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29일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남한 고속정 참수리호를 공격하여, 6명이 죽고 19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으로 향했고 앉아서 경기를 관람했다. 그가 귀국한 다음날, 31일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때도 군통수권자 김대중,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장관 등 반드시 참석해서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들을 위로해야할 지도자들이 하나 같이 나타나지 않아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제 백성 제나라 군인이 적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는데 이럴수가 있는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였기에 그 때부터 존경심이 사라졌다. 수년 후에는 전사자 부인 두 분이 저런 나라에 살기 싫다고 뉴욕에 와서 만난 일이 있었다.
나는 1971년 7월부터 1년간 월남전에 참전했었다. 1972년 4월10일부터 약 20일에 걸쳐 월맹정규군과 싸운 안케패스 전투에 참가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3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때 죽었더라면 정말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해 목숨 걸고 전쟁터에 나갔었다. 금년 4월 24일 안케패스 전투 승전 40주년 기념행사가 군전사편찬위원회 주관으로 국방부에서 처음 열려 참석하였다. 안케전투에서 173명의 전우가 산화했다, 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지고 만 것이다.
대통령에게는 영혼이 있다. 그것은 국가이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최고로 대우해 주는 의식이 꽉 차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영혼이 죽은 지도자다.
이승만대통령은 6/25 전쟁 발발 몇 일 만에 수도를 빼앗기고 부산으로 피난 갔다. 각료들이 지휘소 안전을 위해 제주도로 피난가야 한다고 청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참모들은 프란체스카 영부인에게 주문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영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THE LIFE IS DEAR TO THEM TOO (군인들의 생명도 나의 생명 처럼 귀하다) 더 이상 후퇴는 없다. 이 곳을 생명 바쳐 사수해야 한다고 했다.
6/25 전쟁 전에 군에서 발생한 4/3 제주도 폭동, 여수, 순천 군반란 사건, 대구 폭동 등의 작전에 꼭 참석하여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휴전 1개월 앞두고는 공산주의 국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반공포로 2만7천명을 군,관,민 합동작정으로 자유대한에 살도록 풀어주었다.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자들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지도자를 놀라게 한 군통수권자의 단독 결정과 실행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처칠 수상은 아침에 면도를 하다 칼에 살을 베었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미군 병사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무참히 살해한 만행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말하길 우리 국군이 반드시 베어내겠다. 북한이 저항하면 신의주까지 북진하겠다고 하며 청와대에 철모와 군화를 갖다놓고 사태를 예의 주시 했었다. 북한이 도발하면, 내가 철모와 군화를 신고 전쟁을 진두지휘하겠다고 청와대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3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나가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외쳤다. 사건 발행 2일만에 김일성은 유엔사령부에 사과 성명하여 사건은 무마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가장 가슴이 뜨거워진 것은 5월15일 미얀마의 아웅산 묘지를 방문하고,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한 17명의 각료들을 북한의 테러로 잃어버린 비극의 현장을 29년만에 찾아보았다는 것이다. 당시 안기부 차장이였던 박세직 장군의 기지로 북한의 소행이 밝혀지고 미얀마는 북한과 수년간 단교했다. 그러나 그 후 대통령은 사후 관리를 하지 않아 도로 북한과 수교하며 무기 수입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경협을 만들며 다시 우군으로 끌어드리는 외교를 성사시켰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미군이 북한 땅에서 발굴한 시신 12구가 고국땅으로 올 때, 고국의 군통수권자가 국방장관, 8군 사령관을 대동하고 거수경례를 하며 영접한 일이다. 두 명의 카투사병사의 연고자들은 62년만에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이 곧 국가가 할 첫 번째 임무다. 그래야 군인은 전장에서 용감히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전쟁에서 산화한 국군의 시신을 반드시 고국에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29구의 유해 발굴을 위해 2,800만 달러를 북한에 주었다. 최악의 세습독재 국가, 북한은 죽은 사람 목숨값도 받아 먹는 악한 나라다. 하루 속히 멸절돼야 할 정권이다. 우리 모두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진실, 정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할 때이다.
