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목사님이 쓴 책(『사랑』,생명의 말씀사)에서 감동적인 부분들을 소개합니다.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그냥 넘겨 버리기엔 우리로 하여금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 앞에 앉아있다가 지나가는 길손을 만나 잠시 자신의 장막에 들어와 쉬기를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사라에게 부탁해 시원한 우유와 빵을 그의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몹시 시장했던지 허겁지겁 빵을 먹는 길손에게 아브라함이 물었습니다. “손님은 음식을 잡수실 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길손은 무뚝뚝하게 “아니오. 나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나는 불을 숭배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신앙이 독실한 아브라함은 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설명했으나 그는 반대 이론을 폈고, 급기야 큰 논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격분해 “당신같은 이를 우리 장막에 오래 영접할 수 없소. 나가시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길손은 그 길로 화를 내며 장막을 떠났고, 아브라함도 씩씩대며 장막 앞에서 길손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문득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사정을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저 사람을 오십 년이나 참아오셨다. 그런데 너는 한 시간을 참을 수 없었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 자신이 그 사랑에 합당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우리에게서는 도무지 사랑받을 만한 점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때로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조차 역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인내하셨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온유한 사람에게는 사람을 정복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는 절대 야합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앙의 손해를 무릎쓰지도 않는데, 이상하게도 온유한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따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그의 인격이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느 지체로부터 이런 고민을 들었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자신을 찾아와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은데, 동료들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자기만 나타나면 한 명씩 자리를 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료들이 자기를 따돌리는 것은 아닌데, 자기만 끼면 이상하게 모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위기가 된다고 그는 많이 불편해 했습니다. 사실, 그 지체는 나름대로 경건하게 살아보고자 매우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에게 온유한 그리스도인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꽉 막힌 그리스도인만을 느끼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숨길 수 없는 특징은 온유함입니다.

본성적인 인간의 가시 돋힌 마음에만 익숙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처음 느껴보는 솜털같은 품입니다. 그래서 그 품에 안길 때, 그의 상처는 아물고 한껏 세운 가시들이 스르르 사라집니다.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가시를 잔뜩 세운 채,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받아버리는 가엾은 인생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 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