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전 연말 한국의 Y대학교의 동문회 참석을통해 시애틀 지역에 사는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된 행복과 더불어 잊지못할 기억을 나누고 싶은 것들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특별 초대가수로 70년대 한국의 대중인기 가수였던 정종숙씨의 “둘이 걸었네”의 노래를 듣게 된 것이었고 그녀가 청충들에게 던진 말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정종숙의 외모가 늙었다고 할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마음은 아직도 젊습니다.” “노래하는 정종숙이는 아직도 늙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에 많은 청중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었다.

그후에 춤추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하고 머리는 흰 백발이 되어버린 부부들이 나와서 60년대에 인기 춤인 “트위스트”와 “부르스”를 추는데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춤을 추는 그들의 얼굴에 비취인 환한미소는 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을 선사 했으며 그들중에 한 사람은 Y대학교의 최초의 치어리더도 있었다.

그들의 춤과 함께 청중들 모두가 마음으로 함께 춤을 추었은데 마치 그 장면을 묘사 하라면 장은숙 가수가 부른 “함께 춤을 추어요” 노래 가사와 같았다. “함께 춤을 추어요 행복한 춤을 추어요 멀리 사라진 날을 이대로 잊어버려야 해요 당신의 검은 머리엔 어느새 하얀꽃 피고 당신의 웃움속엔 눈물 자국 있어요 함께 춤을 추어요 행복한 춤을 주어요 잊어버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춤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춤은 사람들이 흥이 나면 장소가 어디이든 상관없이 기쁨을 표현하는 몸의언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춤이라면 아직도 한국사회의 대중들에게 좋지않은 인상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남녀가 춤을추면 춤바람으로 인해 댄스홀에 가서 서로 눈이맞아 바람이 난다는 사고 방식이다.

그리고 윗 사람이 아랫사람 앞에서 춤을추면 체면이 손상될 뿐 아니라 사람이 추해보인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이해를 아직까지도 하고 있다. 가끔 필자도 TV에 나오는 비보이 댄스,스포츠 댄스 힙합댄스를 보고 조금이라도 흉내를 내려고 하면 그것을 본 아이들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아빠 그만 하세요”, “아빠 오늘 뭐 잘못 먹었어요”,”엄마! 아빠좀 못하도록 하세요”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데 사실상 그들도 아빠가 춤추는 것을 마음 속으로는 그리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음을 느낀다. 그 이유는 춤을 추면 신이 나고 춤을 추는 사람도 스트레스를 풀수 있고 보는 사람에게 웃움을 줄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춤이 젊게 하고 건강에 도움되기에 질병의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는데 특별히 파킨슨 병에 걸린 환자들에게는 치료를 위해 탱고춤을 가르치고 영국에서는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바이오 댄스를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교 의료 연구진들이 발표한 것을 보면 춤은 “고혈압, 당뇨와 고지혈”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비밀을 이야기하는데 인간이 비록 낳고 나이가 들면 백발이 되어 지팡이를 의존하고 살아가야하고 병이 들면 침대 생활을 하고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죽음을 맛보는 것이 천명(天命)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속에서도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삶을 젊고 밝게 살기위해 나이가 들어도 “춤”을 추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실지로 지역사회에서나 교회에서 실버들을 위한 스포츠 댄스, 라인댄스를 운영하여 실버들의 생각을 젊게하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춤은 음악이나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 또는 표현의 수단일 뿐 아니라 영적인 의식이 그속에 내포되어 있기에 그것을 건전하고 건강하게만 사용한다면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가져다줄 뿐 아니라 좁은 공간에서 땀과 칼로리를 충분히 분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스포츠라고 볼수 있다. 행복한 사람은 분명 “노래와 춤”을 즐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성경속에서 가장 예술적인 한 사람을 말한다면 그 사람은 시편을 가장 많이 기록한 다윗왕으로 그는 정말 춤을 즐겨한 사람이었다.

사무엘하6장 12-23절의 내용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가 예루살렘에 당도하였을때 너무 기쁜 나머지 알몸이 되는 것도 모르고 춤에 몰두 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윗이 찬양하고 춤을 출때 그 앞에 오직 하나님만 계신 걸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다윗이 사울의 딸 미갈로부터 방탕하고 염치가 없이 몸을 신복들과 계집 종들에게 드러내어 수치를 보인 왕이라고 비난을 하였지만 다윗왕은 미갈에게 춤을 추게된 경위에 대해 확실히 설명을 한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

다윗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춤판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보여준 것으로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는 나를 잊어버리고 나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찬양하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자세는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가사와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주를 찬양합니다.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손뼉치며 찬양합니다.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우리 주의 성령이 임하여 춤을 추며 찬양 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면 마음속의 기쁨의 표현이 손뼉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춤”을 추는 사람은 신앙적으로 기쁨의 삶을 사는 사람이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하나 하나를 바라 볼때마다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구름과 산에 걸친 안개만 보아도 그것들이 춤을 추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시대마다 새로운 춤이 있지만 춤은 시대와 유행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기분에 흥을 북돋아 주는 공통점이 있다고 볼때 춤은 누구에게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것이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춤이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과 행복”을 위해 삶속에서 지향되어야 할 것이며 온전한 행복을 위해 주님을 향한 “영혼의 춤”을 추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