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고기에 관한 재미있는 조크 한 마디, 한 스님이 식당에 와서 시원한 냉면을 시켰다. 스님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속설에 웨이터가 스님께 물었다. “고기는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임마, 밑에 깔어”
요즘 한국에서는 사찰 체험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찰음식들이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여 꽤나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찰 음식하면 으레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육식을 배제한 채식위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스님은 고기를 먹지 않을까? 불가에서 육식을 금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 첫째는 맑은 기운과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수도 중에 고기를 먹으면 기운과 정신이 탁해지고 정욕이 살아나 불도에 정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무서운 산짐승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찰들은 대개 깊은 산중에 있기 때문에 고기냄새를 맡은 짐승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는 5계중에 규율을 지키기 위함이다. 5계중에는 불살생계라하여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지 말고, 그 행위를 돕지도 말며, 생물을 나 때문에 죽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게 되면 이런 규율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렇듯 불가에서 스님들이 규율을 어기게 하는 일체의 육식을 금하게 하는 이유는 세속적인 잡념을 없애고 참선에 정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론은 스님들이 사는 이유는 맑은 정신과 기운을 유지하여 참선을 이루기 위함일 게다.
그렇다면 목사님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물론 목회자는 예수님이 그랬고, 제자들이 행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병들고 상처받은 자들을 고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나 목사 개인에게 있어서 목회자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에 대한 답은 당연히 하나님의 덕을 쌓기(健德)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어야 한다.
1980년대 초, 대학을 다닐 때 여름방학을 이용해 시골의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일이 있었다. 충청북도의 남한강이 시원하게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작은 동네에서의 일이다. 그곳에 있는 교회에는 50대 초반의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셨다. 한 여름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 나가 수영을 했는데 목사님은 항상 발에 물만 적시셨지 수영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꼭 밤에 나가셔서 혼자 미역을 감곤 하셨다. 하도 답답해 목사님께 왜 수영을 하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목사님의 대답은 이랬다. 온 동네가 훤히 내다보이고 동네 사람들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벌건 대 낯에 수영하는 모습은 하나님께 덕이 되지 않아서 낮에 수영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인데 한 가지 직업적인 차이를 떠나 다른 것이 있다면 목사가 되기 위하여 일반 성도들에 비하여 세상의 즐거움이나 쾌락을 멀리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덕을 쌓았다는 것일 게다. 만약 경건의 훈련의 차이가 없다면 목사와 교인의 차이는 무엇이 있을까? 일반교인들과 세상적으로 똑같은 삶의 방식을 갖는다면 어쩌면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데 목회자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회자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덕을 쌓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건강을 우지하기 위한 방법에도 하나님의 덕은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운동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경건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덕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가 아무리 건강에 유익한 운동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목사님들의 입에서 골프를 친다는 이야기는 덕스럽지 못하다. 목사님이 열심히 골프를 치실 때 교인들은 열심히 뜨거운 세탁소에서 땀 흘리며 프레스를 밟고 있고, 허리를 굽히고 남의 발을 닦고 있지 않은가? 만일 그런 교인들 앞에서 떳떳하게 골프를 친단 말을 할 수 있는 목사라면 골프를 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골프를 즐기는 일이 떳떳한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골프가방을 메고 골프슈즈를 신고 자신 있게 대로를 활보할 수 있다면 스님이 고기를 밑에 감추듯 골프가방을 밑에 깔지 말고 자기 스스로 떳떳해 지자.
1980년대 초 목회자의 덕망은 세상 누구에게도 흠 잡힐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한국교회가 부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지식적으로는 그 당시 목사님들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다. 하지만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사랑에 덕을 쌓는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는지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스님이 고기를 먹는 것이 농담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센세이션한 사건이기에 목회자가 골프를 치는 일이 세상적인 농담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고루하고 뭘 모르는 사람일까?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요즘 한국에서는 사찰 체험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찰음식들이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여 꽤나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찰 음식하면 으레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육식을 배제한 채식위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스님은 고기를 먹지 않을까? 불가에서 육식을 금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 첫째는 맑은 기운과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수도 중에 고기를 먹으면 기운과 정신이 탁해지고 정욕이 살아나 불도에 정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무서운 산짐승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찰들은 대개 깊은 산중에 있기 때문에 고기냄새를 맡은 짐승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는 5계중에 규율을 지키기 위함이다. 5계중에는 불살생계라하여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지 말고, 그 행위를 돕지도 말며, 생물을 나 때문에 죽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게 되면 이런 규율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렇듯 불가에서 스님들이 규율을 어기게 하는 일체의 육식을 금하게 하는 이유는 세속적인 잡념을 없애고 참선에 정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론은 스님들이 사는 이유는 맑은 정신과 기운을 유지하여 참선을 이루기 위함일 게다.
그렇다면 목사님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물론 목회자는 예수님이 그랬고, 제자들이 행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병들고 상처받은 자들을 고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나 목사 개인에게 있어서 목회자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에 대한 답은 당연히 하나님의 덕을 쌓기(健德)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어야 한다.
1980년대 초, 대학을 다닐 때 여름방학을 이용해 시골의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일이 있었다. 충청북도의 남한강이 시원하게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작은 동네에서의 일이다. 그곳에 있는 교회에는 50대 초반의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셨다. 한 여름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 나가 수영을 했는데 목사님은 항상 발에 물만 적시셨지 수영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꼭 밤에 나가셔서 혼자 미역을 감곤 하셨다. 하도 답답해 목사님께 왜 수영을 하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목사님의 대답은 이랬다. 온 동네가 훤히 내다보이고 동네 사람들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벌건 대 낯에 수영하는 모습은 하나님께 덕이 되지 않아서 낮에 수영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인데 한 가지 직업적인 차이를 떠나 다른 것이 있다면 목사가 되기 위하여 일반 성도들에 비하여 세상의 즐거움이나 쾌락을 멀리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덕을 쌓았다는 것일 게다. 만약 경건의 훈련의 차이가 없다면 목사와 교인의 차이는 무엇이 있을까? 일반교인들과 세상적으로 똑같은 삶의 방식을 갖는다면 어쩌면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데 목회자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회자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덕을 쌓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건강을 우지하기 위한 방법에도 하나님의 덕은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운동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경건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덕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가 아무리 건강에 유익한 운동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목사님들의 입에서 골프를 친다는 이야기는 덕스럽지 못하다. 목사님이 열심히 골프를 치실 때 교인들은 열심히 뜨거운 세탁소에서 땀 흘리며 프레스를 밟고 있고, 허리를 굽히고 남의 발을 닦고 있지 않은가? 만일 그런 교인들 앞에서 떳떳하게 골프를 친단 말을 할 수 있는 목사라면 골프를 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골프를 즐기는 일이 떳떳한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골프가방을 메고 골프슈즈를 신고 자신 있게 대로를 활보할 수 있다면 스님이 고기를 밑에 감추듯 골프가방을 밑에 깔지 말고 자기 스스로 떳떳해 지자.
1980년대 초 목회자의 덕망은 세상 누구에게도 흠 잡힐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한국교회가 부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지식적으로는 그 당시 목사님들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다. 하지만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사랑에 덕을 쌓는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는지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스님이 고기를 먹는 것이 농담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센세이션한 사건이기에 목회자가 골프를 치는 일이 세상적인 농담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고루하고 뭘 모르는 사람일까?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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