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체온은 체온계를, 그리고 혈압은 혈압계를 통해서 수치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의 수준을 측정할 불안계라는 것은 없습니다. 불안은 보다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인 것이라는 면에서는 행복의 수준 역시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리주의자들에게는 행복이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이들은 가능한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최고 수준의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윤리적인 것이라고 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려다 보니, 역시 행복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행복 역시 체온계, 혈압계와는 달리 행복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양(quantity)이 중요한지 행복의 질(quality)이 중요한지도 애매하였습니다. 한때는 양보다는 질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 행복 것보다는 정신적인 행복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는 그 수준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러저러한 작은 행복들이 많이 있는 것과 무척 좋은 행복이 하나만 있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을 지를 비교해본다면, 양을 택해야 할지 질을 택해야 할지 그 기준이 사람마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행복과 정신적인 행복의 경계를 정확히 나누는 것이나,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무언가가 나한테 이만큼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도 같은 정도로 행복할지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즉, 누군가는 어떤 것에 대해 무척 행복해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보면서, ‘그게 뭐가 그리 좋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행복이 더 좋은 행복인지, 누구의 행복이 더 소중한지, 참으로 행복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불안 역시 비슷한 형편입니다. 그 수준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한 사람에 대해 불안의 수준을 측정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일반적으로 불안해하는 경향성이 있는지, 아니면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만 일시적으로 불안해하는지, 그리고 불안 수준이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만 일시적으로 높아진다면 그것이 어느 정도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인지, 그리고 일반적인 불안 경향성과 특정한 상황에서의 불안 수준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그리고 측정해서 나온 불안 수준 치를 놓고서도 어느 점수 수준부터 불안 정도가 높다고 판단할 것인지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기준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통계적으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측정 도구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리고 오랫동안 많이 사용된 것이 바로 “상태 및 특성 불안 측정 도구”(State-Trait Anxiety Inventory)입니다.

김재덕 목사는 총신대학교(B.A.)와 연세대학교(B.A.) 및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나와, 미국 리버티대학교(Th.M., Ph.D.)에서 목회상담(Pastoral Care and Counseling)을 전공했다. 현재 리버티대학교 상담학과 교수(Assistant Professor)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