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다릴거야. 내 마음이 내킬 때까지, 강해질 때까지.”
용서를 두고 주인공 다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기까지 다혜의 마음은 많은 혼란과 싸워야 했다.
정작 자신의 진짜 감정은 한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그녀가 주변의 권유로 용서를 하고 말았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다혜의 직업은 스스로 자청한 다큐멘터리 PD이다) 하는 장면은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자꾸만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아 오히려 가슴 아프게만 느껴진다.
세상은 그런 그녀의 용서에 대한 행동에 놀라움을 표하고 자꾸만 치켜세운다. 그리고 마치 꼭 그렇게 해야만 선량한 사람인 양 몰고 간다. 그런데 왜 종교까지 상처받은 그녀를 자꾸만 종용하는 것일까.
다혜가 수녀를 찾아가 혼란에 대해 논쟁하던 중 수녀는 예수님의 용서에 대해 언급하며 “쉽게 용서받은 대가로 누군가를 거저 용서해 주면 되잖습니까.” 라고 고요히 대답하는 장면은 어쩐지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다혜의 약혼자의 기제일이 공교롭게도 그녀의 생일날과 같다. 어떤 소년에게 오토바이로 두 번(같은 자리에서 한번은 실수로 또 한번은 고의적으로) 갈림을 당해 죽은 지 일년 후 그녀의 생일날 다혜가 케이크를 받아 들었다.초 하나를 켜두고 울지도 못하는 다혜. 대신 촛농만 녹아 든다.
케이크와 함께 마실 뜨거운 커피를 준비하고 얼음 잔에 따라 붓는다. 차가운 얼음이 뜨거운 커피로 인해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는 유난히 크다. 다혜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와 동시에 용서는 그녀에게서 다시 준비해야 할 숙제로 자리매김이라도 하는 것 같다. 슬픔 속에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 볼 여유가 다혜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아픈데 ‘아!’하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만 꽁꽁 솔직한 고백들을 닫아버렸던 그녀에게 친구 동생 지민이 찾아오며 심리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지민은 그런 심리변화에 많은 영향을 준 장본인이다. 지민은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아동학대를 받고도 가족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정 속에서 자란 아이다. 그 가족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아이 지민은 다혜의 용서 뒷면에 있는 진실을 알고 싶어 자꾸만 캐묻는 와중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가만히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다혜가 가족들을 용서치 않겠다는 지민을 통해 그리고 상처를 가진 사람(인터뷰 대상)들을 통해 자신을 보듯이 말이다. 그리고 다혜는 끝내 “나 기다릴거야. 내 마음이 내킬 때까지, 강해질 때까지.”라고 용서에 대해 담담히 말을 꺼낸다. 결국 지민 또한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를 너무도 용서하고 싶었음을 울음으로 토해낸다.
이 작품은 2011년 이정향 감독, 송혜교 주연의 <오늘>이라는 영화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용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권유하고 조언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서란 과연 무엇일까. 세상과 다른 관점으로의 용서가 있기나 한가. 많은 크리스천들 또한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나 크리스천들의 모습 또한 세상과 마찬가지의 용서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 크리스천의 모습이 용서를 이렇게 쉽게 만들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로 무조건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시편 69:23~24)”
또한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십자가를 통한 용서를 우리가 묵상할 수 있다. 그리고 용서는 용서를 받는 자(가해자)를 위함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피해자)의 마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충분히 돌아보며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오늘>은 “용서”에 대해 수없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우리가 이미 한 용서와 앞으로 또 해야 할 많은 용서가운데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이다.
용서에 대해 영화 속, 딸을 잃고 아파하는 한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서두르지 말아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려요. 그 시간은 자신만이 알아요.” 그래서 아마도 다혜는 그 시간에 대해 기다린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앤 기자
-열린문 지 제공-
용서를 두고 주인공 다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기까지 다혜의 마음은 많은 혼란과 싸워야 했다.
정작 자신의 진짜 감정은 한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그녀가 주변의 권유로 용서를 하고 말았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다혜의 직업은 스스로 자청한 다큐멘터리 PD이다) 하는 장면은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자꾸만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아 오히려 가슴 아프게만 느껴진다.
세상은 그런 그녀의 용서에 대한 행동에 놀라움을 표하고 자꾸만 치켜세운다. 그리고 마치 꼭 그렇게 해야만 선량한 사람인 양 몰고 간다. 그런데 왜 종교까지 상처받은 그녀를 자꾸만 종용하는 것일까.
다혜가 수녀를 찾아가 혼란에 대해 논쟁하던 중 수녀는 예수님의 용서에 대해 언급하며 “쉽게 용서받은 대가로 누군가를 거저 용서해 주면 되잖습니까.” 라고 고요히 대답하는 장면은 어쩐지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다혜의 약혼자의 기제일이 공교롭게도 그녀의 생일날과 같다. 어떤 소년에게 오토바이로 두 번(같은 자리에서 한번은 실수로 또 한번은 고의적으로) 갈림을 당해 죽은 지 일년 후 그녀의 생일날 다혜가 케이크를 받아 들었다.초 하나를 켜두고 울지도 못하는 다혜. 대신 촛농만 녹아 든다.
케이크와 함께 마실 뜨거운 커피를 준비하고 얼음 잔에 따라 붓는다. 차가운 얼음이 뜨거운 커피로 인해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는 유난히 크다. 다혜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와 동시에 용서는 그녀에게서 다시 준비해야 할 숙제로 자리매김이라도 하는 것 같다. 슬픔 속에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 볼 여유가 다혜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아픈데 ‘아!’하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만 꽁꽁 솔직한 고백들을 닫아버렸던 그녀에게 친구 동생 지민이 찾아오며 심리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지민은 그런 심리변화에 많은 영향을 준 장본인이다. 지민은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아동학대를 받고도 가족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정 속에서 자란 아이다. 그 가족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아이 지민은 다혜의 용서 뒷면에 있는 진실을 알고 싶어 자꾸만 캐묻는 와중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가만히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다혜가 가족들을 용서치 않겠다는 지민을 통해 그리고 상처를 가진 사람(인터뷰 대상)들을 통해 자신을 보듯이 말이다. 그리고 다혜는 끝내 “나 기다릴거야. 내 마음이 내킬 때까지, 강해질 때까지.”라고 용서에 대해 담담히 말을 꺼낸다. 결국 지민 또한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를 너무도 용서하고 싶었음을 울음으로 토해낸다.
이 작품은 2011년 이정향 감독, 송혜교 주연의 <오늘>이라는 영화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용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권유하고 조언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서란 과연 무엇일까. 세상과 다른 관점으로의 용서가 있기나 한가. 많은 크리스천들 또한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나 크리스천들의 모습 또한 세상과 마찬가지의 용서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 크리스천의 모습이 용서를 이렇게 쉽게 만들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로 무조건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시편 69:23~24)”
또한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십자가를 통한 용서를 우리가 묵상할 수 있다. 그리고 용서는 용서를 받는 자(가해자)를 위함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피해자)의 마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충분히 돌아보며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오늘>은 “용서”에 대해 수없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우리가 이미 한 용서와 앞으로 또 해야 할 많은 용서가운데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이다.
용서에 대해 영화 속, 딸을 잃고 아파하는 한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서두르지 말아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려요. 그 시간은 자신만이 알아요.” 그래서 아마도 다혜는 그 시간에 대해 기다린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앤 기자
-열린문 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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