그런데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으로 향했고 앉아서 경기를 관람했다. 그가 귀국한 다음날, 31일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때도 군통수권자 김대중,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장관 등 반드시 참석해서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들을 위로해야할 지도자들이 하나 같이 나타나지 않아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제 백성 제나라 군인이 적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는데 이럴수가 있는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였기에 그 때부터 존경심이 사라졌다. 수년 후에는 전사자 부인 두 분이 저런 나라에 살기 싫다고 뉴욕에 와서 만난 일이 있었다.
나는 1971년 7월부터 1년간 월남전에 참전했었다. 1972년 4월10일부터 약 20일에 걸쳐 월맹정규군과 싸운 안케패스 전투에 참가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3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때 죽었더라면 정말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해 목숨 걸고 전쟁터에 나갔었다. 금년 4월 24일 안케패스 전투 승전 40주년 기념행사가 군전사편찬위원회 주관으로 국방부에서 처음 열려 참석하였다. 안케전투에서 173명의 전우가 산화했다, 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지고 만 것이다.
대통령에게는 영혼이 있다. 그것은 국가이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최고로 대우해 주는 의식이 꽉 차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영혼이 죽은 지도자다.
이승만대통령은 6/25 전쟁 발발 몇 일 만에 수도를 빼앗기고 부산으로 피난 갔다. 각료들이 지휘소 안전을 위해 제주도로 피난가야 한다고 청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참모들은 프란체스카 영부인에게 주문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영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THE LIFE IS DEAR TO THEM TOO (군인들의 생명도 나의 생명 처럼 귀하다) 더 이상 후퇴는 없다. 이 곳을 생명 바쳐 사수해야 한다고 했다.
6/25 전쟁 전에 군에서 발생한 4/3 제주도 폭동, 여수, 순천 군반란 사건, 대구 폭동 등의 작전에 꼭 참석하여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휴전 1개월 앞두고는 공산주의 국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반공포로 2만7천명을 군,관,민 합동작정으로 자유대한에 살도록 풀어주었다.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자들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지도자를 놀라게 한 군통수권자의 단독 결정과 실행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처칠 수상은 아침에 면도를 하다 칼에 살을 베었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미군 병사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무참히 살해한 만행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말하길 우리 국군이 반드시 베어내겠다. 북한이 저항하면 신의주까지 북진하겠다고 하며 청와대에 철모와 군화를 갖다놓고 사태를 예의 주시 했었다. 북한이 도발하면, 내가 철모와 군화를 신고 전쟁을 진두지휘하겠다고 청와대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3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나가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외쳤다. 사건 발행 2일만에 김일성은 유엔사령부에 사과 성명하여 사건은 무마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가장 가슴이 뜨거워진 것은 5월15일 미얀마의 아웅산 묘지를 방문하고,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한 17명의 각료들을 북한의 테러로 잃어버린 비극의 현장을 29년만에 찾아보았다는 것이다. 당시 안기부 차장이였던 박세직 장군의 기지로 북한의 소행이 밝혀지고 미얀마는 북한과 수년간 단교했다. 그러나 그 후 대통령은 사후 관리를 하지 않아 도로 북한과 수교하며 무기 수입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경협을 만들며 다시 우군으로 끌어드리는 외교를 성사시켰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미군이 북한 땅에서 발굴한 시신 12구가 고국땅으로 올 때, 고국의 군통수권자가 국방장관, 8군 사령관을 대동하고 거수경례를 하며 영접한 일이다. 두 명의 카투사병사의 연고자들은 62년만에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이 곧 국가가 할 첫 번째 임무다. 그래야 군인은 전장에서 용감히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전쟁에서 산화한 국군의 시신을 반드시 고국에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29구의 유해 발굴을 위해 2,800만 달러를 북한에 주었다. 최악의 세습독재 국가, 북한은 죽은 사람 목숨값도 받아 먹는 악한 나라다. 하루 속히 멸절돼야 할 정권이다. 우리 모두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진실, 정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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