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무신론을 주장해온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와 이에 맞서 영국의 종교 수장이 학문의 전당에서 인류의 오랜 과제에 대해 지적 토론을 펼쳤다.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신은 인류가 만들어낸 망상이라며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한 리처드 도킨스와 영국성공회를 이끄는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23일(현지시간) 옥스퍼드대에서 인류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번 '대결'은 최근 영국 지방의회에서 회의 전에 공식적으로 행하는 기독교식 기도에 대해 법원의 금지 결정이 내려져 논란이 이는 가운데 1시간 30분간이나 계속돼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세속주의 협회가 종교적 특권에 반대한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 판결에 대해 기독교 지도자와 정부 관료들은 영국의 오랜 종교적 유산과 가치가 파괴됐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날 도킨스와 윌리엄스 대주교가 논쟁을 벌인 곳은 학위수여식을 비롯해 옥스퍼드대의 주요행사가 열리는 17세기 건물 셀도니언 극장이었다.

토론석에 오른 도킨스는 윌리엄스 대주교에게 "창세기를 21세기 과학에 맞추려고 재해석하는데 왜 시간을 낭비하려 하는가"라며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도킨스는 이어 "왜 신처럼 혼란스러운 존재로 세상을 어수선하게 하려 하느냐"고 공격한 뒤 과학이 이미 우주에 대한 여러 질문에 답을 내놨으며 우리 세대에는 여전히 불가해한 것을 언젠가는 설명할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도킨스의 도발적인 주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을 "사랑과 수학의 결합체로 부르자"고 말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성경을 쓴 사람들은 21세기 물리학을 하도록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신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들을 전하는데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신의 존재에 대한 견해와 신념은 서로 달랐지만 두 사람의 논쟁은 정중했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도킨스는 자신도 '문화적으로는' 영국성공회라는 점을 인정했으며 윌리엄스 대주교는 도킨스의 집필활동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무대 위 의자에 앉은 영국성공회의 수장과 진화생물학자의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 박수를 비롯해 논쟁적 분위기를 달구는 청중의 행위는 금지됐다.

토론이 끝나자 일부 청중은 이날 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며 한편에서는 논쟁다운 공격성이 부족했다며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토론을 지켜본 한 학교 교사는 "마치 오후의 다과회 같았다"라고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