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와서 생소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중에 여직도 이해안되는 것은 자동차 사고에 구급차외에 대형 소방차들이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속속 도착하여 장시간 도로를 통제하여 교통대란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것도 인근 파이어 스테이션들이 경쟁적으로 출동하는데는 고소를 금치 못한다. 인명을 중시한데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엔진과열이나 기타 원인으로 화재사건이 나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너무 호들갑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잘 훈련된 소방대원들처럼 군소리 없이 비켜서거나 하염없이 기다린다. 참으로 기특한 백성들이다. 만에 하나 대형사고를 대비하여 사건을 초등에서부터 그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지이니 내가 이해가 안되는 문제는 차등의 일이다.

사실 싸이렌소리로 말하면 한국인들 만큼 익숙한 백성들도 없을 것이다. 민방공훈련이 시작되면 의례히 대피소를 찾아 해제방송이 흘러 나오기 까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벌써 몇 년인가? 통일이 되기까지 요원한 세월을 싸이렌을 벗삼아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싸이렌은 사실 그리스 신화에서 연유된 오래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미혹시켜 배를 난파시키는 인어요정으로, 이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소리에 이끌려가다가 암초와 부딪쳐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스타벅스 커피가 4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로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siren)의 상반신 모습이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율리시즈)는 트로이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사이렌들을 만나게 되자 재앙을 피하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게 한다. 하지만 그 노랫소리가 너무도 궁금했던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돛대 기둥에 꽁꽁 묶도록 하고 어떤 말을 해도 밧줄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 후 사이렌 섬을 지나가는데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혼을 다 빼놓는지 그리로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호머의 ‘오딧세이’에 기록돼 있다.

그러므로 싸이렌은 이중적 의미를 갖지만 경고음이라는 의미에서는 같다. 아직도 세상에는 정의(正義)의 의미에서 경고음 사이렌이 울리는 까닭에 이정도의 세계질서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미디어들이 쏱아내는 정의의 싸이렌이 제법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근 재벌가의 딸들이 제과업체를 장악하여 영세사업자들이 도산하는 현상을 심층취재 보도하자 견디다 못한 재벌들이 손을 들고 제과업에서 철수하였다 하니 반가운 일이며, 또 재래시장옆에 버젓이 자리잡은 대형마트들도 이제 신문 방송매체들의 집중 포화에 두손을 들 기미가 확연하다니 이도 아주 잘된 일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영계도 이런 정의의 사이렌을 울려야 한다. 최근 워싱턴 교계에 위험수위를 넘는 반 교회주의적 언동들이 넘치지만 이를 향해 마땅히 싸이렌을 불어야 할 대표기관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빈데잡자고 초가삼간 태우겠냐고 모르쇠로 일관하다가는 진정 초가삼간 마져 태우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이제라도 싸이렌을 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