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초대교회 한규삼 목사는 8일 부활절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확실한 부활신앙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한규삼 목사는 설교에서 "성경을 공부한다는 신학자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며 "부활은 기독교신앙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성도 여러분은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가는 가운데 그 능력을 깨닫고 또 그 권능을 힘입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고 권면했다.
뉴저지초대교회는 부활절을 맞기 까지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 특히 고난주간을 맞아서는 △베드로의 배반 예고(눅 22:31~34) △빌라도와 헤롯이 친구(?)가 되다(눅23:1~12) △화난 백성들, 어리석은 백성들(눅23:13~25) △눈물(눅23:26~31) △버린 자와 찾은 자(눅 23:32~43) △버림받음으로 불러모음(눅23:44~49) △숨겨졌던 사람들, 돌아온 사람들(눅 23:50~56)을 주제로 매일 새벽 강단에서 고초를 당하신 십자가의 길을 전했다.
깊은 말씀 묵상 가운데 이어진 부활절예배에서의 설교도 힘이 넘쳤다. 한규삼 목사는 이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부활의 진정한 의미와 성도들이 가져야할 부활신앙의 핵심을 증거했다.
한규삼 목사는 "부활의 첫 번째 징조는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하늘의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침노해 들어오는 것"이라며 "영안이 열리게 되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냥 우연히 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또 한규삼 목사는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증인을 찾으시고 세우시기 원하고 계신다"며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세움 받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능력이자 도전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도의 삶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규삼 목사 설교 요약.
엠마오의 길에서 생긴 일(누가복음 24:13-32)
누가복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는 두 편의 스토리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무덤으로 갔던 장면과 또 하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장면이다. 엠마오로 가는 선상의 제자는 12제자는 아니고 12제자 아닌 제자 중 하나는 글로바였다.
엠마오의 위치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약 25리 정도다. 2시간 정도 성인이 걸어야 하는 거리다. 어떤 이는 실망해서 낙심해서 떠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집에 가는 것 같다. 유월절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동행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됐을 때 그들의 삶이 변화됐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한다면 삶에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변화를 원하는 DNA가 있는 것 같다. 보통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변화라는 것은 외모, 기분에 따른 것이 많다.
사람들 마음에 변화를 원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변화는 진정한 부활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학자들 중에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많은 신학을 공부하고 저와 같이 신약학을 공부한 사람 중에는 부활을 못 믿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예수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육신과 함께 영혼이 완전한 몸으로 다시 사는 부활이 기독교신앙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마지막 끝나는 날이 두렵지 않다. 마지막에 일어날 일을 예수님 안에서 먼저 겪는데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에 들어갈 천국을 미리 경험하고 영원히 그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의 사건에 앞서서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렸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그 이야기까지 들은 상태다.
첫째 부활은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오늘 본문 31절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라고 했다. 부활할 때 눈이 밝아진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 눈이 밝아지기 원한다. 이것은 원어로 보면 열린다는 뜻이다. 수동태다. 영안이 열린다는 것인데 성경에 열린다는 것은 다 좋은 말들이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것과 안 열어주시는 것의 차이가 크다. 부활의 첫 번째 징조는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하늘의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침노해 들어오는 것 이것이 부활이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다. 우리의 영혼을 깨닫게 해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셨는데 그 이후 또 한번의 만찬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 우리는 성만찬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몸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하셨다. 성찬식은 행하여 기념을 계속해야 능력이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에수님의 떡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매일 먹을 때 그 예수님을 깨닫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 깨달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적 시각으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없지만 영안이 열리게 되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수 부활이 우리에게 능력이 될 때 깨닫게 된다. 자연히 되어진 것 우연히 된 일 같아 보이던 것이 하나님의 역사로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이 임한 것이다.
지난 성금요일 말씀을 다시 전해드리고자 한다. 누가복음을 오랫동안 읽으면서 고민을 했는데 성전이 먼저 찢어지고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는데 예수님이 죽으신 뒤에는 그 죽으심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계속 타나나는 기적을 보게 된 것이다. 성전 휘장이 찢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활동하시는 것인데 이 증인들을 불러 모으셔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세움 받는 것, 이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능력이자 도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도의 삶으로 변화되어야겠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이 진짜 달라지는 부활의 권능을 입기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임했다. 누가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그 이름을 전하고 선포할 때 그 자리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했다. 복음을 전하는 현장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현장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소망의 자리로 이끈다. 엠마오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제자들에게로 간다. 갔더니 벌써 그들 사이에도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문이 다 퍼져 있었다. 예루살렘이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에게는 자기의 집이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그래서 거기서 또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소명을 받는 자리가 됐다.
