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의 공산치하에서 자유를 위해 항거하며 반체제 인사로서 참다운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 주었던 솔제니친은 1983년도 템플턴상 수상식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왜 러시아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6천만명이 넘는 인명이 학살 당하는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솔제니친은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니었다. 그는 사상가요 문학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대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안목과 능력이 남달랐던 것은 바로 남들에게 없는 한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었다. 솔제니친은 어린 시절에 러시아 공산혁명을 직접 경험한 자였다. 자신이 사랑했던 삼촌, 이웃,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인사들이 끌려 가서 처형되는 장면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했다. 온 나라가 공포 분위기에서 아수라장이 되어 가는 그 모습 앞에 그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처참하게 처형 당하던 그 어른들이 남긴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왜 이 땅에 이토록 처참한 비극이 찾아 왔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20세기 소련 땅에서 시작된 이 비극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 땅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동일하다. 바로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잊어 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단절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땅에는 절망과 탄식과 비극만이 일어날 뿐이다. 하나님을 잊어 버린 북한이 지금 신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과 점점 단절되어 가는 미국 땅에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불안과 위기가 점점 많아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것은 개인의 인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생은 결코 생명의 능력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의 내면에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된 본성을 가지고 그 기억을 자꾸 잊어 버리려 한다. 하나님을 잊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의 능력을 끊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불안과 근심 절망과 포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내 삶에서 하나님을 다시금 찾는 것이다. 잊어버린 하나님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이다.

돈과 권력으로 혼탁되어 있는 프로 농구의 세계에 참된 하나님을 증명하고자 혜성같이 나타난 젊은 선수 제레미 린은 경기가 끝나면 늘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있다. “내 삶의 목적은 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린의 이 고백은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해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바로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금 기억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