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여기까지 떠밀려 와서, 팔레스틴 남쪽 경계까지 왔단 말인가
나뭇가지 마다 물 대음이 모자라서
뽀얀 먼지가 덮인 듯이 물기 말라 거칠어서
빳빳해진 매달림으로
그래도 어지러이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가지들
뚜껑처럼 돌 처박아 오랜 세월 흘러 온
이름만이 우물이란 허우대로 먼지 덮여 서 있어서
어쩌면 그 옛날엔
문화생명 목 축이는 물 샘이었을 것이었을 가
바람도 거칠어서
스치는 뺨에 설 키우는 어석거림이지만
나는 여기에서, 왜
지나간 날의 내 모습이 어른거리는지
그리도 잘 견뎌내 온
여러 해(年) 세월들이
나름대로 자리 잡혀서
까칠 하지만 제 얼굴 모습을 갖추어
생명의 목 축일 물 샘되어
바람 맞고 서 있어라
모두가 제 할 탓이라지만
그렇게 바람마지로 시달려서
아무리 비틀려 서 있어도
또 나름대로 제 자리를 잡으면
하나의 돌 비석으로도 남는 것
그런대로 자기 나름의
한 의미를 새기고 서 있을 것..
브알세바, 그 남쪽나라 와 북 나라들의 경계에서
지금 내, 바람결로
옛 아팠던 숨결 이야기들을
마른 풀잎 하나하나 줄기에다가 풀어내고 있음을,
누군가 가 잎 새 떨어지는 바람 사이로, 듣고 있을 것일 게야_
어찌 어찌하여 나는 여기까지 내려와 서 있었습니다. <브알세바>입니다. 사람들은 여기가 팔레스틴 남쪽 경계라고 하였습니다만, 그 옛날로 찾아가 보면 여기는 아브라함 巨將의 갈대아 제2문화의 거점지였습니다. 아직도 먼지 두께의 발 밟히는 마른 풀잎 바닥 저 아래쪽으로 파 내려 간다면_ 그 아래 그 옛날 인간문화 내음이 발바닥 아래로 느껴져 오는 感知로, 질금 질금 움직여 오고 있었습니다.
상왕정리 와 하왕정리. (連作 詩 2)
( 1944년 日帝下의 겪었던 슬픈 작은 이야기_ )
아마 나 모를 적 오래 전에,
시집 간 누님을 처음 찾아뵈었고,
강원도 삶은 옥수수 알, 한 사발 알 알 히
입안에 우물거렸던 생각이 지금 내 떠오르는데
거기가 상왕정리 초등학교,
나는 2학년에 들어갔네.
바로 옆집은 일본식 집 일본인 교장 네의
열 살 넘어 2딸이 살고 있는 그 마을 유일한 양옥집,
바로 또 그 옆쪽으로, 일자 식 낭하가 긴 나무집 초등학교 건물
뒤뜰 쪽엔 깊은 우물이
싯 푸르도록 두레박으로,
무척 깊고 차갑게 검은 그림자로 빨아 내렸고
그래 여름이야, 시원스런 물 목음을
두레박 채 목에 넘기는..
건물_ 앞쪽으론 탁 트인
미루나무 둘린 넓은 초등학교 마당 운동장에
길게 드리운 그네 타며..
흙먼지 손등 터지도록 땅 뺏기 그림도 커다랗게 그렸지
내가 아침 학교 우물곁에서 세수를 끝내고
가운데 교실 방쯤 찾아 들면
키 큰 같은 반 아이들이
한 움큼씩 내 주머니에 바다에서 채어 냈다는
마른 멸치를 부풀도록 넣어 주고
나는 일본 말 국어 책을 읽어 내려갔는데
지금이야 얼굴 다 잊은 담임선생님은
나를 교장실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교장 선생 앞에서 국어 책을 읽으라고 하였고
지금은 다 잊었지만, 한 서너 장 채 글을 낭독
아마, 시골에서 꽤 일본글 읽는 소리가
랑 랑 했던 것 같았나 보아,
흐린 어느 날, 친구들과 한 반 싯 경 걸리는 산속으로
나무 한 답 시고, 따라 나서면
시커먼 잔 솔 나무 검은 그늘 드리운 그림자가
그리도 무서웠었어.
