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이적입니다. 이 부활의 실제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나면 성경의 모든 이적에 대하여 더 이상의 토론이 불필요하게 됩니다. 성경의 진리성에 대하여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지만 모든 논쟁을 종식시키는 결정적 사건이 부활사건입니다. 자신의 운명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지극히 한계적인 존재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복음의 능력에 대하여 많은 이의를 제기해왔지만 그 모든 노력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시도인지를 확인해 주는 사건이 부활입니다.
부활의 이적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설 수도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100% 성공으로 또는 100% 실패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구원이 100% 진짜일 수도 100%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실제로 있었던 확실한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는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그의 탄생과 그의 사역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장사지냄과 부활과 승천입니다. 이 여러 가지 사건 중에서 특히 그의 부활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가 주장하는 대로 그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지난 이 천년 동안 속은 것이요, 설교자들은 거짓을 설교한 것이 되며 신자들은 헛된 구원의 소망에 기만을 당해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부활의 사실에 의문 부호를 붙이지 않고 감탄 부호를 붙일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5:20).]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비웃은 회의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시체가 있는 무덤을 가진 여타 종교들은 현실적인 종교요, 시체 없는 무덤을 가진 기독교는 비현실적인 종교로 치부합니다.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을 바르러 왔던 사람들이 그의 무덤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은 사실입니다. 무덤이 텅 빈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설명될 길이 없습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주님의 시체를 어디서든지 찾을 수만 있었다면 부활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들의 증언을 얼마든지 허구라고 증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확실히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 속에 매장된 채 그대로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던 근거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부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과 그 외 오백여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그의 몸을 만져봤고 그와 함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바울 당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다고 바울은 증언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또는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만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어떻게 거짓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만일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바뀔 수가 있었겠습니까?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는 소문까지 퍼뜨렸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빌라도에게 특별히 삼일동안 철두철미하게 지켜줄 것을 요청하여 허락을 받고 삼엄한 경비를 섰습니다. 시체도난을 사전 예방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지키는 상태에서 무서워 피신한 제자들이 무슨 힘으로 시체를 빼앗아 올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단지 졸도 했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미 아리마대 요셉의 시체 인도요청에 의해 빌라도는 백부장을 통해 사망상태를 확실히 확인한 후에 내주었습니다만 졸도 했었다 해도 물과 피를 완전히 쏟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일어날 수도 없는 사람이 장정 20명이 옮겨야하는 무거운 돌을 움직이는 것과 군인들의 감시를 뚫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또 예수님의 실체가 아니라 환상을 봤다는 억지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일시에 약속한 듯이 환상을 보고 실제사건으로 오인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11번 나타나셨고 제자들에게 만져보게 하셨고 함께 식사도 나누었습니다. 승천직전 감람산 현장에서 오백여 형제가 함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자유 신학자 De Wette는 “씨저가 암살당한 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것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도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부활은 구원의 완전성, 영생의 확실성을 우리에게 직접 보고 만지게 하신 기적 같은 사실입니다.
부활의 이적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설 수도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100% 성공으로 또는 100% 실패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구원이 100% 진짜일 수도 100%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실제로 있었던 확실한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는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그의 탄생과 그의 사역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장사지냄과 부활과 승천입니다. 이 여러 가지 사건 중에서 특히 그의 부활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가 주장하는 대로 그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지난 이 천년 동안 속은 것이요, 설교자들은 거짓을 설교한 것이 되며 신자들은 헛된 구원의 소망에 기만을 당해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부활의 사실에 의문 부호를 붙이지 않고 감탄 부호를 붙일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5:20).]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비웃은 회의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시체가 있는 무덤을 가진 여타 종교들은 현실적인 종교요, 시체 없는 무덤을 가진 기독교는 비현실적인 종교로 치부합니다.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을 바르러 왔던 사람들이 그의 무덤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은 사실입니다. 무덤이 텅 빈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설명될 길이 없습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주님의 시체를 어디서든지 찾을 수만 있었다면 부활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들의 증언을 얼마든지 허구라고 증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확실히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 속에 매장된 채 그대로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던 근거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부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과 그 외 오백여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그의 몸을 만져봤고 그와 함께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바울 당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다고 바울은 증언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또는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만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어떻게 거짓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만일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바뀔 수가 있었겠습니까?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는 소문까지 퍼뜨렸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빌라도에게 특별히 삼일동안 철두철미하게 지켜줄 것을 요청하여 허락을 받고 삼엄한 경비를 섰습니다. 시체도난을 사전 예방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지키는 상태에서 무서워 피신한 제자들이 무슨 힘으로 시체를 빼앗아 올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단지 졸도 했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미 아리마대 요셉의 시체 인도요청에 의해 빌라도는 백부장을 통해 사망상태를 확실히 확인한 후에 내주었습니다만 졸도 했었다 해도 물과 피를 완전히 쏟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일어날 수도 없는 사람이 장정 20명이 옮겨야하는 무거운 돌을 움직이는 것과 군인들의 감시를 뚫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또 예수님의 실체가 아니라 환상을 봤다는 억지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일시에 약속한 듯이 환상을 보고 실제사건으로 오인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11번 나타나셨고 제자들에게 만져보게 하셨고 함께 식사도 나누었습니다. 승천직전 감람산 현장에서 오백여 형제가 함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자유 신학자 De Wette는 “씨저가 암살당한 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것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도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부활은 구원의 완전성, 영생의 확실성을 우리에게 직접 보고 만지게 하신 기적 같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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