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감리교회의 아버지인 헨리 게어하트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 선교사의 순교 110주년을 추모하는 ‘제1회 아펜젤러 국제학술대회’가, ‘21세기 헨리 아펜젤러, 정동에 오다!’라는 주제로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송기성 목사)에서 개최됐다.
1882년 프랭클린 마샬대학을 졸업하고 드루신학교에서 신학과정을 마친 아펜젤러는 1885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도착, 서울 정동을 중심으로 영어교육과 학교설립, 신학교육, 연합선교, 성경번역, 문서선교에 이르는 다양한 사역을 펼쳤다. 특히 배재학당(1885)과 정동제일교회(1895)의 설립, 한글성경 번역은 그가 남긴 가장 값진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는 성경번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로 가는 배에 승선했다가 짙은 안개로 인한 선박사고를 당해 44세의 일기로 소천했다. 그는 배가 침몰하는 죽음의 직전에서도 자신의 서기와 정신학교 여학생을 구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송기성 목사(정동제일교회)는 대회사에서 “정동 127년의 역사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땅에 떨어져 죽어 열매 맺은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룬 수많은 열매들의 살아 있는 증거”라며 “그는 주님의 계명과 한국 역사의 필요를 따라 살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아펜젤러의 영적 유산과 선교적 사명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아펜젤러의 5대손인 에릭 세필드(Eric Sheffield)와 콰린 울프(Karin Wolf), 모교인 드루 신학대학원의 제프리 콴 학장(Jeffrey Kuan), 파송교회인 랭키스터 미 연합감리교회의 캔트 크뢸러 목사(Kent E. Kroehler) 부부 등이 참석했으며, 강사로는 모리스 데이비스 교수(Morris L. Davis, 드루 신학대학원), 한규무 교수(광주대), 김성은 박사(이화여대 사학연구소)가 나섰다.
콰린 울프 양은 “아펜젤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에 왔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저와 여러분의 몫이다. 아펜젤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모리스 데이비스 교수(드루 신학대학원)는 ‘헨리와 엘라 아펜젤러, 그리고 미국 선교 운동’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아펜젤러 부부는 감리교의 부흥에 대한 강조와 부흥운동의 핵심에 있었던 회심과 경험의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최상이며, 기독교인의 삶의 올바른 목적은 선교사역이라고 확신했다. 또 부부는 감리교의 실용적 부흥운동과 서구식 교육이 기독교의 유지 및 남녀의 평등한 교육을 위해 필수적이라 여겼다”고 전했다.
한규무 교수(광주대)는 ‘개화기의 정치·사회적 변동과 아펜젤러’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아펜젤러는 을미사변을 거쳐 춘생문사건(경복궁에 유폐되어 있던 고종을 구출하고 친일개화파를 타도하려는 시도)과 아관파천에 이르는 시기에 고종과 친분을 쌓고 현실문제에 적극 참여했다”며 “그는 기독교가 무군무부(無君無父)가 아닌 충군애국(忠君愛國) 집단임을 알리려 노력했다. 일제강점기 독립협회 활동 중 한국정부 및 미국공사관과 갈등을 빚을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의 안일과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으며 비난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제프리 콴 학장(드루 신학대학원)은 ‘다시 부름받을 준비의 때(사 6:1~13)’란 주제의 오후예배 설교에서 “아펜젤러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과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소명에 저항하여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며 “세상의 문지방이 경제, 환경위기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세상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맡기실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펜젤러처럼 하나님의 영에 개방되어 다시 소명을 받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한편 행사를 주최한 정동제일교회는 아펜젤러 순교 110주년 추모식의 일환으로 9일(토) 추모 음악제를 개최했으며, 11일(월) 오전 10시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방문해 추모예배를 가질 계획이다.
1882년 프랭클린 마샬대학을 졸업하고 드루신학교에서 신학과정을 마친 아펜젤러는 1885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도착, 서울 정동을 중심으로 영어교육과 학교설립, 신학교육, 연합선교, 성경번역, 문서선교에 이르는 다양한 사역을 펼쳤다. 특히 배재학당(1885)과 정동제일교회(1895)의 설립, 한글성경 번역은 그가 남긴 가장 값진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는 성경번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로 가는 배에 승선했다가 짙은 안개로 인한 선박사고를 당해 44세의 일기로 소천했다. 그는 배가 침몰하는 죽음의 직전에서도 자신의 서기와 정신학교 여학생을 구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송기성 목사(정동제일교회)는 대회사에서 “정동 127년의 역사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땅에 떨어져 죽어 열매 맺은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룬 수많은 열매들의 살아 있는 증거”라며 “그는 주님의 계명과 한국 역사의 필요를 따라 살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아펜젤러의 영적 유산과 선교적 사명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펜젤러의 5대손인 콰린 울프 양이 대회 참석 소감을 전하고 있다. ⓒ신태진 기자 |
콰린 울프 양은 “아펜젤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에 왔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저와 여러분의 몫이다. 아펜젤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모리스 데이비스 교수(드루 신학대학원)는 ‘헨리와 엘라 아펜젤러, 그리고 미국 선교 운동’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아펜젤러 부부는 감리교의 부흥에 대한 강조와 부흥운동의 핵심에 있었던 회심과 경험의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최상이며, 기독교인의 삶의 올바른 목적은 선교사역이라고 확신했다. 또 부부는 감리교의 실용적 부흥운동과 서구식 교육이 기독교의 유지 및 남녀의 평등한 교육을 위해 필수적이라 여겼다”고 전했다.
한규무 교수(광주대)는 ‘개화기의 정치·사회적 변동과 아펜젤러’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아펜젤러는 을미사변을 거쳐 춘생문사건(경복궁에 유폐되어 있던 고종을 구출하고 친일개화파를 타도하려는 시도)과 아관파천에 이르는 시기에 고종과 친분을 쌓고 현실문제에 적극 참여했다”며 “그는 기독교가 무군무부(無君無父)가 아닌 충군애국(忠君愛國) 집단임을 알리려 노력했다. 일제강점기 독립협회 활동 중 한국정부 및 미국공사관과 갈등을 빚을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의 안일과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으며 비난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제프리 콴 학장(드루 신학대학원)은 ‘다시 부름받을 준비의 때(사 6:1~13)’란 주제의 오후예배 설교에서 “아펜젤러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과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소명에 저항하여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며 “세상의 문지방이 경제, 환경위기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세상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맡기실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펜젤러처럼 하나님의 영에 개방되어 다시 소명을 받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한편 행사를 주최한 정동제일교회는 아펜젤러 순교 110주년 추모식의 일환으로 9일(토) 추모 음악제를 개최했으며, 11일(월) 오전 10시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방문해 추모예배를 가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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