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한 신학자는 오랜 ‘교수’ 생활을 접고 돌연 교회를 개척한다. 신학자로 나름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던 터라 다소 의외였다. 서울 중심가 한 상가에 교회를 임대한 그는, 이후 지금까지 교수가 아닌 ‘목사’로 인생 제2막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왜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까. 신학의 길이 고단했기 때문일까. 태풍이 지나간 8월 말의 오후, 그로부터 신학교를 박차고 나오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크진 않았지만 십자가 불빛이 엄숙했던 그의 교회에서.
목회 경험 없는 신학자들, 신학과 신앙이 ‘따로’
-왜 신학교에서 나왔나.
“신학에 회의를 느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지금 한국의 신학 현실에 염증을 느꼈다는 게 더 맞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신학이 신앙과 동떨어져 있다. 그 내용은 틀린 게 없다. 그런데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그것을 신앙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신학자, 학생들, 그리고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 신학함에 진정성이 없다. 지금 신학대 교수들 태반은 평신도들의 삶을 모른다. 그러니 신학을 목회에 적용시키지 못한다. 학생들도 소명감이 부족하다. 아무리 가르쳐도 머리로만 듣지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신학자들은 실제 목회 현장을 모를까.
“그야 목회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신학대는 교수 임용 기준에 ‘목회 경력 5년’을 명시하고 있는데도, 실제 그 학교 교수들 중에 이 기준에 맞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것만 봐도 지금 한국의 신학이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졌는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신학을 왜 하는가? 내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더 잘 알아서 그 뜻대로 살기 위함 아닌가. 그런데도 삶은 없고 학문만 있다.”
교수들 70% 책 안 써… 신학이 교회 이끌지 못해
-신학자도 문제지만 그런 신학자를 배출하는 신학교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신학교에 정치와 기업의 논리가 팽배하다. 그런 것들이 아주 없어야 한다는 건 물론 아니다. 필요하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치다. 교단 신학교에선 교수들이 자리 보전하려고 ‘줄 서기’에 바쁘다. 교단 목사들에게 잘 보여야 교수도 되고 승진도 하니까. 이런 데서 무슨 대(大) 신학자가 나오겠나. 신학자라면 성경을 파고 책 속에 묻혀야 할 텐데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으니. 오죽하면 ‘신학교 가지 말고 차라리 혼자 공부하는 게 낫다’는 말까지 있을까.
교단 신학교가 아니라면 이런 정치적인 것에선 어느 정도 자유롭다. 하지만 그런 신학교는 또 돈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학교에 돈을 대는 이사장의 말 한 마디가 곧 하나님의 그것과 같다. 이사장은 어떻게든 이윤을 남겨야 하니까 학교를 마치 기업처럼 여기고 속된 말로 ‘장사’를 한다. 총장이 되려면 얼마를 내라, 학위 줄 테니 발전 기금을 달라, 이런 식이다. 돈만 있고 신학은 온데간데 없다.”
-신학이 등불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다른 것에 끌려 가고 있는 형국 같다.
“예전에는 교수들 사이에서 신학자라는 자부심, 소명의식 같은 것들이 그래도 많았다. 그래서 설사 학교로부터 월급을 못 받아도 바른 신학을 해보자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그렇게 학교가 성장하고 학생들이 모이면 돈 없이도 그것 하나로 행복했다. 그 땐 신학자들이 목회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그런가. 내가 아는 출판사 사장이 한번은 이런 말을 하더라. 신학대 교수들 중 70%는 책을 안 쓴다고. 또 나머지 30% 중에서도 10%만 정말 원해서 책을 쓰고 나머지는 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라고. 이런 시대다. 일명 ‘셀처치’라는 것, 이걸 신학자가 제시하지 않았다. 목회 현장에서 목사들 스스로 고안한 것이다. 그만큼 신학자들이 한국교회를 이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신학자가 없다.”
-신학과 신앙이 동떨어졌다면 목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다 신학을 배우고 목사가 되지 않았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신학을 바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무지하다. 무지(ignorance)와 무식(uneducated)은 다르다. 무식은 공부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지만 무지는 알려 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무식한 것보다 무지한 것이 더 나쁘다.”
신대원 과정 이원화하고 전액 ‘장학금’ 줘야
-혹 꿈꾸는 신학교의 모델이 있나.
“신학의 본질만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교가 꼭 필요하다. 그러자면 학교를 뒤에서 지원하는 건전한 후원자들이 있어야 하고 교수들과 학생들은 신학에만 매달려야 한다. 물론 교수들은 모두 목회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신대원 과정은 이원화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 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한 학생은 지금과 같은 3년, 그렇지 않고 일반 대학에서 다른 학문을 배운 이들에겐 그 이상 공부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목사가 되기에 신학공부 3년은 너무 짧다. 사정이 된다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발전할 수 있다. 지금처럼 학생들한테 받은 등록금으로 돈 벌 생각을 하면 반드시 퇴보한다. 더불어 졸업한 학생들이 목회 기반을 다질 때까지 학교가 지원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끝으로, 목회를 하는 소감은 어떤가.
“도전을 많이 받는다. 교수일 때는 몰랐던 것들을 목회하면서 배운다. 성도들로부터도 신앙의 새로운 면들을 보게 된다. 감사하다. 매주 화요일마다 성도들과 함께 신학모임을 갖는데, 목사와 성도들이 서로 묻고 답하며 신학을 두고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일인지 이전엔 미처 몰랐다.”
