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을 읽으며, 아담과 하와도 그렇고, 다윗도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고, 제 자신도 그렇습니다. 해야 할 일(do list)을 날마다, 그리고 매 월마다 수첩에도 적고, 기도노트에도 적지만 조용히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아쉬움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이 후회됩니다.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평생 동안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 3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천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첫째, 오늘 일만 근심하고, 내일 일은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준비해야 하겠지만, 근심까지 미리 끌어다 땡겨(?)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앞 날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저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그래도 내일 일이 불안하게 느껴지면 저는 <기도>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길 것입니다.

둘째, 남을 비판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Yes. 내가 아는 지식이나 정보가 전부가 아님을 시인하는가? Yes. 나는 죄인임을 인정하는가? Yes. 나는 나 자신을 성찰하는 데 부지런한가? No.’ 그렇다면 건전한 판단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되, 타인의 인격을 모함하는 비판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쉬운성경>으로 통독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은 보지 못하느냐?”(마7:3)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사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어떠한 역경을 만나더라도 절망은 하지 않겠노라는 각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악과 고난에서 면제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자라난 동일교회, 임종은목사님은 “고난이 축복이라”고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힘들어도 절망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5천명도 넘는데, 주님 앞에는 고작 1인분 도시락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절망하는 대신, 제가 해야 할 일이 <감사>하는 자세라고 믿습니다.

현실에 절망하는 대신 감사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이기범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