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윤리학을 대학원과정에서 공부하던 중 박원기 교수님으로부터 ‘상황윤리’ (situation ethics)에 대해 공부한적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판단하는 윤리에 근거한 규범 윤리와는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상황윤리에서 주로 다룬 주제는 20세기 후반 산업사회의 구조속에서 일어나는 사회병적인 문제들(issues)에 관한 것으로 “노인문제, 가정폭력, 임금문제, 강간, 여성의평등화, 낙태, 이혼등이다. 이중에 가장 큰 ‘뜨거운 감자’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은 가정과 사회에서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해방 주의”이었다. 1960년 후반 여성운동이 부흥하기 이전까지 여성 해방운동은 자유주의와 남미 해방신학에 관심을 가졌던 진보주의자들로 부터도 관심밖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21세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급변화하여 서비스업종의 계통에는 70%가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형적으로 볼때 여성이 주장하는 남녀평등은 50년도 안된 것 같지만 사실상은 여성권리 회복을 위해 패미니즘 운동이 시작된 1890년이라고 볼 수 있다.

100년이 넘게 여성운동가들은 생물학적 성(性)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지지하는 믿음에 근거를두고 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 역할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여성이 총리나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대기업의 CEO로써 성공적인 경영을 할 뿐 아니라 교육, 정치, 사회, 경제, 의학, 법조계에서 남 녀가 동일하게 평등의 구조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이들이 인정하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의 각 정당만 보아도 이제는 남자가 각 정당의 대표가 아닌 여성이 당의 대표로 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분들이 바로 정치의 핵심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1등을 한 한명숙의 당대표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인 이정희 의원 이들은 한국 정치의 ‘여성 대표’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사회속에 여성의 부각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즐겨보는 안방 극장의 드라마.예능 케이블에 이르기까지 ‘강한 여성’들이 주름을 잡고 있는데 참으로 오늘날의 시대가 여인 천하’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80년대 90년대 까지의 드라마를 보면 남편이 직장에 출근을 할때 남편에게 넥타이를 매주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주면서 “잘다녀 오세요”, “회사가 끝나면 술드시지 마시고 일찍 아오세요” 라고 부탁을 하면서 가사일을 하고 자녀를 돌보며 회사를 마치고 돌아올 남편을 위해 맛있는 “된장찌게, 김치찌게,생선구이”요리를 하고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들을 더 이상 요즘 드라마에서는 찾아 보기가 드물어졌다.

이제는 남편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출근하는 아내를 직장에 태워다주고, 밀린 빨래를 하는 전업 남편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과거에는 장가간 아들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을 어머니가 보면 아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오직 못났으면 머슴아가 설거지를 하냐!”, “남자 망신 그만시키고 설거지 그만 두어라”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요즘은 이와 반대로 어머니들이 말하기를 “아내에게 사랑 받으려면 잘 해라.”

자녀의 교육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을 유학 보내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홀로 외롭게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한숨을 쉬며 독수공방(獨守空房)하는 철에 한번이나 볼까 말까하는 기러기 아빠의 모습 그리고 자녀의 유학이 다 끝나야 아내와 자식을 볼 수 있는 해외에 절대로 갈 수 없는 펭귄 아빠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힘들게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모든것이 경제적인 것이라고 볼수 있으며 이제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벌어오는 돈이 남성들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많을 뿐 아니라 아내들의 직장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구조속에서 점점 남자의 직업은 줄어들뿐 아니라 직장에서 조기 은퇴를 하는일이 많기 때문에 남성들이 위축된 삶을 살게되고 직장에서 일자리를 잃으면 남편들은 가정에서 “아내들에게 기죽어”사는 삶을 살게 된다.

가끔 60대를 넘은 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되는데 그 내용들은 “요즘은 아내에게 가까이 가기가 무섭다.” “이제는 남편 구실을 더 이상할 수 없어 힘이들다.”라는 말들이다. 이와같은 말들이 사회적으로 풍자되어 나타내게 되는 데 그것은 바로 아내들이 남편이란 존재를 이래저래 애물덩어리로 여긴다는 것이다. “집에 두고 오면 근심덩어리, 같이 나오면 짐덩어리, 혼자 내보내면 걱정덩어리, 마주 앉아 있으면 웬수 덩어리”로 보고 남편들은 아내를 무서워하며 살아가는데 “30대는 아내가 백화점 갈때(쇼핑간 아내가 긁을 카드 대금 때문에) , 40대는 아내가 샤워할 때(시들어만 가는 남편은 밤이 무서워), 50대는 아내가 화장할때( 바람난 것 아닌가 싶어서), 60대는 아내가 보따리 쌀때(혹시 집을 나갈까봐),70대는 도장 찾을 때(혹시 이혼하자고 할까봐), 80대는 아내가 목공소갈때 (혹시 관짜러 가는 것인가 싶어서)에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많은 변화속에 있으며 이제 가정에서 남편의 권위와 위상은 더이상 찾아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요즘은 아내의 파워가 얼마나 세졌는지, 남편들이 아내의 말을 잘 듣다가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서 아내의 눈치까지 보아야 하고 아내의 얼굴에 짜증기미만 보여도 불안해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남성의 위상과 가정의 권위회복” 을 위해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 “아빠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라고 운동을 실시하지만 그 이전에 “남녀의 이해”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되지 아니한다면 이러한 운동이 사회적으 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바꿀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가정에서 남성의 역활은 올바른 시각에서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곧 에베소서 5:22-25절의 말씀으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말씀 속에 보면 하나님이 남녀를 창조하신 것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볼 수 있고 아내들에게 남편들을 순종하도록 가르치는데 순종이전에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본다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것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녀평등이 주어진 시대에 이제는 남성의 자유와 여성의 해방을 외치기 보다는 “남녀 이해”를 통해 서로의 속성을 회복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모범을 보인다면 경제권과 상관없이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할 것이고 가정에서 아버지로서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 믿기에 남편들이여 힘을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