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는 딸을 너무 좋아해서 바라만 봐도 웃게 되는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무뚝뚝하고 시커먼 아들보다는 방글방글 잘 웃고 애교 많은 딸에게 껌뻑 죽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바보’ 소리까지 들을 만큼 딸에게 꼼짝 못하는 ‘딸 바보’ 아빠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 딸들이 무심치않게 출가해서도 아빠에게 바치는 충성도가 가히 혀를 내두를만 하다. 그래서 아들을 일컫어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 하고 딸을 두고는 ‘그대는 아직도 내 사랑이라’ 하지 않는가! 그것뿐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로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라는 게 있는가 하면 ‘아들 낳았을 땐 2촌, 대학가면 4촌, 군대 가면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 동포’라는 얘기도 떠돈다. 실감나는 얘기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어머니와 장모님이 만세를 불렀던 것이 엊그제인데 아들녀석은 장가가더니 그야말로 동포정도가 되었고 딸은 듬직한 사위를 데려와 사돈에게 미안할 정도로 충성하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이제 딸을 시집보내면서 눈물훔치는 아버지가 있다면 케케묵은 구식이다. 대놓고 웃지는 못해도 꾸벅 절하는 사위녀석보고 빙그레 웃음을 지어야 할 것이다. 예기치못한 전리품을 거저 줏은 때문이다.

옛말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고 했는데 오늘은 아주 때리는 시누이에 말리는 시어머니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만큼 딸은 아빠 사이드 일변도라는 것이다. 내 주위에도 딸만 셋에다 손녀까지 둘을 두어 여인천하에서 사는 C형, 외동딸 자랑에 게거품을 무는 K군에다가 자식자랑에는 무심하던 Y군이 최근 손녀를 보면서 딸자랑에 합세하여 온통 딸 바보천지이다. 그런가하면 아들만 셋을 둔 C형은 딸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벌겋게 되어 어찌할바를 모른다. 주위의 딸바보들이 스마튼 폰을 내보이며 이것도 저것도 다 딸이 사주었다고 입방정을 떠는 바람에 효자 아들에게 넌지시 스마트 폰 이야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녀를 임신중인 며느리를 위해 두 손자녀석들 베비시터 역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들이라도 딸 바보 반열에 올리려는 갸륵한 사랑이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기관이 예비엄마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첫 아이로 딸이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응답한 수치가 68%(270명)로 아들보다 두 배나 높았다고 한다. 이런 기대치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대학에서 수학능력에서 여성이 월등하고, 사법고시나 외무고시와 같은 평등한 시험에서는 남자보다 더 월등한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남아선호사상은 옛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걱정도 되는 것은 성비에서 남아보다 여아의 수가 월등해서 초등학교에서의 짝은 물론 항차 결혼 배우자로서 늠름한 남자를 구해 짝을 채워 줄 일이 난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겨우 아들을 얻어서도 이 녀석이 항차 마당쇠로 버티어야 할 앞날이 눈물겹게 될 것이다. 그래도 딸바보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