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의 따님인 이민아 목사가 지병으로 소천하셨다는 소식이다.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딱히 슬퍼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은 금할 수 없다.

이민아 목사는 오래 전부터 오렌지카운티에 살았고 본인의 간증에 의하면 여러가지 곤고한 순간에 이 곳의 한 교회에서 주님을 만났다. 그리곤 검사에서 변호사로 직업을 바꾸어 주로 청소년들을 변호하는 일들을 했다. 그 무렵부터 또 서서히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지역사회와 교회를 위해서 일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집회에서 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해 부모님들의 인식을 깨우치는 사역들을 했다. 그러는 가운데 개인적인 어려움과 고난들에 계속되어서 사랑하는 아들을 갑자기 잃는 슬픔을 당하였고 그에 더해 본인 자신이 오랜 기간 동안 암과 투병하기도 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집회를 했던 것이 한 5,6년 전 쯤으로 기억되는데 그 전 해 갑자기 아들을 잃는 슬픔을 당했고 그 큰 슬픔을 믿음으로 이기면서 아들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오히려 섬김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시기였었다.

이민아 목사는 그 당시에는 어느 미국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얼굴과 몸이 너무 야위어 있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 그녀는 영적으로 한층 깊어져서 기도와 찬양에 깊이 젖어 있었고 말씀과 간증은 듣는 사람들을 깊이 감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교회에서 여자 강사 그것도 당시로서는 집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다들 약간의 염려도 없지 않았는데 당시 집사였던 이민아 목사의 집회는 그런 우려를 깨끗이 씻어주며 큰 감동과 은혜를 남겼다. 이 후에 이런 저런 집회를 통해 우리 교회는 적지 않은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은혜를 체험하였는데 나로서는 우리 교회의 집회 중 그 집회를 통해 처음으로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기적이나 치유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집회 기간 동안 내내 성령의 기름부음이 마치 교회 안에 이슬비가 내리는 듯 촉촉하게 적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민아 목사에게는 그 후에도 개인적인 아픔과 고난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딸의 고난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손꼽히는 아버지 이어령 교수가 마침내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 귀한 역사도 있었다. 그 때 이어령 교수의 딸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서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후 이어령 교수는 크고 작은 교회 행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변증하는 학자로 거듭났고 요즘도 크리스천 방송 같은 곳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민아 목사가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은 아버지의 후광 덕분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딸이 그 고난을 통해 아버지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된 것이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주로 한국에서의 활동 소식이 간간이 전해졌다. 아마도 딸을 염려한 부모가 딸을 곁에 두고 도움을 주려는 뜻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 소천의 소식을 접하게 되니 놀랍고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적으로는 명문가의 사랑 받는 딸로 태어났지만 그 누구보다도 우여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간 한 여인에 대한 연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난과 시련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민아라는 한 여인을 알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를 통해 역사하셨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그녀를 통해 부으셨던 성령의 기름부음을 전혀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고난이 본인에게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영적인 유익이 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민아 목사에게 적잖은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모쪼록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이민아 목사의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