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 입자’의 발견 소식으로 과학계는 물론, 종교계까지 떠들썩하다. 우주 탄생 초기 다른 입자들에게 질량을 갖게 해주는 ‘가상의 입자’가 존재했으리라는 힉스의 추정은 ‘창조론’에 부합하는 논거가 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힉스 입자는 ‘신의 입자’라 불렸다.
그러나 올해 노벨상 후보로 급부상한 힉스는 ‘신의 입자’라는 말을 꺼렸으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발표 내용도 정확히는 ‘힉스로 추정되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됐다’ 이다. 확률이 99.99994%이지만, 0.00006%의 오류를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조새’를 놓고 진행되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와 생물학계의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교진추는 “지금까지 발견된 시조새 화석이 공룡에서 새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로 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개정 청원서를 제출했고, 학계는 여기에 반발하면서 과학에 기반한 이의 제기를 ‘감정적·종교적’으로 치부하고 있다.
<신을 탐하다(복있는사람)>는 “그렇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냐고(Who Made God?)” 묻는 이들에게 주는 과학자의 해답 같은 책이다. 여기서 ‘탐’은 탐구하다(探)는 뜻으로, 책은 “그들은 신의 자리를 ‘탐내지만’, 우리는 신의 존재를 ‘탐구한다’는 카피를 내세웠다. 저자 에드거 앤드류스는 탁월한 과학자이자 신학자로, 리처드 도킨스 같은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출현에 대응하여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변증서를 썼다.
저자는 도킨스 류(類)의 주장에 대해 “과학이 정말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가” 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과학 연구는 인간의 경험을 통합하는 원리나 이론의 발견이고 이 발견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지식을 적용하여 우리의 유익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값지지만, 과학 이론이 우리의 경험과 관찰을 거슬러 올라 추가적 설명이 필요 없는 ‘선험적인 개념’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예측들을 통해 이를 검증 또는 수정한 다음 시험하는 것이 과학적인 증명의 과정이다. 저자는 이러한 방법을 ‘하나님’에게도 적용해보자고 제안한다.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가정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자는 것이다. 보통 ‘신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일반적 방법론과는 반대된다.
“역사신학적 흐름에는 벗어나지만, 신학이 가설을 채용하는 것은 과학의 옷을 빌려입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옷을 되찾는 것이다. 과학이 ‘지식’이라는 원래 의미로 쓰이던 시절, 현대과학이 빛을 보기 훨씬 이전에 신학은 한때 ‘과학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이러한 방법을 그는 성경의 시작, 창세기 1장 1절에서 찾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첫 네 마디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존재하고, 그는 진짜 우주를 창조했을 만큼 충분히 실질적인 분이라는 ‘가정’을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하나님) 가설’이다.”
저자는 ‘신 가설’이 실패했다는 무신론자들을 비판하면서, 최신의 과학이론에 따르면 하나님 가설이 진화하는 우주와 시간, 영원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양심이나 본성, 우주 전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법(규칙)’의 존재가 진화의 결과일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 ‘기적’을 인정하면서까지 생명의 기원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려는 무신론자들의 무리수에 비해, ‘성경’은 섭리와 기적, 삶의 의미에 대해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견해를 제시한다고 대답한다.
진화론과 ‘새로운 무신론’은 이 책에서 그 부족함과 과학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는 진화론을 쉽고 명확한 비유들을 동원하면서도 비교적 재미있게 설명한 후, 비록 주류 학계에서 따르고 있고 ‘세련돼 보이기 때문에’ 각광받지만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학적’인 것만이 정확하고 확실하며 이를 신봉하고 따라야 한다는 대다수의 고정관념에 강력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성경적인 것이 비과학적이라 지레짐작해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주눅들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논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그러나 올해 노벨상 후보로 급부상한 힉스는 ‘신의 입자’라는 말을 꺼렸으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발표 내용도 정확히는 ‘힉스로 추정되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됐다’ 이다. 확률이 99.99994%이지만, 0.00006%의 오류를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조새’를 놓고 진행되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와 생물학계의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교진추는 “지금까지 발견된 시조새 화석이 공룡에서 새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로 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개정 청원서를 제출했고, 학계는 여기에 반발하면서 과학에 기반한 이의 제기를 ‘감정적·종교적’으로 치부하고 있다.
<신을 탐하다(복있는사람)>는 “그렇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냐고(Who Made God?)” 묻는 이들에게 주는 과학자의 해답 같은 책이다. 여기서 ‘탐’은 탐구하다(探)는 뜻으로, 책은 “그들은 신의 자리를 ‘탐내지만’, 우리는 신의 존재를 ‘탐구한다’는 카피를 내세웠다. 저자 에드거 앤드류스는 탁월한 과학자이자 신학자로, 리처드 도킨스 같은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출현에 대응하여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변증서를 썼다.
저자는 도킨스 류(類)의 주장에 대해 “과학이 정말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가” 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과학 연구는 인간의 경험을 통합하는 원리나 이론의 발견이고 이 발견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지식을 적용하여 우리의 유익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값지지만, 과학 이론이 우리의 경험과 관찰을 거슬러 올라 추가적 설명이 필요 없는 ‘선험적인 개념’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예측들을 통해 이를 검증 또는 수정한 다음 시험하는 것이 과학적인 증명의 과정이다. 저자는 이러한 방법을 ‘하나님’에게도 적용해보자고 제안한다.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가정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자는 것이다. 보통 ‘신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일반적 방법론과는 반대된다.
“역사신학적 흐름에는 벗어나지만, 신학이 가설을 채용하는 것은 과학의 옷을 빌려입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옷을 되찾는 것이다. 과학이 ‘지식’이라는 원래 의미로 쓰이던 시절, 현대과학이 빛을 보기 훨씬 이전에 신학은 한때 ‘과학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이러한 방법을 그는 성경의 시작, 창세기 1장 1절에서 찾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첫 네 마디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존재하고, 그는 진짜 우주를 창조했을 만큼 충분히 실질적인 분이라는 ‘가정’을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하나님) 가설’이다.”
저자는 ‘신 가설’이 실패했다는 무신론자들을 비판하면서, 최신의 과학이론에 따르면 하나님 가설이 진화하는 우주와 시간, 영원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양심이나 본성, 우주 전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법(규칙)’의 존재가 진화의 결과일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 ‘기적’을 인정하면서까지 생명의 기원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려는 무신론자들의 무리수에 비해, ‘성경’은 섭리와 기적, 삶의 의미에 대해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견해를 제시한다고 대답한다.
진화론과 ‘새로운 무신론’은 이 책에서 그 부족함과 과학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는 진화론을 쉽고 명확한 비유들을 동원하면서도 비교적 재미있게 설명한 후, 비록 주류 학계에서 따르고 있고 ‘세련돼 보이기 때문에’ 각광받지만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학적’인 것만이 정확하고 확실하며 이를 신봉하고 따라야 한다는 대다수의 고정관념에 강력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성경적인 것이 비과학적이라 지레짐작해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주눅들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논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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