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세계선교연구원과 동북아선교사회가 주관한 ‘산동선교 100주년 기념 선교학술대회’가 20일 오전 9시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개최됐다. 한국장로교회는 1912년 총회를 창립하고 1913년 9월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세 가정을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번 학술대회 준비위원장인 김승욱 목사는 인사에서 “한국장로교 총회가 산동선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던 선교정책을 살펴보며, 지금까지 선교정책과 선교방법을 깊이 반성하여 세계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취지을 전했다.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는 ‘영으로 주신 복음, 영으로 같이 받는 역사’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에서 한국장로교회가 산동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계기와 당시 선교사들의 상황에 대해 전했다. 길선주 목사는 1912년 한국장로교 총회에서 “한국은 중국에서 공자의 도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생명의 말씀으로 갚자”는 제의를 했고, 유학의 근거지이자 중국문화의 발상지인 산동이 최초 선교지로 채택됐다.
1913년 박태로, 김영훈, 사병순 세 목사의 가정이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산동 래양현에 파송됐다. 이 지역은 쌀 생산이 전혀 없는 곳이라 세 선교사 가정은 식성에 맞지 않는 소미(좁쌀)로 밥을 지어 먹고 살게 됐다. 온갖 불편을 겪다보니 박태로 목사는 결국 병에 걸려 1916년 귀국하게 됐고, 나머지 두 가정도 1917년 선교지를 떠나게 됐다.
이후 1917년 5월 한국장로교 총회는 방지일 목사의 가친인 방효원 목사를 산동성에 임시 파송했으며, 1918년 11월 박상순 선교사를 파송하여 산동선교가 안정됐다. 이후 방지일 목사가 가친의 뒤를 이어 1937년에 산동 선교사로 파송됐으나, 1957년 공산정권의 추방으로 귀국하게 됐고 산동선교는 중단됐다.
방지일 목사는 “지난 21년의 산동선교를 회고해 보건대 5번의 정변을 겪으면서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깊이 인식한 것은 ‘복음의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하신다’는 보혜사의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복음의 역사에 내 몫이란 없다. 산동선교를 볼 때에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다시 오심은 오직 그의 영으로 하시는 역사일 뿐이다. 성삼위께서 하시는 역사를 우리는 다만 영으로 받을 뿐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윤경로 교수(한성대학교)는 ‘1910년대 한국 및 교회의 상황과 산동선교’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교회의 해외 전도 및 선교활동은 주로 그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한인을 대상으로 진행됐었는데, 산동선교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총회는 자유교회의 설립이 아닌 그 땅의 장로회와 연합할 것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산동선교의 결실은 1915년에 이르러 나타났는데, 교인 수가 40여명에 이르렀고 이 중 평균적으로 30여명이 예배에 참석했으며, 이들에게 세례를 줄 만큼 점차 발전해 나갔다. 1928년에는 세례교인 898명에 총 교인은 1,006명에 이르는 놀라운 발전을 보였고, 1932년 5월 중국교회는 내양노회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윤 교수는 산동선교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한국교회 최초의 타문화권 및 외국인 선교였다는 점 ▲선교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이 한국교회의 힘으로 마련됐다는 점 ▲복음을 통해 전통적인 한중관계의 악조건을 극복했다는 점 ▲제국주의에서 자유로운 비서구 국가의 선교사로서 복음에 집중하는 선교활동이었다는 점 ▲선교신학적으로 교회의 자립과 신앙생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네비어스 선교방법과 한국교회 특유의 신앙방식을 심어주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최재건 교수(연세대)는 ‘한국 장로교회의 산동선교와 최초 해외선교의 상황과 의의’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산동선교를 통해 패권주의적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들을 기독교의 형제애 정신으로 감싸안았고 복음을 전파하여 새로운 생명존중의 사상을 불어넣으려 했다”고 전했다.
이어 “강대국들이 지구촌화란 미명 하에 패권주의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이웃국에서는 군국주의와 중화주의의 망령이 살아나는 시대에 한국교회가 이들 사이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복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평화정신을 심는 일이다. 중국에서 기독교가 급성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정치적 여건이 개선되면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 중국은 우리와 많은 면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 산동선교의 경험은 중국 복음화에 대한 가능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산동선교는 무엇보다도 한국장로교회가 선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으로 믿고 실천한 데 의의가 있었다. 선교가 교회의 사명인 사실을 자각하고 실행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피선교국에서 선교국으로 위치가 바뀌는 중대한 모멘토가 됐으며 대외적으로 한국문화인식에 변화를 줬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대회에서는 김태영 목사(예장통합 세계선교부장)가 개회예배 설교를 전했으며, 김영동 교수(장신대), 정안덕 박사(애심원 원장), 이요한 박사(새문안사회복지재단 해외이사)가 강사로 참석했다.
