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위해 헌신하던 김창환 선교사의 사인이 독극물로 밝혀지면서, 북한인권 및 선교단체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에 납치됐던 김동식·안승운 목사의 석방운동을 벌였던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할 게 아니라 그 사건을 부각시키고, 진상을 규명하고,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며 “김창환 선교사님은 순교한 셈인데, 한국교회가 그 분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념하면서 그 분의 순교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목사와 함께 목회자들의 석방운동에 앞장섰던 기독교사회책임 김규호 사무총장은 “故 김동식 목사님을 비롯해 북한의 이러한 테러 행위가 한두 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진작부터 김창환 선교사님의 사인을 북한 공작원에 의한 독살로 확신했다”며 “체제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직자를 살해하는 이러한 북한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고 규탄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중국 당국이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기는 커녕 북한과의 관계만 중시하다 보니 선교사들을 체포하고 함정 수사를 묵인하는 야만적 행위를 일삼는 것이 문제”라며 “이 때문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나 목회자, 평신도들이 한국으로 추방되거나 활동이 많이 축소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중국 정부가 북한 보위부와 공작원들을 묵인하고 방조한 결과 대한민국 선교사들에게 이러한 피해가 오고 있다”며 “비인도적인 중국 당국의 처사를 국제사회가 함께 규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쉬운 점은 유족들이 서둘러 화장을 결정한 점”이라며 “외교통상부의 압력을 받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중국 내 다른 선교사들이 추가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사인을 밝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다.
손과마음선교회 김창범 사무총장은 중국 내 북한주민 돕기와 선교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김창범 목사는 “사실 교회나 선교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사역하다 보니, 연대해서 정보를 나누거나 힘을 합쳐는 일이 드문 등 각개전투식으로 선교하고 있다”며 “어림잡아 200-300명의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애를 쓰고 계시는데, 이들의 열악한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더구나 탈북자 돕기나 북한 선교 등은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파악이 더 힘들지만, 북한 동포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개신교 사역자들이 평신도이든 목회자이든 헌신적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 있음을 한국교회 성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이렇게 북한을 돕는 이들은 어느 종교인들보다 많고, 사실상 90% 가까이가 개신교 선교사들이 땀과 눈물을 흘려 헌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분들은 대개 중국에 나와있는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시고, 중국 내 북한 꽃제비나 2세 등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많이 하고 계신다”며 “그러나 이 분들의 활동은 사실상 중국 공안 등 정보라인에 의해 다 파악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하고 힘들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창범 목사는 “한국교회는 남한 출신보다는 탈북자 출신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가 사역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더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같은 대한민국 국민 신분이기 때문에 관계가 없고, 보통 탈북자들이 더 열의가 뜨거울 뿐더러 그들의 친인척들이 상당수 중국에 나와있어 유리하다”고 제안했다.
故 김창환 선교사는 지난해 8월 21일 오후 중국 요녕성(랴오닝성) 단둥 시내 백화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순교했다. 김 선교사의 죽음은 의문사로 남아있었으나, 최근 정보 당국이 그의 사인(死因)을 독극물 브롬화스티그민에 의한 심장마비라고 통보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당시 몇 시간 만에 온 몸에 퍼렇게 멍이 드는 등 독침으로 찌른 정황이 역력했다.
개신대학원대학교와 한세대 신대원에서 공부한 김창환 선교사는 지난 1992년 2월부터 부인과 함께 중국 단둥에서 북한 선교활동을 해 왔다. 김 선교사는 그곳에서 탈북자와 북한 어린이들을 도왔고, 김정일 비판 문건과 성경 등을 북한에 밀반입하는 등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도 활동했다.
김 선교사의 부인은 “남편은 평소 북한 사투리를 익히는 등 어떻게 하면 북한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늘 연구하던 사람이었고, 중국 공안의 감시대상 리스트 1순위에 오른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며 “그는 ‘북한 주민과 선교를 위해 일생을 건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납치됐던 김동식·안승운 목사의 석방운동을 벌였던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할 게 아니라 그 사건을 부각시키고, 진상을 규명하고,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며 “김창환 선교사님은 순교한 셈인데, 한국교회가 그 분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념하면서 그 분의 순교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목사와 함께 목회자들의 석방운동에 앞장섰던 기독교사회책임 김규호 사무총장은 “故 김동식 목사님을 비롯해 북한의 이러한 테러 행위가 한두 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진작부터 김창환 선교사님의 사인을 북한 공작원에 의한 독살로 확신했다”며 “체제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직자를 살해하는 이러한 북한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고 규탄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중국 당국이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기는 커녕 북한과의 관계만 중시하다 보니 선교사들을 체포하고 함정 수사를 묵인하는 야만적 행위를 일삼는 것이 문제”라며 “이 때문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나 목회자, 평신도들이 한국으로 추방되거나 활동이 많이 축소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중국 정부가 북한 보위부와 공작원들을 묵인하고 방조한 결과 대한민국 선교사들에게 이러한 피해가 오고 있다”며 “비인도적인 중국 당국의 처사를 국제사회가 함께 규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쉬운 점은 유족들이 서둘러 화장을 결정한 점”이라며 “외교통상부의 압력을 받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중국 내 다른 선교사들이 추가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사인을 밝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다.
손과마음선교회 김창범 사무총장은 중국 내 북한주민 돕기와 선교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김창범 목사는 “사실 교회나 선교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사역하다 보니, 연대해서 정보를 나누거나 힘을 합쳐는 일이 드문 등 각개전투식으로 선교하고 있다”며 “어림잡아 200-300명의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애를 쓰고 계시는데, 이들의 열악한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더구나 탈북자 돕기나 북한 선교 등은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파악이 더 힘들지만, 북한 동포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개신교 사역자들이 평신도이든 목회자이든 헌신적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 있음을 한국교회 성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이렇게 북한을 돕는 이들은 어느 종교인들보다 많고, 사실상 90% 가까이가 개신교 선교사들이 땀과 눈물을 흘려 헌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분들은 대개 중국에 나와있는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시고, 중국 내 북한 꽃제비나 2세 등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많이 하고 계신다”며 “그러나 이 분들의 활동은 사실상 중국 공안 등 정보라인에 의해 다 파악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하고 힘들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창범 목사는 “한국교회는 남한 출신보다는 탈북자 출신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가 사역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더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같은 대한민국 국민 신분이기 때문에 관계가 없고, 보통 탈북자들이 더 열의가 뜨거울 뿐더러 그들의 친인척들이 상당수 중국에 나와있어 유리하다”고 제안했다.
故 김창환 선교사는 지난해 8월 21일 오후 중국 요녕성(랴오닝성) 단둥 시내 백화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순교했다. 김 선교사의 죽음은 의문사로 남아있었으나, 최근 정보 당국이 그의 사인(死因)을 독극물 브롬화스티그민에 의한 심장마비라고 통보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당시 몇 시간 만에 온 몸에 퍼렇게 멍이 드는 등 독침으로 찌른 정황이 역력했다.
개신대학원대학교와 한세대 신대원에서 공부한 김창환 선교사는 지난 1992년 2월부터 부인과 함께 중국 단둥에서 북한 선교활동을 해 왔다. 김 선교사는 그곳에서 탈북자와 북한 어린이들을 도왔고, 김정일 비판 문건과 성경 등을 북한에 밀반입하는 등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도 활동했다.
김 선교사의 부인은 “남편은 평소 북한 사투리를 익히는 등 어떻게 하면 북한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늘 연구하던 사람이었고, 중국 공안의 감시대상 리스트 1순위에 오른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며 “그는 ‘북한 주민과 선교를 위해 일생을 건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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