30년 만에 재출간한 책으로, 영어판보다 한국어판이 먼저 나와 화제가 됐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특별히 첨가했다.
서문에서 얀시는 “한국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브라질과 필리핀처럼 교회가 사회가 ‘허니문’을 즐기는 곳들, 체코나 덴마크처럼 ‘이혼 국면’에 처한 국가들, 미국처럼 ‘원숙한 결혼’ 수준에 이른 나라들 가운데 어느 지점쯤 와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 “규모가 크고 사역이 활발하기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교회들이 즐비하고, 진지하고 사려 깊게 신학을 연구하는 세미나들이 줄을 이으며, 예배음악은 아낌없이 갈채를 보낼 만큼 전문적이고, 기독교 서적들도 꾸준히 팔려나간다. 하지만 과연 다음 세대에도 똑같은 열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점을 감안해 그는 크리스천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부닥치게 마련인 인류가 겪는 고통과 자유의 한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방식 따위의 문제들을 1부에서, 세계의 온갖 긴급한 문제들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반응해야 하는지를 2부에서, 한국의 작가와 예술가들이 믿음을 표현하는 가이드라인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몇 인물들을 3부에서 각각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총 13편의 글에 앞서 얀시는 “개인적으로는 미국이 세상에 끼친 영향 가운데 상당 부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미국을 직접 여행해 보면 이런 현상의 이면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실하게 따르려 노력하는 반문화적 크리스천들이 있다”며 “한 시대가 채 가기도 전에 영적·경제적 기적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린 한국 크리스천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서구 크리스천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감 없이 기록했다”고 전했다.
책에서 저자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상황을 통해 무고한 이들이 희생당하던 그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를 질문하면서 잊어서는 안될 교훈을 찾은 다음, “그리스도는 사로잡힌 자들을 해방시키고 매인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려 지구라는 수용소에 들어오셨으며, 그 뜻을 이루라는 사명을 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이야기한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예수께서 부탁하신 이 임무가 얼마나 소중한 프로젝트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그 막중한 교훈을 ‘역사 교육’쯤으로 간주하면서 책임을 회피해선 절대 안 된다고 설파한다.
필립 얀시는 이처럼 ‘하나님이 전능하고 선한 분이라면 왜 당장 내게서 이 고통을 가져가지 않는가’와 같은 실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물음부터, 리처드 도킨스처럼 생물학적 다윈주의로 무장한 신(新)무신론과 도덕적 상대주의의 도전, 기독교 신앙의 실천과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문제들까지 건드리고 답한다. 모호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곧장 핵심으로 돌진해 허술한 논리와 위선 대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다운 ‘단호한’ 내용에 대비되는 한국어판 제목의 ‘모호함’은 다소 아쉽다.
가장 최근 나온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The Jesus I Never Knew)>는 지난 1998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개정판으로, ‘진정한 예수를 찾아 떠나는 영적 여행’이다. 얀시는 ‘종교에 가려진 예수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성경 속 ‘활자’에 갇힌 예수를 자신의 평범한 삶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는 그가 <스토리 성경>, <예수님이 읽으신 성경>,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 등의 작품을 통해 해 오던 일이다.
“성경 대학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온갖 경건한 친밀감에도 예수님은 늘 멀게만 느껴졌다. 그 분은 내게 그저 치밀한 연구 대상이 되어갔다. 나는 복음서에 나오는 서른네 가지 기적들을 모조리 외웠지만, 그 영향력을 제대로 깨달은 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팔복에 관해 배웠지만, 그대로 사는 건 고사하고 그 신비한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없었다.”