그는 왜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까. 신학의 길이 고단했기 때문일까. 태풍이 지나간 8월 말의 오후, 그로부터 신학교를 박차고 나오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크진 않았지만 십자가 불빛이 엄숙했던 그의 교회에서.
목회 경험 없는 신학자들, 신학과 신앙이 ‘따로’
-왜 신학교에서 나왔나.
“신학에 회의를 느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지금 한국의 신학 현실에 염증을 느꼈다는 게 더 맞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신학이 신앙과 동떨어져 있다. 그 내용은 틀린 게 없다. 그런데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그것을 신앙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신학자, 학생들, 그리고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 신학함에 진정성이 없다. 지금 신학대 교수들 태반은 평신도들의 삶을 모른다. 그러니 신학을 목회에 적용시키지 못한다. 학생들도 소명감이 부족하다. 아무리 가르쳐도 머리로만 듣지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신학자들은 실제 목회 현장을 모를까.
“그야 목회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신학대는 교수 임용 기준에 ‘목회 경력 5년’을 명시하고 있는데도, 실제 그 학교 교수들 중에 이 기준에 맞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것만 봐도 지금 한국의 신학이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졌는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신학을 왜 하는가? 내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더 잘 알아서 그 뜻대로 살기 위함 아닌가. 그런데도 삶은 없고 학문만 있다.”
교수들 70% 책 안 써… 신학이 교회 이끌지 못해
-신학자도 문제지만 그런 신학자를 배출하는 신학교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신학교에 정치와 기업의 논리가 팽배하다. 그런 것들이 아주 없어야 한다는 건 물론 아니다. 필요하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치다. 교단 신학교에선 교수들이 자리 보전하려고 ‘줄 서기’에 바쁘다. 교단 목사들에게 잘 보여야 교수도 되고 승진도 하니까. 이런 데서 무슨 대(大) 신학자가 나오겠나. 신학자라면 성경을 파고 책 속에 묻혀야 할 텐데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으니. 오죽하면 ‘신학교 가지 말고 차라리 혼자 공부하는 게 낫다’는 말까지 있을까.
교단 신학교가 아니라면 이런 정치적인 것에선 어느 정도 자유롭다. 하지만 그런 신학교는 또 돈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학교에 돈을 대는 이사장의 말 한 마디가 곧 하나님의 그것과 같다. 이사장은 어떻게든 이윤을 남겨야 하니까 학교를 마치 기업처럼 여기고 속된 말로 ‘장사’를 한다. 총장이 되려면 얼마를 내라, 학위 줄 테니 발전 기금을 달라, 이런 식이다. 돈만 있고 신학은 온데간데 없다.”
-신학이 등불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다른 것에 끌려 가고 있는 형국 같다.
“예전에는 교수들 사이에서 신학자라는 자부심, 소명의식 같은 것들이 그래도 많았다. 그래서 설사 학교로부터 월급을 못 받아도 바른 신학을 해보자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그렇게 학교가 성장하고 학생들이 모이면 돈 없이도 그것 하나로 행복했다. 그 땐 신학자들이 목회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그런가. 내가 아는 출판사 사장이 한번은 이런 말을 하더라. 신학대 교수들 중 70%는 책을 안 쓴다고. 또 나머지 30% 중에서도 10%만 정말 원해서 책을 쓰고 나머지는 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라고. 이런 시대다. 일명 ‘셀처치’라는 것, 이걸 신학자가 제시하지 않았다. 목회 현장에서 목사들 스스로 고안한 것이다. 그만큼 신학자들이 한국교회를 이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신학자가 없다.”
-신학과 신앙이 동떨어졌다면 목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다 신학을 배우고 목사가 되지 않았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신학을 바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무지하다. 무지(ignorance)와 무식(uneducated)은 다르다. 무식은 공부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지만 무지는 알려 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무식한 것보다 무지한 것이 더 나쁘다.”
신대원 과정 이원화하고 전액 ‘장학금’ 줘야
-혹 꿈꾸는 신학교의 모델이 있나.
“신학의 본질만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교가 꼭 필요하다. 그러자면 학교를 뒤에서 지원하는 건전한 후원자들이 있어야 하고 교수들과 학생들은 신학에만 매달려야 한다. 물론 교수들은 모두 목회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신대원 과정은 이원화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 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한 학생은 지금과 같은 3년, 그렇지 않고 일반 대학에서 다른 학문을 배운 이들에겐 그 이상 공부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목사가 되기에 신학공부 3년은 너무 짧다. 사정이 된다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발전할 수 있다. 지금처럼 학생들한테 받은 등록금으로 돈 벌 생각을 하면 반드시 퇴보한다. 더불어 졸업한 학생들이 목회 기반을 다질 때까지 학교가 지원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끝으로, 목회를 하는 소감은 어떤가.
“도전을 많이 받는다. 교수일 때는 몰랐던 것들을 목회하면서 배운다. 성도들로부터도 신앙의 새로운 면들을 보게 된다. 감사하다. 매주 화요일마다 성도들과 함께 신학모임을 갖는데, 목사와 성도들이 서로 묻고 답하며 신학을 두고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일인지 이전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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