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신비한 종교이다. 그러나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종교는 아니다. 교회사에는 신비주의운동들이 즐비하였으나 그것들은 다 명멸하였다. 특히 중세에는 교회의 극에 달한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에크하르트(Eckhart)나 타울러(Tauler) 그리고 수소(Suso)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경건과 신비를 외칠 때 군중들이 구름같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오늘 한국 교회안에서 판치고 있는 신비주의 운동들은 이런 교회의 경종을 울리는 운동들이 아니라 여전히 교회성장의 방편이나 일부 신비주의 운동가들의 인기영합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에 통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잘못된 신비주의 폐혜가 만만치 않기에 신비와 신비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는데 “신비는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한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신비다. 그런데 지금 오병이어의 기적을 구하고 똑 같은 기적을 체험하고자하는 것은 신비주의다. 천사가 이땅에 내방하였던 사실은 신비다. 그러나 천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구하고 천사를 지금 이땅에서 만나는 체험을 하고자하는 것은 신비주의다. ...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은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사단적인 것이다. 육체적이고 가시적인 신비체험을 하고자 갈망하는 모든 것은 위험하다” 전적 동감이다.

먼저 최근 한국의 신비주의운동이 흐름을 본다면 미국에서 건너간 바인야드 운동에서 토론토 불레싱, 관상기도 그리고 신사도운동으로 거침없이 번져가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최근 수십년동안 이런 신비주의 운동이 판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한국교회의 잘못된 교회성장주의가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어느 대형 교회로 발돋움하려는 목사와 사모가 토론토를 찾아가 사모는 예수의 영을 목사는 베드로의 영을 받고 귀국하였다. 문제는 예수의 영을 받은 사모가 베드로야 내 말을 들으라! 하니 목사가 예 듣게나이다. 말씀하시옵소서 하는 웃지 못할일이 벌어져 교회성장은 커녕 교회가 풍비박산이 났다한다.

다음으로는 성도들의 영적 기갈을 채워주지 못한 지도자들에게 있다하겠다. 전자의 경우에는 대형교회들이 담합한 흔적들을 손쉽게 찾아 볼수 있다. 교회성장이라면 신학적 교리적으로 많은 위험성이나 이단적 요소가 있음을 알고도 통넓게(?) 수용한 결과 우후죽순처럼 신학적 수련이나 소양을 쌓지 못한 자들을 강단에 세워 이상한 아니 요상한 말 솜씨와 검증되지 못한 간증들을 성경에 교묘히 대입하여 청중들을 환각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그것은 다시 미국의 디아스포라 교회에 역 수출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후자는 정형화된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를 단계식으로 행하는 프로그램으로는 더 이상 영적기갈을 채워 줄 수 없는 한계성에 부딪히게 되었으므로 급히 좌회전한 경우이다. 때마침 불어닥친 열린예배니, CCM, 관상기도니 해서 예배모범을 파괴시키는 과감함을 보여준 재빠름의 귀재들 덕에 일부 대형교회나 이를 추종하는 이들이 다시 주춤한 성장을 회복시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을 떠난 신비주의를 추종해서 얻는 결과는 상처뿐이다.

최근 워싱톤 교계가 기도에 대한 각성과 고취를 위해 고심하는것은 매우 바람직하되 비 성경적 기도운동이 될까 염려하는 바이다. 기도신학에 대한 바른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목회자 연장교육등을 통하여 신비주의가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