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만. 655만. 400만.
짧게는 4일, 길게는 7일간 모인 사람들의 숫자다. 각각 1973년, 74년, 77년에. 이 5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약 1400만의 사람들이 단 하나의 이름으로 모였다. 단일 최대 약 160만까지 모였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숫자다. 40대 중반 그 이하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세상에 있지도 않았을 테다. 바로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73년)와 ‘엑스플로 74’(74년), 그리고 ‘77 민족복음화성회’(77년)다.
이들 집회가 한국교회 부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1970년 당시 약 2백2십만이던 교인 숫자는 이들 집회들을 거치며 1977년, 약 5백만에 이른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1993년, 약 1천2백만으로 정점을 찍을 때까지 ‘70년대 대형집회’의 영향력은 이어졌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 한국교회는 침체로 들어섰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세상의 걱정거리’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면서 그 옛날 폭발적 부흥의 경험을 ‘추억’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교회의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했던 신앙의 회복” 혹은 “뜨거웠던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70년대의 향수가 배어있는 말들이다.
강삼영 교수(나사렛대 신학부)는 지난 2006년 ‘한국의 대형집회가 교회에 끼친 영향에 관한 고찰’을 제목으로 한 논문에서 70년대의 대형집회들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며 “오늘날 침체된 한국교회가 그와 같은 대형집회들을 통해 부흥의 계기를 다시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가장 큰 집회였던 지난해 ‘한국교회 8.15 대성회’의 규모는 14만여 명(서울)에 불과(?)했다. 기간 역시 단 하루였다. 이후론 없었고 시간을 거스르면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7만을 모은 정도였다. 역시 하루였다. 규모와 횟수,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70년대 대형집회들과 비교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형집회들은 줄었고 ‘대형’의 기준도 점차 낮아졌다. 연합적인 면에서도 한국교회 전 교단을 아우르는 집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사회도 교회도 모두 변했다
대형집회가 필요 없어진 걸까, 아니면 그만한 집회를 열기가 불가능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대부분 대형집회가 아주 필요 없지는 않으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회집 가능성 또한 과거에 비해 낮다고 말했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는 “70~80년대는 경제성장과 함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던 때라 아직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형집회로 인도하기 쉬웠다”며 “무엇보다 복음을 전할 매체가 마땅치 않던 당시, 대형집회는 효과적인 전도 수단이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과 TV 등 다양한 복음 전달 통로가 있기에 굳이 대형집회를 열 필요성이 없어졌다”며 “차라리 영화나 소설 등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안희열 교수(침신대 선교학)는 달라진 시대상황이 오늘날 대형집회의 필요성을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했던 70년대는 모든 사람들이 성장을 갈구했던 시대다. 당시 기독교의 대형집회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그러나 이젠 많은 사람들이 외형적 성장에 염증을 느낀다. 교회도 대형집회보다 소그룹,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교회주의 탈피해 각성운동 일어나야”
배본철 교수(성결대 신학과) 역시 대형집회의 필요성은 있으나 현재 한국교회가 그런 집회를 개최할 만한 영적 상황이 되지 못함을 강조했다. 배 교수는 “과거에 비해 지금 한국교회는 교파간 분열이 심하고 상호 대립양상이 첨예하다. 따라서 대형집회를 가능하게 하는 구심점이 약하다”며 “특히 한국교회 내부의 진정한 회개와 각성이 없다. 이런 것들이 내부로부터 표출돼 나타난 것이 대형집회라면, 한국교회는 아직 대형집회를 열 만한 상황이 못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용규 목사(한기총 명예회장)는 긍정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70년대와 같은 뜨거운 대형집회가 필요하고, 그것이 한국교회를 갱신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또 교회의 의지만 있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그런 집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7년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 목사는 “대형집회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하면 좋다. 교회는 뜨거워져야 한다. 강력한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 교회의 문제는 머리만 커지고 가슴은 식은 것”이라며 “개교회주의를 탈피해 서로 단합된 힘으로 뭉치고 단결해야 한다. 그렇게 각성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대형집회를 여는 데 있어) 문제는 인원 동원인데 교회들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1995년 한국선교전략연구소 이요한 소장은 ‘월간목회’ 225호 목회시론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장을 논하는 과정에서 소위 교회 집회의 기능과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집회는 한국교회의 역사와 성장의 과정 속에서 신앙 형태의 한 뿌리로서 깊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집회의 성격과 변화의 과정이 한국교회의 성격과 체질을 결정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짧게는 4일, 길게는 7일간 모인 사람들의 숫자다. 각각 1973년, 74년, 77년에. 이 5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약 1400만의 사람들이 단 하나의 이름으로 모였다. 단일 최대 약 160만까지 모였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숫자다. 40대 중반 그 이하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세상에 있지도 않았을 테다. 바로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73년)와 ‘엑스플로 74’(74년), 그리고 ‘77 민족복음화성회’(77년)다.
