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외향적이며 시각적인 것으로 성장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으로 “건강한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건강’이란 단어는 독일의 교회성장학자 크리스티안 A 슈바르츠(Christian A. Schwarz)가 그의 책 "자연적 교회 성장(NATURAL CHURCH DEVELOPMENT)"에서 제시한 말이다. 그는 지금 교회 성장에 대한 것이 좋은 교회를 말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기존의 외적 성장에서 세포 하나가 건강해야 자연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 건강한 교회의 단어를 언급하였다. 그가 말하는 건강한 교회는 "능력 있는 리더십, 은사중심사역, 뜨거운 영성, 기능적인 구조, 영감 있는 예배, 전체적인 소그룹, 필요중심의 전도, 사랑의 인간관계"라고 했다. 교회내의 활동성, 즉 몸의 구조를 본다면 육체와 정신의 시너지(Synergy) 효과가 극대화된 상태와 같은 현상이 교회 내에서도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라는 말처럼 건강해야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는 것이고, 건강해야 일하고, 건강해야 공부하고, 건강해야 행복을 누리게 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건강은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 몸의 건강을 위한다고 보약을 먹고, 각종 보신을 위해 좋은 것을 먹은 후 그 좋은 건강을 온전하지 않은 곳에 사용한다면 그 건강은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다. 태권도를 배워서 사람을 때리는 조폭에 가입한다던가, 영양제나 인삼, 홍삼을 먹고 그 힘으로 쾌락을 사랑하는데 사용한다고 하자. 그 건강이 누구를 위한 건강이겠는가?

미국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밴스 하브너(Vance Havner)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무정부상태에 빠졌고 거짓된 교회는 배교(背敎)하고 있으며 참된 교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관심하고, 게으르며, 미지근한 교회는 하나님을 역겹게 하며 교회를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지 설탕이 아니다. 우리의 사역은 세상을 깨끗케 하는 것이지 맛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브너 목사는 현대 교회의 어두운 부분을 잘 지적하고 있다. ‘건강한 교회’의 표어가 단지 교회의 역동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적 원리와 질서를 외면한다면 그것 또한 건강한 교회안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그러기에 건강함과 건전함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

건강과 건전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것은 보다 더 거룩하고 신령한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5:48)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온전함은 흠이 없는 것 , 깨끗한 것, 거룩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고, 권능을 보인다고 다 건강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잘했다고 할 때 그것이 건강한 것이다. 예수님 앞에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였다고 해도 예수님이 모른다고 하면 그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거짓 교리를 따르는 무리들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그것을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교회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율법의 가르침과 교훈, 그리고 선지자의 이적과 예언이 있어도 성경의 교훈을 넘어가면 그 건강은 역시 또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사람 중심적인 건강일 수밖에 없다.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살인하기 위해 칼을 들고 빨리 달리는 사람을 보고 잘 달린다고 감탄할 수는 없다. 독초가 뒷마당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유기농을 한다고 칭찬할 수 없다. 비록 쭉 빠지지는 않았지만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어도 화학제품을 넣지 않고 키운 콩나물이라면 그것을 보고 건강한 음식, 건전한 반찬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길고, 잘생긴, 건강함과 건전함이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