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개천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24년간 살다 2006년 탈북에 성공한 신동혁 씨는 ‘제 1차 크리스천 북한포럼 및 통곡기도회’에서 자신이 경험한 수용소 생활과 탈북 과정을 생생히 증언했다.

그는“대한민국 정부는 죽어가는 동족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북한의 대학살을 막아야 한다. 내겐 단 1분 1초가 아깝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을 북한의 형제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고, 답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14일 워크샵 강사로 나선 탈북자 신동혁 씨. 북한 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난 신 씨는 24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다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북한 인권, 희망은 있는가'라는 주제로 워크샵 강연을 이어나갔다. 신 씨는 강연 서두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북한 인권, 과연 희망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뒤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신 씨는 "내겐 죽어가는 북한 동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하나님을 아는 여러분들에겐 희망이 있다. 부디 동족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에 옮겨달라"고 강권했다.

그는 14살 때인 1996년 어머니와 7살 위의 형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공개처형(총살)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수용소 내 피복 공장 수리작업반에서 일했던 신씨는 2005년 40대 후반의 평양 출신 태권도 사범을 만나면서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를 통해 수용소 밖의 생활에 대해 난생처음 눈을 뜨게 된 것.

“종종 제게 찐 닭을 결을 따라 뜯어먹거나 콩비지에 밥을 비벼 먹던 시절을 흘려가듯 얘기했어요. 매일 강냉이죽만 먹던 저는 꿈을 꿔도 계속 닭다리가 나타나더라구요.”

6개월간 먹을 것을 상상하며 몽환에 휩싸였던 그는 결국, 전기철조망을 넘었다. 국경을 넘어 중국에 도착했다. 같이 탈출하려던 태권도 사범은 전기철조망에 감전돼 죽었다.

신 씨는 정치범수용소 내 육체적 고문보다 더 끔찍한 인권유린은 ‘감정 고문’이라고 했다. 그 사례로 모범수 남녀를 연결시키는 ‘표창결혼’을 들었다. 그 역시 ‘표창결혼’을 통해 평안남도 개천시 14호 관리소에서 태어났다. “정치범수용소 생활은 짐승 같은 삶이었다”면서 “간수가 자신의 구두에 뱉은 침을 핥으라 명하면 핥아야 했다. 더럽고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살기 위해서였다. 사랑이나 가족이란 말의 의미도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표창 결혼’이란 노동사역을 잘하고 일에 지각하지 않고, ‘생활총화(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자아비판의 장)’에 열심히 임한 모범수 남녀를 김일성이나 김정일 생일 때 골라 5일 정도 같은 방에서 동거시켜 아이를 낳게 하는 제도다. 2명의 간수가 한 수용소 안에 2500명 정도의 수감자들을 감독하는데 합방할 짝은 오로지 간수에게 간택된다.

그는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면 남한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호기심만 나타내 가슴이 아팠다”면서 “그러나 백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나를 창피하게 했다”고 털어놨다.

신 씨는 “매년 3월과 9월이면 빼놓지 않고 공개처형이 이뤄진다”면서 “지금도 매 맞음의 공포, 굶주림의 공포, 공개총살의 공포에 떨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살리고자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호소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구체적인 증거를 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면서 “증거는 없지만, 내가 실제로 본 증인이다. 그들이 죽고 난 뒤 증거를 갖고 온 들 무슨 소용 있나. 죽어가는 저들을 살릴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달라. 그리고 부디 행동으로 옮겨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행동하는 신앙인 돼 달라”
박선영 전 국회의원의 호소, 무관심한 정치인들 고발

“의원님, 살려 주십시오. 지금 제 딸이 중국 당국에 붙잡혀 북송되고 있습니다.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중국 내 탈북자들의 북송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박선영 전 국회의원의 핸드폰에 실시간으로 문자로 뜬다. 박 전 의원은 어쩔 줄을 모른다. “그들을 어떻게든 도와야 하는데….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UN과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 미국과 유럽, 심지어 일본의 정치인들에게까지 편지로 호소해 봤다. 그러나 묵묵부답이었다. “주님, 제 힘으론 도저히 저들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박선영 전 의원


그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백방으로 뛰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중국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도 해 봤지만, 탈북자 북송 중지는 커녕 오히려 그 움직임이 심해가기만 했다. 결국 그녀는 털썩 주저 앉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밖에 없었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집회 기간 내내 특유의 나지막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그는 시종 동족의 죽음에 무관심한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고발했다.

그러면서 “골방에서 백날 북한 동포들을 위해 기도한들 행동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기도에 그친,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어 달라”고 호소했다.

◆목숨 건 탈북 체험, 시로 읊은 김지우 대표
“장군님의 딸에서, 주님의 딸로”를 주제로 탈북 체험 시 낭송

“압록강을 2시간 동안 헤엄쳐서 탈북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떻게 작고 연약한 체구로 거센 물살의 압록강을 2시간이나 헤엄칠 수 있었냐고. 상상이 안 된다고. 그렇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거센 물살을 거스르고 저는 둥둥 떠다녔었습니다. ‘아, 이제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그러나 그 거센 물살을 헤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리 주님의 은혜입니다.”

‘장군님의 딸에서, 주님의 딸로’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친 통일시대사람들 대표 김지우 씨. 그는 시인이다. 그는 14일 저녁, 자신의 탈북 체험을 시로 쓴 ‘은혜의 강’을 낭송했다.

“지나온 인생/ 켜켜히 쌓인 죽음/ 그 추억의 실타래 풀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압록강에 닿습니다/ 소용돌이 치는 강물 마음 속의 절망의 소용돌이/ 강건너 자유의 불야성/ 강가에서 흘러야 했던 통곡의 피/(중략) / 우리 아버지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그 분의 눈은 온 땅을 감찰하사/ 자신을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시나니/ 그렇게 새 생명을 얻은 이 딸/ 홍해를 넘은 2만5천 탈북자의 몸/ 축복 받은 이 딸/ 내 맞이했던 강, 압록강은 절망의 강이었으나 돌아보니 주님의 은혜의 강이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