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면서 가지고 있는 하나의 철학이 있는데, 그것은 매 강의 때마다 오래된 이론과 더불어 가능한 2000년대 이후의 최근 이론과 사례들을 많이 다룬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들이 현대사회와 문화 그리고 교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들로 인해 우리들은 더 많은 아픔과 상처와 소외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는 결혼과 가족체계를 강의하고 있다. 그런데,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가르치기 힘든 과목이 바로 이 과목이다. 결혼과 가족만큼 ‘해체’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문기사를 읽고 있는 중에 나의 눈을 끄는 제목이 있었는데, “동거 커플이 정식 부부보다 더욱 행복하다”는 타이틀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그 신문사가 직접 연구 조사한 내용은 아니고 코넬대 교수가 2월에 ‘결혼과 가족 저널’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을 보도한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그 논문의 골자는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고 있는 커플이 결혼커플에 비해서 행복감과 자부심이 더 높은데, 그 이유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의무를 덜 하면서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더 투자할 수 있는 자율성 혹은 유연성 때문이라고 한다.

비단 동거커플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통적인 결혼에 저항하는 다양한 유형의 결혼 형태가 생기고 있는 것을 목격하며 살아가고 있다. 깅그리치 의원 같은 사람은 개방결혼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엄연히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동의하에서 다른 여자들과 자유로운 이성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여자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여기서 동거커플이 정식 결혼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과 개방결혼을 이야기하는 마음의 중심에는 바로 “나 “ 중심의 이기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크리스챤들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기적인 생각의 배후에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조금의 불편함이나 어려움들, 고난, 희생과 책임감등을 참지 못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는 의무를 강요하지 않으면 자신과 상대방이 행복해 질 것이라는 믿음. 자기의 마음에만 드는 이성이 나타나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언제든 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욕망배설주의. 이러한 이기적이고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찰라적인 행복과 환희와 기쁨을 맛볼 수 있을 지 몰라도 결국, 불행과 아픔과 허전함과 갈등과 깨어진 인간과의 관계만을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특히, 우리 크리스챤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희망의 거주지는 고통과 상처와 아픔’이다. 즉, 희망과 고통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안에 묶여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희생과 의무와 자기 자신의 육신의 쾌락에 대한 절제나 포기 없는 결혼과 가족이 과연 얼마 동안이나 유지될 수 있을 까.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사고의 전환의 흐름들 속에서 우리 한인 1.5세와 2세들은 물론이고 모든 한인 가정들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데 있다. 당연히 한인교회 역시 무풍지대일 수 없을 것이다. 동거커플이나 개방결혼의 형태로 살고 있는 교인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교회는 그들을 향해서 어떤 말씀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쳐야 할까.

지금부터라도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이 사회의 건강한 윤리를 뒷받침하는 최후의 보루인 교회와 크리스찬들 마저도 엄청난 이 사회의 조류속에 빛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든다면 필자의 억측일까.

장보철 목사, 워싱턴침례대학교 기독교상담학 전임교수/ bcchang@wbc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