부활절 새로운 소명을 받는 역사가 있기를 원한다. 이 소명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관찰해보면 소명은 내가 잘하는 가운데 주시는 때가 많다. 소명은 잘하면서도 쉽게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이 끌리는 것에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을 보고 화가 나도 소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화는 마음의 성질이 돋아나는 화가 아니다. 이것은 본문에 나와 있는 정확한 단어 32절과 같이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와 같은 것이다. 엠마오 제자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열어주셔서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는 것을 열어주시고 부활의 권능을 알게 하셨다. 성도 여러분도 정말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가는 가운데 그 능력을 깨닫고 또 그 권능을 힘입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뉴저지초대교회는 부활절을 맞기 까지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 특히 고난주간을 맞아서는 △베드로의 배반 예고(눅 22:31~34) △빌라도와 헤롯이 친구(?)가 되다(눅23:1~12) △화난 백성들, 어리석은 백성들(눅23:13~25) △눈물(눅23:26~31) △버린 자와 찾은 자(눅 23:32~43) △버림받음으로 불러모음(눅23:44~49) △숨겨졌던 사람들, 돌아온 사람들(눅 23:50~56)을 주제로 매일 새벽 강단에서 고초를 당하신 십자가의 길을 전했다.
깊은 말씀 묵상 가운데 이어진 부활절예배에서의 설교도 힘이 넘쳤다. 한규삼 목사는 이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부활의 진정한 의미와 성도들이 가져야할 부활신앙의 핵심을 증거했다.
한규삼 목사는 "부활의 첫 번째 징조는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하늘의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침노해 들어오는 것"이라며 "영안이 열리게 되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냥 우연히 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또 한규삼 목사는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증인을 찾으시고 세우시기 원하고 계신다"며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세움 받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능력이자 도전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도의 삶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규삼 목사 설교 요약.
엠마오의 길에서 생긴 일(누가복음 24:13-32)
누가복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는 두 편의 스토리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무덤으로 갔던 장면과 또 하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장면이다. 엠마오로 가는 선상의 제자는 12제자는 아니고 12제자 아닌 제자 중 하나는 글로바였다.
엠마오의 위치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약 25리 정도다. 2시간 정도 성인이 걸어야 하는 거리다. 어떤 이는 실망해서 낙심해서 떠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집에 가는 것 같다. 유월절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동행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됐을 때 그들의 삶이 변화됐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한다면 삶에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변화를 원하는 DNA가 있는 것 같다. 보통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변화라는 것은 외모, 기분에 따른 것이 많다.
사람들 마음에 변화를 원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변화는 진정한 부활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학자들 중에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많은 신학을 공부하고 저와 같이 신약학을 공부한 사람 중에는 부활을 못 믿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예수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육신과 함께 영혼이 완전한 몸으로 다시 사는 부활이 기독교신앙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마지막 끝나는 날이 두렵지 않다. 마지막에 일어날 일을 예수님 안에서 먼저 겪는데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에 들어갈 천국을 미리 경험하고 영원히 그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의 사건에 앞서서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렸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그 이야기까지 들은 상태다.
첫째 부활은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오늘 본문 31절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라고 했다. 부활할 때 눈이 밝아진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 눈이 밝아지기 원한다. 이것은 원어로 보면 열린다는 뜻이다. 수동태다. 영안이 열린다는 것인데 성경에 열린다는 것은 다 좋은 말들이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것과 안 열어주시는 것의 차이가 크다. 부활의 첫 번째 징조는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하늘의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침노해 들어오는 것 이것이 부활이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다. 우리의 영혼을 깨닫게 해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셨는데 그 이후 또 한번의 만찬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 우리는 성만찬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몸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하셨다. 성찬식은 행하여 기념을 계속해야 능력이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에수님의 떡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매일 먹을 때 그 예수님을 깨닫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 깨달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적 시각으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없지만 영안이 열리게 되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수 부활이 우리에게 능력이 될 때 깨닫게 된다. 자연히 되어진 것 우연히 된 일 같아 보이던 것이 하나님의 역사로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이 임한 것이다.
지난 성금요일 말씀을 다시 전해드리고자 한다. 누가복음을 오랫동안 읽으면서 고민을 했는데 성전이 먼저 찢어지고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는데 예수님이 죽으신 뒤에는 그 죽으심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계속 타나나는 기적을 보게 된 것이다. 성전 휘장이 찢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활동하시는 것인데 이 증인들을 불러 모으셔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세움 받는 것, 이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능력이자 도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도의 삶으로 변화되어야겠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이 진짜 달라지는 부활의 권능을 입기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임했다. 누가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그 이름을 전하고 선포할 때 그 자리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했다. 복음을 전하는 현장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현장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소망의 자리로 이끈다. 엠마오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제자들에게로 간다. 갔더니 벌써 그들 사이에도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문이 다 퍼져 있었다. 예루살렘이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에게는 자기의 집이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그래서 거기서 또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소명을 받는 자리가 됐다.
부활절 새로운 소명을 받는 역사가 있기를 원한다. 이 소명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관찰해보면 소명은 내가 잘하는 가운데 주시는 때가 많다. 소명은 잘하면서도 쉽게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이 끌리는 것에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을 보고 화가 나도 소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화는 마음의 성질이 돋아나는 화가 아니다. 이것은 본문에 나와 있는 정확한 단어 32절과 같이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와 같은 것이다. 엠마오 제자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열어주셔서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는 것을 열어주시고 부활의 권능을 알게 하셨다. 성도 여러분도 정말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가는 가운데 그 능력을 깨닫고 또 그 권능을 힘입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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