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도가니(Crucible)는 쇠붙이를 녹이거나 공기중에서 강렬한 휘발성 성분을 제거하여 재로 만드는 고온 처리 용기를 말한다. 석영, 자기, 금속(백금, 금, 은, 니켈, 철) 흑연, 알미늄 등으로 만든다.

작가 공지영이 2009년 발표한 소설 제목도 ‘도가니’ 다.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를 때, 즉 ‘광란의 도가니’, ‘분노의 도가니’, ‘슬픔의 도가니’, ‘거짓과 폭력의 도가니’ 등으로 사용한다.

작가는, 청각 장애자를 위한 ‘자애학원’이라는 곳에서 상상조차 하기싫은, 그러나 ‘광란의 도가니’ 처럼 벌어졌던 고통스런 실제 사건을 고발했다.

작년엔, 황동혁 감독이 실화를 재구성하여 영화 ‘도가니’(Silenced)를 만들었다. 감독은 영화 시작 첫 머리에 안개짙은 그 도시에, 더러운 음모와 악행과 비리가 은밀히 감춰진 것을 미리 암시하듯 끔찍한 장면으로 열어 젖힌다.

한편의 영화가 관객들의 생각을 바꾸고, 사회적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파장이 점점 뜨겁게 달아 올랐다. 단숨에 3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대법원장, 경찰 총수, 국회의 선량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까지 통한의 슬픔을 가지고 관람했다.

자애학원 교장 김강석은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Dr. Jekyll and Mr. Hyde)에서 처럼 두 얼굴을 가진 파렴치한 인물이다.

어질게 훈육하는 교육가이면서 무진 영광제일교회 장로로 존경과 신임을 받을 땐 영낙없는 지킬 박사의 가면을 쓴 모습이다. 그 영향력은 무진시청, 관할 경찰서, 전남 교육청에서 무소불위의 파워로 통했다.

그러나, 가녀린 장애 아동들을 교장실에서, 화장실에서 욕정의 제물로 삼을 땐 하이드처럼, 변태 성욕자로 돌변한다.

그의 쌍둥이 동생 김강준 행정실장, 그리고 수하의 여러 교사들이 공공연히 벌인 성폭력, 감쪽같이 은폐시키기 위해 동원된 학대, 기득권자들의 부패와 은밀한 거래들… 온 국민의 분통이 일시에 터졌고, 눈시울은 흐르는 눈물로 벌겋게 젖어들었다.

자애학원의 시작은 그럴듯 했다. 1956년 김택용 원장이 그리스도의 정신에 입각한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하게 하여 자주, 자활, 근면한 사회인으로 육성한다는 설립이념을 가지고 전남 광주시 광산구 삼거동 603-1에 전남 농아원을 세웠다.

이후 농아학교로, 2005년, 세간에 알려질 즈음엔 우석 사회복지법인이 ‘광주인화학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오천만원을 강제로 학교에 기부한 후 교편을 잡은 최사문 교사, 인권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희대의 사건들을 하나 둘 목격한다.

장애 아동들의 얼굴과 몸에서 발견되는 피멍과 상처들, 화장실에서 강간 당하는 신음소리, 돌아가는 세탁기에 머리가 쳐박힌 채 고문당하는 끔찍한 장면들, 유린 당한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마는 무언의 피맺힌 절규들….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던 처절한 피해 사례를 광주시 교육청, 전남 교육청, 경찰서, 시청, 사법부에 진정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전관예우, 청탁, 권력과 돈을 움켜쥔 기득권자들의 부패와 야합, 사악한 공모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집행유예로 유유히 풀려났고, 태연스럽게 천직에 복귀하여 일상을 즐기고 있다.

성경 야고보서1장27절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힘이 없는 고아와 과부, 빈자와 장애자들을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는 것이 크리스쳔들의 마땅히 감당해야 할 최상의 섬김 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