이번 학술대회 준비위원장인 김승욱 목사는 인사에서 “한국장로교 총회가 산동선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던 선교정책을 살펴보며, 지금까지 선교정책과 선교방법을 깊이 반성하여 세계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취지을 전했다.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는 ‘영으로 주신 복음, 영으로 같이 받는 역사’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에서 한국장로교회가 산동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계기와 당시 선교사들의 상황에 대해 전했다. 길선주 목사는 1912년 한국장로교 총회에서 “한국은 중국에서 공자의 도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생명의 말씀으로 갚자”는 제의를 했고, 유학의 근거지이자 중국문화의 발상지인 산동이 최초 선교지로 채택됐다.
1913년 박태로, 김영훈, 사병순 세 목사의 가정이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산동 래양현에 파송됐다. 이 지역은 쌀 생산이 전혀 없는 곳이라 세 선교사 가정은 식성에 맞지 않는 소미(좁쌀)로 밥을 지어 먹고 살게 됐다. 온갖 불편을 겪다보니 박태로 목사는 결국 병에 걸려 1916년 귀국하게 됐고, 나머지 두 가정도 1917년 선교지를 떠나게 됐다.
이후 1917년 5월 한국장로교 총회는 방지일 목사의 가친인 방효원 목사를 산동성에 임시 파송했으며, 1918년 11월 박상순 선교사를 파송하여 산동선교가 안정됐다. 이후 방지일 목사가 가친의 뒤를 이어 1937년에 산동 선교사로 파송됐으나, 1957년 공산정권의 추방으로 귀국하게 됐고 산동선교는 중단됐다.
방지일 목사는 “지난 21년의 산동선교를 회고해 보건대 5번의 정변을 겪으면서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깊이 인식한 것은 ‘복음의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하신다’는 보혜사의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복음의 역사에 내 몫이란 없다. 산동선교를 볼 때에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다시 오심은 오직 그의 영으로 하시는 역사일 뿐이다. 성삼위께서 하시는 역사를 우리는 다만 영으로 받을 뿐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윤경로 교수(한성대학교)는 ‘1910년대 한국 및 교회의 상황과 산동선교’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교회의 해외 전도 및 선교활동은 주로 그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한인을 대상으로 진행됐었는데, 산동선교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총회는 자유교회의 설립이 아닌 그 땅의 장로회와 연합할 것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산동선교의 결실은 1915년에 이르러 나타났는데, 교인 수가 40여명에 이르렀고 이 중 평균적으로 30여명이 예배에 참석했으며, 이들에게 세례를 줄 만큼 점차 발전해 나갔다. 1928년에는 세례교인 898명에 총 교인은 1,006명에 이르는 놀라운 발전을 보였고, 1932년 5월 중국교회는 내양노회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윤 교수는 산동선교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한국교회 최초의 타문화권 및 외국인 선교였다는 점 ▲선교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이 한국교회의 힘으로 마련됐다는 점 ▲복음을 통해 전통적인 한중관계의 악조건을 극복했다는 점 ▲제국주의에서 자유로운 비서구 국가의 선교사로서 복음에 집중하는 선교활동이었다는 점 ▲선교신학적으로 교회의 자립과 신앙생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네비어스 선교방법과 한국교회 특유의 신앙방식을 심어주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최재건 교수(연세대)는 ‘한국 장로교회의 산동선교와 최초 해외선교의 상황과 의의’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산동선교를 통해 패권주의적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들을 기독교의 형제애 정신으로 감싸안았고 복음을 전파하여 새로운 생명존중의 사상을 불어넣으려 했다”고 전했다.
이어 “강대국들이 지구촌화란 미명 하에 패권주의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이웃국에서는 군국주의와 중화주의의 망령이 살아나는 시대에 한국교회가 이들 사이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복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평화정신을 심는 일이다. 중국에서 기독교가 급성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정치적 여건이 개선되면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 중국은 우리와 많은 면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 산동선교의 경험은 중국 복음화에 대한 가능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산동선교는 무엇보다도 한국장로교회가 선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으로 믿고 실천한 데 의의가 있었다. 선교가 교회의 사명인 사실을 자각하고 실행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피선교국에서 선교국으로 위치가 바뀌는 중대한 모멘토가 됐으며 대외적으로 한국문화인식에 변화를 줬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대회에서는 김태영 목사(예장통합 세계선교부장)가 개회예배 설교를 전했으며, 김영동 교수(장신대), 정안덕 박사(애심원 원장), 이요한 박사(새문안사회복지재단 해외이사)가 강사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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