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좋은 일들이 주어지든, 삶을 통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갖든,생각하지 못했던 기쁨으로 인해 삶이 신명나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은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일 뿐이며 이러한 반응은 삶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들이 주어진 환경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으며 그것을 통해 결정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시며 하나님의 시각을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축복을 주시기를 바란다.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니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잠언 16: 9절에서 말했다.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 이유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섭리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바라보는 두가지의 시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요 일련의 불연속적인 우연한 사건들을 말하는 크로노스( chronos) 이다. 이것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고 그 시간안에 엄무를 수행하고 그 속에서 일을 끝마쳐야 하는 부담과 스트레스 그리고 긴장의 삶을 살게 된다. 삶의 시대를 역대기 순으로 바라보다 가도 어느 순간에 삶의 모든 것이 단순히 일어난 우연적인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알게되는 카이로스( C ros)
hai인 하나님의 시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시간은 “ 우리의 하루하루 속에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 과 같은 것으로 시간과 공간속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기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날 목수가 사용하는 연장중 “ 대패, 망치, 톱과 자” 가 모여 회의를 한 것인데 회의의 주제는 현재의 경기불황이 계속되어 주인의 일거리가 없으니 그들 중 누군가를 퇴출시켜 주인의 부담을 덜어주자고 회의를 한 것이다. 그래서 서로 누가 퇴출대상인지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먼저 ‘ 자’ 가 ‘ 망치’ 에게 말을 건네기를 “ 망치, 너는 우리중 제일 무게가 많이 나가서 주인이 들고 다니기에 어려운데 맨날 하는 일이 남 두들겨 패는 일만 하니 내 생각엔 네가 퇴출대상 영순위” 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자 그 다음으로 망치가
변명을 하면서 “ 내가 생각하기로는 대패가 나보다 먼저 퇴출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대패도 나랑 재질이 같아 무겁고 하는 일이라고 남을 깎아 내리기만 하기 때문이다. ” 라고 말은 한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대패가 화가나서 말하기를 “ 나는 아니라고 내가 보기에 톱이 퇴출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톱은 무엇이든지 잘라 버리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 라고 말을 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톱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말하기를 “ 내가 퇴출 대상이 아니라 퇴출 대상은 자” 라고 말을 하는데 “ 자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라, 자는 무엇이든지 재는 일만 한다. 그러기에 자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렇게 논쟁하는 것을 지켜본 목수가 논쟁하는 연장을 들고 일하는 현장에 가서 자로 목재의 치수를 재고 톱으로 자르고 대패로 모난 부분을 깎고 망치로 못질을 하여 목수가 바라는 것을 만든 것이었다. 연장들과 목수가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며 목수는 통전적인 시각에 의해 불만을 연장들을 사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감사하고 목수가 사용되어지는 것을 기뻐하는 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젠가 병원에서 간단한 간( 肝) 조직검사를 한 분을 만날 있이 있었다. 의사가 조직 검사를 하고 그 분이 4시간 동안 옆으로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이 주어졌는데 움직이지 아니하고 많은 시간을 한 방향에서 누워있어야 하기에 그 고통이 상당히 큰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4시간 동안 많은 생각과 더불어 움직일 수 없다는 고통이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약속한 4시간이 다 되어 몸을 바르게 눕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 않고 그 분이 입술로 고백하기를 “ 하나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바르게 누울 수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너무나 좋습니다. ” 라고 말을 할때 그것을 지켜본 그분의 남편이 자신의 삶을 통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을 꺼내기를 “ 과거는 지나가는 것이기에 지나간 아픔에 대해 기억해서는 아니된다. ” 그 이유는 인간은 과거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의 아픔에 얽매이게 되면 그것은 과거에 구속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의 의미는 두가지의 영어 표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으로 그것들은 시간과 선물에 관한 것이다. 즉 현재의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나에게 주어진 선물을 내가 최선으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철학자 스피노자 가 말한“ 내일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 고 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삶은 주어진 환경에 대해 투정거리는 삶이 아니기에 미래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신비(Mystery) 로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 신비인 것은 인간은 내일을 볼 수 없다는 것이며 단지 주어질 시간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대하면 그에게 내일이 축복의 신비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복의 신비는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이 연약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믿음을 가지는 일이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열매를 갖게 되는 신비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도 자랑해서는 아니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믿음이 있다해도 그것에 대한 은혜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면 하나님으로 부터 긍휼함을 받기 위해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주어진 현재의 삶에 고통이 와도 그것에 감사하는 일이며 주어진 하루를 선물로 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 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