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내의 설거지를 돕기 시작했다. 다시 라면을 끓이고, 반찬을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꺼내는 일을 시작했다. 옷을 정리하고, 깔끔떠는 청소를 시작했다.

늘 집안 일을 돕지 않는다는 아내의 불평을 안식년 기간에 하겠다고 미뤄 놓았다가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시작했다. 안 하던 운동을 하면 온 몸이 뻐근하듯이, 나는 지금 그 뻐근함에 있다.

소박한 예루살렘연구소 기숙사에서의 생활이 마치 신혼 초기 원베드룸 아파트에서 살림을 차렸던 생활로 기억된다.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50대에 시작하는 신혼 생활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몇 년만인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설교 준비나, 예배를 따로 준비해야 할 긴장과 부담이 없는 안식 기간, 첫 주일을 맞이한다. 이곳 예루살렘은 토요일 안식일 시스템으로 모든 사회가 돌아가기에 한인교회도 토요일에 주일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예배만 드리겠다는 기대심에 예배를 기다린다.

야자수가 길가에 뻗어있고, 모든 도시가 돌로 지어진 것 같이 맨 돌, 맨 담인 예루살렘에 펑펑 눈이 내린다. 안그래도 신기한데, 함박눈이 내리는 예루살렘은 더욱 신비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함께 기숙하고 있는 목사님과 성묘교회를 찾았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섰다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교회이다. 삭막하고, 쓸쓸했을 골고다는 없고, 모든 종교의 집합지 같은 형형색색과 온갖 데코레이션으로 치장된 골고다는 웬지 내 마음에 와 계신 예수님과 낯설게 느껴진다. 수많은 순례자들의 종교성을 본다. 관광객 뿐 아니라, 모든 정교회, 가톨릭 성도들의 끊임없는 순례에 가끔 보이는 중국교회 성도들, 물론 한국교회 성도들도 만난다.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놓였다는 무덤도 확인했다. 로마병정에 끌려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넘어지고 멈추어 서셨던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를 묵상하며 걸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 길을 가셨다는 말인가?” “왜 날 사랑했나?” 다시 신혼생활을 시작하듯, 그 주님을 오늘 예배 시간에 만나 그 설레임의 출발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