하로 는, 논에 줄 매 금 한 대로 길게 서서
노랫가락 맞춰 벼 심기도 나서면
제일 무서웠던 건, 검정 지렁이벌레 거머리가
두세 마리 허연 종다리에 피범벅 되어 달라붙어
내 피를 빨아 먹고 있던 게
제일 무서웠었어.
그러던 어느 날, 난 혼자서 한 반 싯 경
동쪽 향해 신작로 따라 한 참을 걸어 나설 때가 있어서,
시원한 동해바다, 바다 바닷가의 커다란 바위들이
사람 키처럼 우뚝 우뚝 널려 서 있어
밀려오는 파도자락 끝 해일(海溢), 마주쳐
철썩 철~썩 원으로 둥그렇게 하늘 퍼지면
남쪽 서울, 멀리로 보고 싶은 아버지 얼굴 그려지며
그리도 작은 맘 속 깊이까지
가득 한가득 벅차 왔었더랬지..
여기, 連作詩 형태로, 오늘은 <連作詩 2>를, 마음에 그려지는, 그 옛 어렸을 적에의 나의 현실을, 맘에 지금도 가끔 떠올려지는 맘 영상으로_ 서, 너 번에 걸쳐 글 올려가 봅니다. <어느 낡은 그림 童話集> 보듯이 재밌게, 또 맘 아프게 읽어보면 어떨까 하여, 올립니다. 惠化초등학교(당시는 日帝 下였으니까 국민학교 때,) 2학년, 막 올라가서_ 나는 십대 중반쯤 되시는, 당시 이화여중생 둘째 누이 손을 잡고, 강원도 양양 아래 조그마한 마을_ 2次大戰 末, 被屬國 맘 저린 모습으로, 말로는 피난 차, 찾아 간 시골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상왕정리. 하왕정리>라고 그 때 내 귀에 들렸던 대로 이름적어놓았지만, 얼마 전, 구글의 입체 지도를 펼쳐보다가, 그 때 그곳을 찾아보니, 상광정리, 하광정리 이었습니다.
나뭇가지 마다 물 대음이 모자라서
뽀얀 먼지가 덮인 듯이 물기 말라 거칠어서
빳빳해진 매달림으로
그래도 어지러이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가지들
뚜껑처럼 돌 처박아 오랜 세월 흘러 온
이름만이 우물이란 허우대로 먼지 덮여 서 있어서
어쩌면 그 옛날엔
문화생명 목 축이는 물 샘이었을 것이었을 가
바람도 거칠어서
스치는 뺨에 설 키우는 어석거림이지만
나는 여기에서, 왜
지나간 날의 내 모습이 어른거리는지
그리도 잘 견뎌내 온
여러 해(年) 세월들이
나름대로 자리 잡혀서
까칠 하지만 제 얼굴 모습을 갖추어
생명의 목 축일 물 샘되어
바람 맞고 서 있어라
모두가 제 할 탓이라지만
그렇게 바람마지로 시달려서
아무리 비틀려 서 있어도
또 나름대로 제 자리를 잡으면
하나의 돌 비석으로도 남는 것
그런대로 자기 나름의
한 의미를 새기고 서 있을 것..
브알세바, 그 남쪽나라 와 북 나라들의 경계에서
지금 내, 바람결로
옛 아팠던 숨결 이야기들을
마른 풀잎 하나하나 줄기에다가 풀어내고 있음을,
누군가 가 잎 새 떨어지는 바람 사이로, 듣고 있을 것일 게야_
어찌 어찌하여 나는 여기까지 내려와 서 있었습니다. <브알세바>입니다. 사람들은 여기가 팔레스틴 남쪽 경계라고 하였습니다만, 그 옛날로 찾아가 보면 여기는 아브라함 巨將의 갈대아 제2문화의 거점지였습니다. 아직도 먼지 두께의 발 밟히는 마른 풀잎 바닥 저 아래쪽으로 파 내려 간다면_ 그 아래 그 옛날 인간문화 내음이 발바닥 아래로 느껴져 오는 感知로, 질금 질금 움직여 오고 있었습니다.
