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가 밀레가 그린 ‘만종(晩鐘)’은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그 휴식을 성경에는 안식(安息)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6일은 일하고 제 7일째는 반드시 ‘안식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이사야58:13-14)
구약의 백성들에게 주신 안식일의 법을 비롯한 명령을 포함한 모든 법, 곧 율법이 온전하게 이루어지 않음으로 인해서 결국 하나님과 백성간의 언약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이것을 신약성경에 이렇게 정의한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3:10)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저주아래 있었으니 누가 이 저주를 풀어줄 수 있었겠는가?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까지 예수님도 안식일의 계명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 당시 안식일과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신앙으로 여긴 바리새인들이 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비비어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따졌다. “왜 안식일에 쉬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안식일의 명목만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린 외식적 신앙을 책망하시면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율법이고, 말씀이고, 계명이고, 약속이고, 안식의 주체이시고, 구원이고 언약의 완성자라는 것이다. 곧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과 3일 만에 살아나시는 것 자체가 안식일 준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죽으셨고, 안식일 후 첫날 곧 주일 날에 부활하셨다. 주일의 성수는 부활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신약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처럼 주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한 날 곧 주일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증거를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바울은 드로아에서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모였고(사도행전20:7) 고린도전서 16장2절에서는 주의 첫날에 구제헌금 곧 연보(捐補)를 모으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1장10절에서는 주의 날, 곧 주일에 성령에 감동했다고 했다. 설령 신약성경에 주일에 대한 명령이 없다하더라도 주일 예배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의 관습과 전통이 되었던 것이다.
A.D. 100-132년 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바나바서』(Letter of Barnabas) 15장에서는 일요일을 여덟 번째 날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도 기쁨으로 여덟 번째 날을 지킨다. 그 날에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으며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8-9절). 로마 황제가 예배를 일요일에 드리라고 한 것은 한참 후에 일어난 일이다. 이미 그 전에 주일예배가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안식일 계명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 안식일이 예수님에게서 완성되었기에 부활하신 주일을 지킴으로 인해서 안식일의 의미가 더 온전케 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주일을 부정하고 안식일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구약의 율법은 중요시 여기고, 신약의 예수님의 사역을 무시하는 불균형적 신앙이 되고 만다. 그러니 안식일의 계명이 주일성수를 통해서 완성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구약의 백성들에게 주신 안식일의 법을 비롯한 명령을 포함한 모든 법, 곧 율법이 온전하게 이루어지 않음으로 인해서 결국 하나님과 백성간의 언약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이것을 신약성경에 이렇게 정의한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3:10)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저주아래 있었으니 누가 이 저주를 풀어줄 수 있었겠는가?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까지 예수님도 안식일의 계명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 당시 안식일과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신앙으로 여긴 바리새인들이 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비비어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따졌다. “왜 안식일에 쉬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안식일의 명목만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린 외식적 신앙을 책망하시면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율법이고, 말씀이고, 계명이고, 약속이고, 안식의 주체이시고, 구원이고 언약의 완성자라는 것이다. 곧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과 3일 만에 살아나시는 것 자체가 안식일 준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죽으셨고, 안식일 후 첫날 곧 주일 날에 부활하셨다. 주일의 성수는 부활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신약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처럼 주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한 날 곧 주일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증거를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바울은 드로아에서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모였고(사도행전20:7) 고린도전서 16장2절에서는 주의 첫날에 구제헌금 곧 연보(捐補)를 모으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1장10절에서는 주의 날, 곧 주일에 성령에 감동했다고 했다. 설령 신약성경에 주일에 대한 명령이 없다하더라도 주일 예배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의 관습과 전통이 되었던 것이다.
A.D. 100-132년 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바나바서』(Letter of Barnabas) 15장에서는 일요일을 여덟 번째 날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도 기쁨으로 여덟 번째 날을 지킨다. 그 날에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으며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8-9절). 로마 황제가 예배를 일요일에 드리라고 한 것은 한참 후에 일어난 일이다. 이미 그 전에 주일예배가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안식일 계명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 안식일이 예수님에게서 완성되었기에 부활하신 주일을 지킴으로 인해서 안식일의 의미가 더 온전케 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주일을 부정하고 안식일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구약의 율법은 중요시 여기고, 신약의 예수님의 사역을 무시하는 불균형적 신앙이 되고 만다. 그러니 안식일의 계명이 주일성수를 통해서 완성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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