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소외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말이다. 예를 들면, 부모와 형제, 교회식구들, 믿고 가깝게 사귀었던 친구들, 이웃들. 이런 이들로부터 소외와 억눌림을 당하면 그 상처는 꽤 길게 오랫동안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심지어는 어릴 때 받았던 이러한 상처로 인해, 커서 어른이 된 후에도 제대로 대인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자기 자신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본다.

그만큼 소외감과 박탈감은 우리들을 못살게 군다. 삶의 희망과 소망까지도 앗아가 버린다. 필자가 상담위원으로 섬기고 있는 한국자살예방협회의 사이버상담실에 사연을 올리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남과 비교하거나 혹은 원하지 않은 결과를 손에 쥐고 있거나, 또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실과 소외와 박탈감으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여기에 굶주리고 찟기고 벗기운 채, 막대기 위에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자기의 편이 되 주는 이 없는 것 같은 깊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한 사람이 있다. 때로는 절망이 때로는 몸의 페부를 찌르는 육신의 아픔으로 인해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한 사람, 바로 예수님이시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묵상하는 예수님은 준수하다거나, 세상 모든 것을 가지신 배 나온 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야 말로 두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몰골로 사람들의 버림을 한 몸으로 껴안고 참아야만 하는 기가 막힌 운명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사랑했었던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고 외면 당했던 예수님은 마침내, 끝까지 인내하고 참아냈었던 울분을 이렇게 터뜨리고 만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한 마디의 외침속에는 예수님께서 느끼신 소외와 박탈 그리고 절망감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는 골고다 언덕 위에서 홀로 두 팔을 벌리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숨을 내 쉬며 그는 아버지 하나님께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예수님의 울부짖음이 있기에, 오늘 우리는 우리의 고독과 절망과 소외와 박탈감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아갈 수 있다. 그 누구도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으려 하는 현실에 처해 있을 때,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상처받고 고통받고 있어 절규하고 싶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야 한다. 단지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절망과 소외와 박탈감을 경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토록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그가 마침내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신 목적, 즉,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와 죄의 정복, 그리고 죽음까지도 다스리시는 영원한 새나라와 새 땅을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이들이 갖는 영원한 소망의 근거는 바로 모든 것 다 이루신 예수님의 완전한 사역에 있다. 오늘 우리가 이 땅 위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절망과 아픔과 상처와 소외와 박탈감속에서도 주저앉을 수 없는 것은, 이 땅 위의것들에 우리의 소망을 뿌리 박기 보다, 사형수를 처형하는 십자가 위에서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이루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글 장보철 목사(bcchang@wbc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