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돕고 살피는 것도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몸을 입어 불쌍한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 속에는 인류의 구속을 향한 사랑의 섬김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느 글 잘 쓰시는 목사님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셔서 인세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돕기로 작정하고 찾다가 본 교회에 가난한 학생들을 돕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힘 닫는 대로 도왔습니다. 학비를 지원하고, 때로는 용돈도 지원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더니 하나 둘 씩 교회를 떠나더라는 것입니다.

가만 살펴보니 유독 많은 학생들 중에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친구들만 교회를 다 떠나더라는 것입니다. 실망도 하고 ‘배은망덕’이란 생각도 들어 고민을 했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자신의 잘못이 큰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이 학생들을 도울 때 항상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너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티 나게 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학생들이 받을 때 이미 자존심 상하는 대가를 치루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늘 미안합니다. 부담이 됩니다.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니 스스로 설 수 있는 때가 되면 그냥 그 표현을 잘 못하고 그 환경과 자리를 떠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들 합니다. “너무 미안해서 말도 못하고…너무 죄송해서 전화도 못하고 갑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이런 모습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깨달은 것은 “아 도와주더라도 개인적으로 내가 드러나게 해선 안되겠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위대한 일 앞에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하나님이시고, 왕이시고, 메시아’셨는데 말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날 낮추고, 날 숨기고, 날 비우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삶으로 성숙해 지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