필립 얀시는 자신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삶의 ‘분기점’이 되셨고,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느냐가 우리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으리라는 당신의 대담한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다가도 때로는 갈릴리 호숫가에 살던 2천년 전의 한 남자가 과연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감추지 못한다.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같은 그의 책 제목들은 그러한 번민 속에 등장했고, 그렇게 우리와 같은 땅에서 숨 쉬고, 웃고 울며 분노했던 ‘사람 냄새 나는 예수’가 탄생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로부터 늘 논의를 진전시키는 얀시는 예수의 탄생부터 그 당시의 배경, 사탄의 시험 등을 살피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수’의 모습을 끄집어내고, 산상수훈이라는 ‘위대한 반전’, 그의 ‘불쾌한 설교’들과 ‘초자연적 능력’, 십자가와 부활 등을 꼼꼼히 따지면서 그 분이 왜 오셨는가를 고민한다. 이를 통해 예수에게서 ‘죄가 없지만 죄인들의 친구’, ‘하나님이자 사람’, ‘하나님의 초상’, ‘사랑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초상’, ‘상처입은 치유자’ 등의 인상을 받았다고 정리한다.
“예수님에 대한 조사를 결론지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대답만큼이나 많은 질문이 생겨났다. 확실히 나는 그분을 길들이는 데 실패했다. 남들에게는 고사하고 나 자신에게조차. 이제 나는 예수님을 범주화하거나 일정한 틀 속에 끼워 넣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나도 모르게 의심한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살았던 어떤 사람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삶의 본이 되는 사람과 삶 자체인 사람’의 차이점이다.”
▲단단한 진리 ㅣ 필립 얀시 | 포이에마 | 360쪽 | 13,800원 |
서문에서 얀시는 “한국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브라질과 필리핀처럼 교회가 사회가 ‘허니문’을 즐기는 곳들, 체코나 덴마크처럼 ‘이혼 국면’에 처한 국가들, 미국처럼 ‘원숙한 결혼’ 수준에 이른 나라들 가운데 어느 지점쯤 와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 “규모가 크고 사역이 활발하기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교회들이 즐비하고, 진지하고 사려 깊게 신학을 연구하는 세미나들이 줄을 이으며, 예배음악은 아낌없이 갈채를 보낼 만큼 전문적이고, 기독교 서적들도 꾸준히 팔려나간다. 하지만 과연 다음 세대에도 똑같은 열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점을 감안해 그는 크리스천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부닥치게 마련인 인류가 겪는 고통과 자유의 한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방식 따위의 문제들을 1부에서, 세계의 온갖 긴급한 문제들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반응해야 하는지를 2부에서, 한국의 작가와 예술가들이 믿음을 표현하는 가이드라인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몇 인물들을 3부에서 각각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총 13편의 글에 앞서 얀시는 “개인적으로는 미국이 세상에 끼친 영향 가운데 상당 부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미국을 직접 여행해 보면 이런 현상의 이면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실하게 따르려 노력하는 반문화적 크리스천들이 있다”며 “한 시대가 채 가기도 전에 영적·경제적 기적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린 한국 크리스천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서구 크리스천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감 없이 기록했다”고 전했다.
책에서 저자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상황을 통해 무고한 이들이 희생당하던 그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를 질문하면서 잊어서는 안될 교훈을 찾은 다음, “그리스도는 사로잡힌 자들을 해방시키고 매인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려 지구라는 수용소에 들어오셨으며, 그 뜻을 이루라는 사명을 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이야기한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예수께서 부탁하신 이 임무가 얼마나 소중한 프로젝트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그 막중한 교훈을 ‘역사 교육’쯤으로 간주하면서 책임을 회피해선 절대 안 된다고 설파한다.
필립 얀시는 이처럼 ‘하나님이 전능하고 선한 분이라면 왜 당장 내게서 이 고통을 가져가지 않는가’와 같은 실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물음부터, 리처드 도킨스처럼 생물학적 다윈주의로 무장한 신(新)무신론과 도덕적 상대주의의 도전, 기독교 신앙의 실천과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문제들까지 건드리고 답한다. 모호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곧장 핵심으로 돌진해 허술한 논리와 위선 대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다운 ‘단호한’ 내용에 대비되는 한국어판 제목의 ‘모호함’은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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