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우리의 세상은 과연 희망이 있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참으로 긍정적인것 보다는 부정적인 것들이 북동서남(NEWS)어디에서나 들리는 것 같다. 극심한 경제의 불황, 정치적인 부패,가정교육, 가정폭력, 이혼, 기근과 전쟁 그리고 환경의 파괴에 의한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각 개인들에게 문제로 직면하게 될때 그것들은 큰 폭풍과 눈보라 그리고 회오리 바람으로 느껴지면서 고통과 불안을 느끼며 다가올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러면 꼼짝없이 부닥친 문제에 사로잡히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하게되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크느냐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의 해결이 보이지 아니하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여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하는 절망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다 자신에게 어려움과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절망을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이 삶의 목적을 잃어 버리게 하는것이 된다면 절망은 인간들이 삶속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무서운 적(敵)임에 틀림이 없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삶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을 만들기에 나 자신을 꺾어 놓는 부정적인 생각은 경계되어야 한다. 철학자 니체의 말에 의하면“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도 없고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은 파멸한다.”

이말을 보면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처한 상황에 긍정과 부정적인 선택이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을 필자는 “희망과 절망”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두가지는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살아온 한 사람을 들라면 “나에게는 불가능을 말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을 한 존 파피이다. 그는 세계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삶의 동기부여를 놀라울 만큼 잘 전달하는 유명한 강사로 그의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많은 격려와 도전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유명한 강사로 홀로서기에는 수많은 아픔과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다.

존 파피는 태어날때부터 두팔이 없는 아이로 낳았을 뿐 아니라 엉덩이관절 이상 으로 걷지 못할 수도 있었고 내장에도 문제가 있어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도 미지수였었다. 그리고 눈은 초점이 잡히지 않았고 머리는 한 쪽으로 기울어져있었다. 그런 존을 간호원이 담요로 싸 그의 어머니에게 존을 보였을때 그녀는 멀리 도망치고 싶은 심정으로 끌어안고 이렇게 말을 한 것이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두 다리를 주셨군요!”존이 성장을 하면서 갈등을 가진 것은 보통사람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없었고 팔로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 자주 넘어 졌었고 그럴때마다 얼굴이 성할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잠을 잘때마다 그의 뇌에 반복해서 생각한 말은

“왜 하필이면 나 인가와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이야!”라는 것이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더불어 자신에게 주어진 크나큰 장애 때문에 그는 아무런 것도 하려고 하지 아니한 것이었다. 두팔이 없이 두 다리로만 살면서 수많은 죽을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며 살았던 어느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의 실체는 두 팔이 없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장애는 두 팔을 잃은 것이 아니라 팔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후에 그는 팔이 없어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마음의 장애를 넘어섰으며 육체적인 장애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그는 1992년 일리노이주에서 ‘열명의 뛰어난 젊은이’상을 수상했었고 그 이듬해에는 ‘열 명의 뛰어난 젊은 미국인’상을 수상하였고 미국은 물론 전 셰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통해 격려와 용기를 주었는데 그들이 많은 감동을 그로부터 받았던 것은 두 팔이 없는 존 파피가 밝은 모습으로 삶에 대한 강한 확신을 들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삶을 살다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고통을 경험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고 가장 가깝다고 느끼며 살아오는 사람들이 한 순간에 적이 되어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볼때 삶에 큰 장벽을 만나는 절망적인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삶을 살아 온 사람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다윗왕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위기의 상황을 감지하고 성에서 머리에 뭔가를 뒤집어쓰고 맨발로 울면서 압살롬과 그의 부하들을 피해 치욕적으로 도망갔다.그리고 그가 바후림이라는 곳에 이르렀을때 사울의 집 족속 하나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자신에게 저주하면서 그의 신복들과 그에게 돌을 던지면서 저주의 말을 퍼 부었느데 그것은 “이 피를 흘린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는 모욕감 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는 것을 직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이를 곧 바로 응징하기 보다는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맡기는 신앙인의 자세를 보이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생각속에 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렌즈 즉 하나님의 눈으로 그의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그의 위기의 극복을 보면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말이 생각나는데 “삶의 문제를 세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에 대해 좀더 설명하자면 그것은 어떤 문제의 해결을 하는데 있어서 “세상이 커 보인다면 이는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인생의 모든 문제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는 말이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절망적인 것을 희망적인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 그의 자신의 문제보다는 그 문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돌렸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고 어려운 위기 상황에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도와 주는 신앙의 견고한 힘이 되는 것이다. 다윗왕은 시편3:3절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이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는 말씀이다.

그는 자신을 조롱한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지 아니하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때 다윗왕은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었다. 희망은 바로 마음의 평안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이것은 삶의 근본을 바꾸시는 소망을 주시는 주님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하기에 주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그것이 이루어기지 위해 기다리는 신앙도 필요하다.그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절망이 희망으로 삶의 승리를 맛보게 될 것이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