이들 집회가 한국교회 부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1970년 당시 약 2백2십만이던 교인 숫자는 이들 집회들을 거치며 1977년, 약 5백만에 이른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1993년, 약 1천2백만으로 정점을 찍을 때까지 ‘70년대 대형집회’의 영향력은 이어졌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 한국교회는 침체로 들어섰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세상의 걱정거리’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면서 그 옛날 폭발적 부흥의 경험을 ‘추억’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교회의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했던 신앙의 회복” 혹은 “뜨거웠던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70년대의 향수가 배어있는 말들이다.
강삼영 교수(나사렛대 신학부)는 지난 2006년 ‘한국의 대형집회가 교회에 끼친 영향에 관한 고찰’을 제목으로 한 논문에서 70년대의 대형집회들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며 “오늘날 침체된 한국교회가 그와 같은 대형집회들을 통해 부흥의 계기를 다시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가장 큰 집회였던 지난해 ‘한국교회 8.15 대성회’의 규모는 14만여 명(서울)에 불과(?)했다. 기간 역시 단 하루였다. 이후론 없었고 시간을 거스르면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7만을 모은 정도였다. 역시 하루였다. 규모와 횟수,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70년대 대형집회들과 비교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형집회들은 줄었고 ‘대형’의 기준도 점차 낮아졌다. 연합적인 면에서도 한국교회 전 교단을 아우르는 집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사회도 교회도 모두 변했다
대형집회가 필요 없어진 걸까, 아니면 그만한 집회를 열기가 불가능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대부분 대형집회가 아주 필요 없지는 않으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회집 가능성 또한 과거에 비해 낮다고 말했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는 “70~80년대는 경제성장과 함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던 때라 아직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형집회로 인도하기 쉬웠다”며 “무엇보다 복음을 전할 매체가 마땅치 않던 당시, 대형집회는 효과적인 전도 수단이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과 TV 등 다양한 복음 전달 통로가 있기에 굳이 대형집회를 열 필요성이 없어졌다”며 “차라리 영화나 소설 등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안희열 교수(침신대 선교학)는 달라진 시대상황이 오늘날 대형집회의 필요성을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했던 70년대는 모든 사람들이 성장을 갈구했던 시대다. 당시 기독교의 대형집회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그러나 이젠 많은 사람들이 외형적 성장에 염증을 느낀다. 교회도 대형집회보다 소그룹,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교회주의 탈피해 각성운동 일어나야”
배본철 교수(성결대 신학과) 역시 대형집회의 필요성은 있으나 현재 한국교회가 그런 집회를 개최할 만한 영적 상황이 되지 못함을 강조했다. 배 교수는 “과거에 비해 지금 한국교회는 교파간 분열이 심하고 상호 대립양상이 첨예하다. 따라서 대형집회를 가능하게 하는 구심점이 약하다”며 “특히 한국교회 내부의 진정한 회개와 각성이 없다. 이런 것들이 내부로부터 표출돼 나타난 것이 대형집회라면, 한국교회는 아직 대형집회를 열 만한 상황이 못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용규 목사(한기총 명예회장)는 긍정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70년대와 같은 뜨거운 대형집회가 필요하고, 그것이 한국교회를 갱신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또 교회의 의지만 있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그런 집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7년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 목사는 “대형집회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하면 좋다. 교회는 뜨거워져야 한다. 강력한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 교회의 문제는 머리만 커지고 가슴은 식은 것”이라며 “개교회주의를 탈피해 서로 단합된 힘으로 뭉치고 단결해야 한다. 그렇게 각성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대형집회를 여는 데 있어) 문제는 인원 동원인데 교회들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1995년 한국선교전략연구소 이요한 소장은 ‘월간목회’ 225호 목회시론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장을 논하는 과정에서 소위 교회 집회의 기능과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집회는 한국교회의 역사와 성장의 과정 속에서 신앙 형태의 한 뿌리로서 깊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집회의 성격과 변화의 과정이 한국교회의 성격과 체질을 결정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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