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5일 월례회 이후 올해 처음 열린 이날 월례회에서 참석한 목회자들은 서로 신년의 안부를 묻는 한편, 각 부의 사업 및 활동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올 한해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대표기도를 맡은 최우섭 목사는 “각 교회마다 여러 사정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데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시고 해결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한다. 부흥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는다. 각 사역자들을 안위해주시고 주의 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달라”며 “회무를 진행할 때 서로 화합하는 자가 되고 서로 용납하는 자리가 될 수 있게 해 달라. 계획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이뤄지기를 소망한다”고 기도했다.
목회를 하면서 임종의 순간들을 많이 지켜봤고 장례식을 많이 인도하다보니 유언하는 것을 많이 듣게 됐다. 유언이 굉장히 진실하고 절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떤 재산이 많은 분이 인상 깊은 유언을 했는데 자식들 앞에서 하는 말이 ‘가진 것도 많고 재산도 많지만 다 필요없고 예수를 영접해라. 그것 밖에 없다’고 했던 말이 잊혀 지지 않는다. 신명기라는 것은 모세의 유언 설교와 같은 것이다. 신명기는 모세가 40년의 광야 시절을 지나 자손들에게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며 명령한 내용이다.
오늘 본문은 유언 중에도 핵심적인 유언이다. 인류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하나님과 등을 돌렸던 역사가 이스라엘의 역사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베뢰아에 있던 시절 군인목회 파송을 받았다. 배운 것은 귀신 쫓는 것 뿐이었다. 군대에서도 귀신을 쫓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능력을 행할 때 쇼맨십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무적으로 귀신을 쫓아냈었다. 능력을 행하고 귀신 쫓는 것이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미주를 순회하면서도 그저 귀신만 쫓았다. 달라스 성락교회에서 주일마다 귀신을 쫓았고 그랬더니 환자가 몰려오고 교회가 부흥됐다. 그러다가 워싱턴으로 가서 이 베뢰아가 문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껴왔었다.
귀신은 쫓아냈지만 과연 그 사람과 주변 사람이 변했느냐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능력을 많이 행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나 주변사람이 변화가 됐는지 봐야 한다. 능력과 이적을 구한 사람은 더 큰 기적을 구한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큰 능력을 베풀어도 이스라엘 백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학교를 돌이켜보게 됐다. 성경을 알려줬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담임목사를 잘못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생의 모든 불행은 사람을 잘못 만나는데서 시작한다. 자기의 삶의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다. 담임목사를 잘못 만났다. 나에게 베풀어 준 사랑은 알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원 저자의 뜻대로 전하라는 것이 하나님이 부탁이었던 것이다. 애당초 하시고자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지 목사된 우리는 연구하고 또 연구해서 말씀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것이 사명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점이 됐던 장대현 교회를 허물고 거기에 김일성 동상을 세운 북한이다. 우리 십계명과 같은 것이 그곳에도 있고 우리가 예배 드리듯이 그곳도 일주일에 한번 모인다. 기독교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 당시 말씀을 전하는 자가 성경을 제대로 전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던 자리가 김정일을 찬양하고 김일성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자리가 된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한다.
멸망한 유다가 율법을 한 번도 낭독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범죄했는지 원인을 보니 율법을 제사장들이 전혀 읽어주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지 못할 때 멸망한다. 그토록 준비된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은 결국 예수님까지 죽이게 됐다. 철저히 하나님을 등돌리는 역사였다. 가면 갈수록 이 세상은 악해지고 교회 안에는 WCC, 다원주의 등 성경과 다른 것들이 들어온다. 에스라 시대에는 하나님 말씀을 낭독하기만 했는데 크게 울며 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충격적인 장면이다. 말씀을 읽어 주기만해도 회개하는 장면을 보고 설교 무용론도 떠올랐다. 오늘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것은 능력이 아니고 귀신 쫓는 것이 아니라 빼지도 더하지도 말고 대로 양 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목회를 하지 않고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성경을 보는 태도와 자세를 다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리가 성도들을 대할 때 그 숫자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을 사랑해야 할 줄을 믿는다. 신정통주의 칼바르트 박사는 작은 목회라도 했다. 목회의 끈을 놓치지 않으니 목회를 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설교와 가르침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본다.
또 신석화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다시 구하는 시기에 와 있다. 저의 너무도 많은 실수로 인해 어려움이 왔고 제 책임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저의 상황에 대해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기대해본다. 심적으로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지내고 있다. 여러분의 관심 가운데 봄이 오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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