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니가 매년 정초에 개최하는 신년음악회는 1941년 1월 1일에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연주회를 연 것이 기원이다. 이때부터 1986년까지는 빈 필의 상임지휘자인 클레멘스 크라우스, 요제프 크립스, 빌리 보스코프스키, 로린 마젤에 의해 연주되었다.

1954년 1대 상임이던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죽음은 빈 필하모닉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었다. 그의 후임으로 신년 음악회를 누가 계속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였다. 이런 내홍 가운데 외부 인물 영입이 쉽지않자 수석악장이던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지휘자로 발탁되었다. 그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를 25년이나 지휘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의 후임으로는 로린 마젤을 선택하였고 그는 1980년부터 86년 까지 일곱차례 신년 음악회를 지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98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객원 지휘한 이후 세계 유명 마에스트로들이 지휘봉을 잡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오자와 세이지, 마리스 얀손스, 조르주 프레트르, 다니엘 바렌보임, 프란츠 벨저-뫼스트등이 세기의 연주회의 로망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특히 2002년에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세이지 오자와가 마치 나비가 춤추듯이 라테츠기 행진곡을 지휘하여 만장한 청중들로부터 환호 갈채를 받는다. 유투브 동영상에 떠오르는 그의 지휘는 춤 그 자체이다. 그의 손짓, 몸짓, 익살스런 얼굴표정, 청중을 박수로 이끄는 절묘한 싸인이야말로 빈필의 신년음악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나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는 밋밋하기 짝이없다. 빈 신년 음악회에서 연주돠는 곡들은 주로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것이 대부분이다. 원칙적으로 관현악만의 연주곡을 선곡하지만 1987년 첫 객원 지휘자였던 카라얀의 동반자로서 특별 출연한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의 청아한 노래는 릴릭 소프라노로서 일품이었다. 빈필의 신년음악회는 전통적 앵콜곡으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되는데 소북의 전주로 시작되는 이곡은 청중들이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 지휘자들은 개성이 넘치는 방법으로 청중들을 연주곡과 혼연일체가 되도록 하는데 이것이 묘미중에 묘미이다.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sch)은 요한 스트라우스가 작곡한 행진곡으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장군인 라데츠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라데츠키는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진압한장군이다. 1848년 3월 부패한 메테르니히 전제 정치에 대한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당시 보수파로 정부측에가담한 요한 스트라우스는 정부군의 사기 앙양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영웅 이름을 빌린 이 곡을 쓴 것이다. 그는 이 행진곡으로 인하여 반혁명적인 작곡가라 해서 빈에서 살 수 없게 되어 한 때 런던으로 떠나기도 하였다. 이곡은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마치 미국인 들이 즐겨 부르는 성조기여 영원하라!처럼 사랑하는 국민 행진곡이다.

워싱턴에도 여러 음악회가 기획되고 또 동포사회의 사랑을 받고있다. 솔리스트앙상블, 크리스챤남성합창단, 기독합창단, 장로합창단등은 그 역사가 십수년에 이르고 그 기량들이 날로 향상되어 연주회때마다 남다른 기대가 크다. 필자도 청소년 오케스트라 창단에 일익을 감당하였고 오랫동안 연주회를 지켜보고 감격하였다. 교협의 성탄축하음악예배를 시작하여 매년 그 성숙한 음악회에 맘 설레기도 한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 워싱턴 신년음악회를 조직하고 한판 신나는 행진곡을 함께 박수치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런 꿈을 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