상왕정리 와 하왕정리. (連作 詩 2)
( 1944년 日帝下의 겪었던 슬픈 작은 이야기_ )
아마 나 모를 적 오래 전에,
시집 간 누님을 처음 찾아뵈었고,
강원도 삶은 옥수수 알, 한 사발 알 알 히
입안에 우물거렸던 생각이 지금 내 떠오르는데
거기가 상왕정리 초등학교,
나는 2학년에 들어갔네.
바로 옆집은 일본식 집 일본인 교장 네의
열 살 넘어 2딸이 살고 있는 그 마을 유일한 양옥집,
바로 또 그 옆쪽으로, 일자 식 낭하가 긴 나무집 초등학교 건물
뒤뜰 쪽엔 깊은 우물이
싯 푸르도록 두레박으로,
무척 깊고 차갑게 검은 그림자로 빨아 내렸고
그래 여름이야, 시원스런 물 목음을
두레박 채 목에 넘기는..
건물_ 앞쪽으론 탁 트인
미루나무 둘린 넓은 초등학교 마당 운동장에
길게 드리운 그네 타며..
흙먼지 손등 터지도록 땅 뺏기 그림도 커다랗게 그렸지
내가 아침 학교 우물곁에서 세수를 끝내고
가운데 교실 방쯤 찾아 들면
키 큰 같은 반 아이들이
한 움큼씩 내 주머니에 바다에서 채어 냈다는
마른 멸치를 부풀도록 넣어 주고
나는 일본 말 국어 책을 읽어 내려갔는데
지금이야 얼굴 다 잊은 담임선생님은
나를 교장실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교장 선생 앞에서 국어 책을 읽으라고 하였고
지금은 다 잊었지만, 한 서너 장 채 글을 낭독
아마, 시골에서 꽤 일본글 읽는 소리가
랑 랑 했던 것 같았나 보아,
흐린 어느 날, 친구들과 한 반 싯 경 걸리는 산속으로
나무 한 답 시고, 따라 나서면
시커먼 잔 솔 나무 검은 그늘 드리운 그림자가
그리도 무서웠었어.
하로 는, 논에 줄 매 금 한 대로 길게 서서
노랫가락 맞춰 벼 심기도 나서면
제일 무서웠던 건, 검정 지렁이벌레 거머리가
두세 마리 허연 종다리에 피범벅 되어 달라붙어
내 피를 빨아 먹고 있던 게
제일 무서웠었어.
그러던 어느 날, 난 혼자서 한 반 싯 경
동쪽 향해 신작로 따라 한 참을 걸어 나설 때가 있어서,
시원한 동해바다, 바다 바닷가의 커다란 바위들이
사람 키처럼 우뚝 우뚝 널려 서 있어
밀려오는 파도자락 끝 해일(海溢), 마주쳐
철썩 철~썩 원으로 둥그렇게 하늘 퍼지면
남쪽 서울, 멀리로 보고 싶은 아버지 얼굴 그려지며
그리도 작은 맘 속 깊이까지
가득 한가득 벅차 왔었더랬지..
여기, 連作詩 형태로, 오늘은 <連作詩 2>를, 마음에 그려지는, 그 옛 어렸을 적에의 나의 현실을, 맘에 지금도 가끔 떠올려지는 맘 영상으로_ 서, 너 번에 걸쳐 글 올려가 봅니다. <어느 낡은 그림 童話集> 보듯이 재밌게, 또 맘 아프게 읽어보면 어떨까 하여, 올립니다. 惠化초등학교(당시는 日帝 下였으니까 국민학교 때,) 2학년, 막 올라가서_ 나는 십대 중반쯤 되시는, 당시 이화여중생 둘째 누이 손을 잡고, 강원도 양양 아래 조그마한 마을_ 2次大戰 末, 被屬國 맘 저린 모습으로, 말로는 피난 차, 찾아 간 시골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상왕정리. 하왕정리>라고 그 때 내 귀에 들렸던 대로 이름적어놓았지만, 얼마 전, 구글의 입체 지도를 펼쳐보다가, 그 때 그곳을 찾아보니, 상광정리, 하광정리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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